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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소리에 눈을 떠보니 시계 바늘은 이제 겨우 아침 여섯 시를 지나고 있다. 큰일이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바로 문자를 보낸다.
"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늦잠을 자서 아침에 늦을 것 같습니다."
아침 일곱 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늦잠을 잤다고 직장 상사에게 보내는 문자라니 상상이 가지 않을 수 있겠지만, 매일 한 시간 남짓 소요되는 출근길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두 시간이 넘는 출근 거리는 큰 부담이었다.
주말부부로 지내보기도 했고 서울 외곽에서 근무도 해봤지만, 회사 생활의 대부분을 서울의 중심에서 하다가 지난해 2월 근무지가 경기도 안양으로 바뀌면서 생긴 일이다.
집에서 회사까지의 거리는 자동차로 대략 50Km 남짓.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꼬박 두 시간이 소요되고 자가용을 이용한다 해도 아침 일찍 나서지 않는 이상 구내서행도 아닌데 시속 30Km 언저리를 유지하며 출근 시간 정체를 피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아침을 먹는 식습관 때문에 아내는 매일 새벽밥을 해야 했고 새벽에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는 아빠를 아이들이 평일에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쩌다 하루 월차라도 생기는 날이면 아이들은 유치원에 함께 가자며 떼를 쓰곤 한다.
출근길 거리가 멀어 승용차를 이용했던 것은 아니다. 일의 특성상 야근이 많기도 했지만, 남아있는 업무를 처리하다 퇴근이 늦다 보면 막차를 놓치기 일쑤였고 거리가 멀다 보니 당연히 택시비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회사에서도 일정 부분의 유류비를 지원해주기는 했지만, 승용차를 이용하며 출퇴근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꽉 막힌 도로 배는 자꾸 아파 오는데 화장실은 어디에...
이날도 평소처럼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길에 올랐다. 그리고 20여 분을 쌩쌩 달려 상습 정체구간에 들어설 무렵 생리적 압박이 시작되었다. 배는 점점 아파 오는데 차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럴 때 지하철을 탔다면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지만, 도로 한복판에서는 답이 없었다.
에어컨을 켰음에도 식은땀은 멈추지 않았고 계속되는 압박 속에 이제는 몸도 떨리는데 여전히 꽉 막힌 도로는 답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차를 두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날따라 정체는 더 심하게 느껴졌지만, 어느덧 차는 정체구간을 벗어나기 시작했고 나도 떨리는 몸을 안정시키며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 그리고 급한 나머지 그만 요금소를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요금소에서 사무실까지 평균 20여 분 정도 소요되었기에 나는 요즘 말로 멘붕 아닌 멘붕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어쩌랴 고속도로에서 차를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일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앞만 보고 가속페달을 밟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장의 압박은 거세져 가며 이내 아내가 곱게 다려준 와이셔츠를 땀으로 적셔 놓았고 나는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다.
저 멀리 보이는 고속도로 출구. 오로지 이것만이 내가 조금 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지금의 이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다행히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 길목에 축구장과 야구장이 있는 근린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차 문은 잠갔는지 주차는 제대로 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일단 무조건 뛰었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며 참아냈던 고통은 끝이 났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저씨 여긴 분명 여자화장실인데 저 안에 남자가 있어요."
"설마 아침부터 어느 미친X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와 일을 보겠어요."
"아니에요. 분명 남자가 뛰어들어갔어요. 확인 좀 해주세요."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순간 나는 머리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너무도 급한 나머지 아무것도 보지 않고 무작정 뛰어들어왔던 것이다.
"거기 안에 계신 분, 일 다 보셨으면 빨리 나오세요. 여기 여자 분께서 꼭 확인하고 싶답니다. 만약, 지금 나오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결국, 나는 고개를 숙인 채 화장실을 나왔고 연신 '죄송하다'라고 말하며 양해를 구했지만, 관리하는 아저씨와 젊은 여자 분은 나를 변태 취급하는 것도 모자라 '어떻게 남자가 여자화장실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느냐?', '그 화장실에 몰래카메라 설치하지 않았느냐?' 등 집요하게 추궁했다.
너무 급한 나머지 확인을 하지 못했다고 자초지종을 말하자, 내 상황이 얼마나 급했는지 이해를 한 아저씨는 연신 껄껄 웃으며 "그래 이제 속은 시원하슈?"라고 되물으며 나를 위로했다.
아침 출근길 참을 수 없는 생리적 고통으로 인하여 변태도 모자라 성범죄자가 될 뻔했던 아찔한 순간. 껄껄 웃는 아저씨가 얄밉기도 하고 젊은 여자 분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이날의 사건 이후 아무리 급해도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반드시 남녀 구분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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