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돈 벌기가 쉽니?"... 딸의 반응, 씁쓸하네

[공모-아프니까 감정노동이다] 손님이 갖춰야 할 기본 자세

등록 2014.03.31 17:49수정 2014.03.3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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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아이는 현관문이 닫히기도 전에 거실 바닥에 누웠다. 옷을 입은 채 그대로.

"아유, 옷이라도 벗고, 소파 위에 가서 누우렴."
"아, 엄마, 너무 힘들어서 그래요. 죽을 것 같아…."
"얘는, 며칠 일했다고 엄살이야."

내 말에 아이는 마지못해 일어나 앉으며 야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흐응, 엄마, 엄살이 아니에요. 온종일 서 있었더니 다리가 퉁퉁 부어서 걸을 수도 없어요. 아니, 그보다는 손님 상대하는 게 너무 힘들어. 괜히 한다고 했어요. 어떻게 하죠?"

아이는 어느새 울상이 돼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난생처음으로 몸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는데,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실감하는 중이었다. 친구의 오빠가 백화점 내의 아웃도어 매장 매니저인데 갑자기 직원이 그만두는 바람에 직원을 채용하기까지 임시직원을 구한다는 소식에 선뜻 응한 것이다. 물론 친구의 부탁도 부탁이지만 하루 급여가 일반 시간제 아르바이트보다 거의 두 배가 넘는다는 조건에 마음이 끌려서 말이다.


"돈도 돈이지만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친구 얼굴도 있으니 일도 잘해야 하고."

예전에 나도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에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하는 아이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아이가 무언가 배우리라는 생각에 모른 척했다.

"후후, 걱정 마세요. 나중에 엄마 맛있는 거 사 드릴게요."

그 후로 아이는 오전 7시에 집을 나서서 오후 9시가 넘어서야 집에 오는 생활을 시작했다.

"엄마, 이건 뭐 학교 같아요. 아침에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저녁때도 인사로 끝나고…. 나는 아는 사람도 없어서 온종일 혼자예요. 시간은 또 왜 그렇게 안 가는지. 심심하고 힘들어요.

오늘 어떤 아주머니는 등산용 재킷을 거의 다 입어본 거 있죠. 따라다니면서 옷 빼주고 다시 걸어주느라 혼났어요. 그런데 결국에는 그냥 가는 거예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정말 목구멍까지 뭐가 치밀어 오르는데….

아, 정말 왜들 그러나 몰라요. 오늘을 부부가 왔는데 그 사람들은 존댓말을 모르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반말이에요. 옷을 사기는 했지만 영 아니더라고요. 돈이 많으면 그래도 되는 것처럼…."

하루 이틀, 날이 지날수록 아이의 투덜거림은 더해졌고, 힘들다는 이유로 몸놀림도 둔해졌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아이 나이였을 때 겪었던 기억이 떠올라 씁쓸했다.

그때의 나도 아이처럼 대학 생활 중 방학을 이용해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무척 힘들었다. 온종일 서서 손님을 상대하느라 몸이 피곤한 것은 물론 손님들의 뜻하지 않은 반응에 마음도 힘들었다.

내가 맡은 곳은 수입주방용품을 파는 곳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꽤 고가의 물건들이 있었다. 가격이 비싼 만큼 찾는 손님들도 대부분 경제력을 과시하는 주부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손님이 먼저 질문을 던져야 답을 할 정도로 무뚝뚝한 편이라 늘 혼이 나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손님이 오는 것부터 긴장이 되고, 살뜰한 웃음을 보이지 못해 또 긴장이 되고, 그로 인해 혹시라도 손님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긴장을 하고…. 어디 그뿐인가? 가끔은 반말로 나를 하인 다루듯 대하는 손님 때문에 속이 상하기도 했다. 때로는 괜한 트집으로 반품을 요구하는 손님 때문에 억울해하기도 했다. 한번은 대학생이라는 말에 '더 좋은 아르바이트를 주선해주겠다'는 은근한 유혹도 서슴없이 던지는 손님으로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겉으로 억지웃음을 보였다. '손님은 왕'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래도 꾹꾹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남의 돈 먹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아냐? 장사라는 게 그런 거여. 간·쓸개 다 빼고 하는 게 장사여."

평생 작은 구둣방에서 구두를 만드셨던 아버지. 넉넉지 않은 형편에 자식 넷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아버지는 수많은 손님들을 상대하며 마음을 비워냈을 것이다. 구두를 만드느라 투박해진 손을 볼 때마다 아버지의 고단했을 삶을 짐작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손님들의 구두를 만들었을 때나, 내가 수입주방용품을 팔았을 때나, 작은 아이가 아웃도어 의류를 파는 지금이나 손님과 판매원의 관계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진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만큼, 손님들이 손님으로서의 기본자세를 갖춰야 하는 건 당연하다. 손님을 상대하는 판매원은 다른 누가 아니고 내 부모님일 수도, 내 자신일 수도, 내 자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얘. 남의 돈 벌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았니? 그래서 손님을 상대하려면 간·쓸개를 다 빼놓고 하는 거야."
"엄마, 간·쓸개를 빼느니 차라리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연구실로 취직해야겠어요. 꼭, 정말이지 공부하는 게 가장 쉬운 것 같아요. 어때요? 저 철 들었죠?'

아이의 반응에 나는 대답 대신 웃어줬다. 씁쓸함을 조금 묻힌 웃음으로.
덧붙이는 글 아프니까 감정노동이다'공모글
#감정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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