생선 썩는 내 난다던 곳... 사람이 죽었다

[건강할 권리 ②] 가족 관계 끊게 만드는 제도... 고독사만 는다

등록 2014.03.21 14:04수정 2014.06.0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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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세상네트워크 빈곤층건강권사업단에서는 <오마이뉴스>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건강권에 대한 실태를 살펴보는 '가난한 사람들도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다'라는 주제로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편집자말]
 2013년 8월 6일 낮 1시께 영등포 쪽방촌에 폭우가 쏟아졌다. 이사를 하던 한 주민이 우산을 쓰고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자료사진)
2013년 8월 6일 낮 1시께 영등포 쪽방촌에 폭우가 쏟아졌다. 이사를 하던 한 주민이 우산을 쓰고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자료사진)이희훈

죽음이 너무 가까이에 있다.

지난 2월 말, 동네 주민 한 분이 황급히 나를 찾아왔다. 주민 분을 쫓아 간 쪽방의 2층 복도에 들어서자 묘하고 답답한 냄새가 가득했다. 생선 썩는 냄새가 난다고 했던 주민의 말이 언뜻 떠올랐다. 쪽방 안에는 이미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든 시신이 덩그러니 누워 있었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난 듯한 시신. '고독사'라고 불리는 쪽방의 외로운 죽음이다.

그는 이 좁은 쪽방에서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 그의 생사를 유일하게 신경 썼던 사람은 동사무소 복지담당 공무원뿐이었다. 복지수급 문제로 전달할 것이 있는데 연락이 닿지 않자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고, 동사무소의 요청으로 그를 찾아간 집주인이 죽음을 발견했다.

애석하게도 쪽방 지역에서 이런 광경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쪽방 주민들도, 가끔은 나도 이 외로운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기분이 조금 우울해지고, 착잡하지만 익숙한 광경에 무뎌질 대로 무뎌진 것이다.

사회적 고립과 단절

고독사가 발생하면 먼저 경찰과 동사무소에서 고인의 가족을 찾는다. 가족을 찾으면 시신을 인계하지만, 일정 기간 동안 가족을 못 찾으면 '무연고자 처리', 화장을 한다. 쪽방촌 가구의 약 90%는 1인가구다. 이들이 쪽방촌에서 죽음을 맞으면 무연고자로 처리되는 사례가 많다. 가족을 찾더라도 경제적 이유, 오랜 가족관계의 단절 등 여러 사유로 가족들이 시신 인계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고인이 생전에 어떠했든지, 죽어서도 가족에게 외면 당하는 모습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고독사의 이면에는 '단절'이 있다. 사회와의 단절, 가족과의 단절. 빈곤은 이러한 단절을 촉진한다. 실제 쪽방 주민의 대부분이 가족해체를 경험했는데, 지난 2012년에 진행된  동자동 쪽방 주민의 건강권 실태조사를 보면, 주민의 66.7%가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연락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가장 기초인 가족 관계에서조차 이들은 단절되어 있다. 


더욱이 잘못 설계된 제도는 이들의 미약한 관계를 완전히 단절 시킨다. 기초생활수급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모, 자식, 혹은 그들의 형제자매들과 '단절'을 공식적으로 증명해야만 한다. 어렵게 가족과의 관계 단절을 증명하고 수급을 받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유품정리업체 '바이오 에코' 직원들이 고독사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유품정리업체 '바이오 에코' 직원들이 고독사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임경호

심한 만성질환으로 최근까지 기초생활수급을 받던 한 쪽방 주민은 이미 연락이 끊긴 가족의 재산 변동으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수급자에서 탈락했다. 자초지종을 파악하기 위해 가족에게 수년 만에 전화를 한 그는, 그 전화 한 통 탓에 수급 탈락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족과 연락하고 지낸다는 것이 이유였다. 가족과의 전화 한 통도 용납하지 않는 제도 속에서 이들은 가족과의 관계마저 스스로 포기해야만 한다.


가족 관계 끊어버리는 제도

빈곤한 이들의 사회적 관계 수준이 이러하다. 이들이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는 이유다.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욱 외롭게 죽어야 한다면, 그것이 구조화된 죽음이라면, 지금 이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이는 단지 쪽방만의 상황이 아니다. 1~2인 가구의 빈곤층이 주로 거주하는 옥탑방, 지하셋방, 고시원, 여관, 여인숙, 거리에서 가난하고 아픈 채 고립 생활을 하다 고독한 죽음을 맞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들은 건강한 삶을 유지할 사회적 조건과 기회를 잃었다. 주위에서 이들의 죽음을 알기에는 그들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가 너무 허약하다. 죽음 이전에 이들을 지지하고 받쳐줄 만한 사회 안전망 역시 미약하다.   

동자동사랑방과 사랑방공제협동조합은 고독사와 같은 시급한 건강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해 보자는 생각으로 지난해 주민들과 함께 건강교육, 운동 프로그램, 만성질환자를 위한 현미채식 프로그램 같은 사업을 진행중이다. 주민이 직접 건강문제 원인을 파악하고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주민의 건강 문제에는 개인과 지역 공동체가 해결하기 어려운 게 많다. 사회적·경제적 문제 등 광범위한 조건들도 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빈곤이 자살과 고독사로 연결되는 문제를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할 수는 없다. 정부와 지자체는 누구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가난한 이들이 고독하게 죽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조승화씨는 동자동사랑방 사무국장이며 김정숙씨는 건강세상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고독사 #건강권 #건강세상네트워크 #쪽방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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