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저 남자, 내 가슴을 만졌다

[공모-출퇴근길의 추억] 취객의 해코지에 괴로웠던 한밤중의 퇴근

등록 2014.06.29 09:58수정 2014.06.2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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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자전거sxc

가까이 오는 자전거가 보인다. 자전거가 내 옆을 지나가는데 누가 한쪽 가슴을 만진다. 어, 이게 뭐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지? 멍했다. 곧이어 이 상황이 뭔지 알게 되었다. 소리라도 질러야 하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돌아보니 놈은 후드 티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자전거를 탄 채 이미 멀어져 갔다. 욕이라도 해야 속이 시원할 텐데 아무리 악을 써도 자전거까지 들릴 거리가 아니다. 지금 여기서 소릴 지르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될 게 뻔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뒤돌아 전철역으로 향해 걸었다. 가슴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퇴근길이었다. 그때 나는 영등포의 어느 보습학원의 강사였다. 학원에서 강사일 마치고 전철역을 향해 걸어가다가 생긴 일이다. 전철역까지 가야 하는데 버스 노선이 없어 항상 걸어 다녔다. 여태 이런 일은 없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걷고 있자니 분노가 속에서 휘몰아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마음으로 집에 가긴 글렀다. 부모님께 내 언짢은 마음을 숨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속상한 일을 부모님께 풀어내는 건 더더욱 싫었다. 집에 가기 전에 누구라도 만나 기분을 풀어야 할 거 같았다. 생각난 사람은 남자 친구뿐.

늦은 시간이었지만 남자 친구 집으로 전화했다. 벌써 20년 전이다. 손전화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다. 남자 친구 부모님이 전화를 받으면 뭐라고 말해야 하나 걱정을 하면서 신호대기음을 듣는데 다행히 남자 친구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볼 수 있어? 집 앞으로 갈게."

내 손을 잡고 동네를 돌아준 남자친구, 참 고마웠다


남자 친구는 머뭇거림 없이 나온다고 답했다.

혜화동 전철역을 나오니 편한 차림의 남자친구가 보였다. 호기심 가득 찬 남자 친구의 얼굴은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묻고 있다. 집에서 나온 차림은 편안해 보였다. 슬리퍼 신고 '츄리닝' 바지에 사파리 잠바를 입고 있다.


"뭐 먹으러 갈래?"

그런데 유난히 사파리 잠바 주머니가 불쑥 나와 있다. 안에 뭐가 들었나 물었다.

"나오려는 데 돈이 없잖아. 그래서 500원짜리만 모아 둔 돼지저금통에서 돈 좀 꺼내 왔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남자 친구의 이런 차림은 처음이다. 사귀기 전에는 깍듯한 선배님이었는데 이렇게 슬리퍼와 츄리닝 차림에 500원짜리 동전을 가져온 것도 남자 친구의 빈틈을 보여 주는 거 같아 좋았다. 맛있을 거 사 줄려고 돼지 저금통을 가르고 동전 수를 세었을 남자 친구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남자 친구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지도 않았지만 나는 술술 이야기했다.

그 날 남자 친구는 내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내 손을 잡고 동네를 몇 바퀴 돌아주었다. 그리고 안아주었다. 마음 속에 휘몰아치던 분노들이 스르르 녹았다. 그러고 나서 집에 웃으며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 돼지저금통 배 갈라 동전 들고 나온 남자 친구는 결혼 20년차 내 남편이 돼 있다. 돌이켜 보니 그 날의 기억은 따뜻했던 우리 남편 모습 '베스트 5위' 안에 들어간다. 그 날 날 위로 해 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밤에 잠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뒤로도 학원 강사 일을 그만둘 때까지 늦은 밤 퇴근으로 곤혹스러운 일이 많았다. 치한이 아니더라도 취객이 있었다. 꼭 술에 취한 아저씨들은 버스 안에서 그 많은 사람 중에 아가씨에게 가까이 와서 비틀거렸다. 곁에 와서 뚫어져라 쳐다보고 소리를 꽥 질렀다. 취객에게 봉변을 당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면 애써 앉은 의자에서 일어나고 내릴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내리며 자리를 피했다.

이런 일을 몇 번을 겪으면서 같은 방향 선생님을 기다려 같이 퇴근했다. 우리 집 정류장에서 내리면 가끔은 아버지가 나와서 기다리셨다. 그 날도 아버지가 나를 기다렸다.

아버지와 팔짱을 끼고 골목을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술에 취한 젊은 남자가 골목에 떡 버티고 있었다. 이 취객이 우리가 가까워지자 말을 걸었다.

"그런데 아저~씨, 옆에 아가씨 아저씨 딸이에요?"
"내 딸인데......"
"에~이 거짓말. 딸 아닌 거 같은데요. 아저씨 돈 많으신가 봐요. 젊은 여자 끼고 다니시게. 와~ 아저씨는 돈 많아서 좋겠다."

아버지 얼굴이 순간 구겨졌다. 똥물을 뒤집어 쓴 듯한 얼굴이다. 나와 아버지의 나이 차가 딱 마흔 살이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그런 오해를 안 받겠거니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술 취한 사람은 눈에는 뵈는 게 없는가 보다. 집을 코앞에 두고 이런 이상한 녀석을 만나다니. 재수가 없으려니........ 내가 느끼는 것보다 아버지가 느끼는 모욕감이 더 큰 거 같았다. 아버지와 나는 경보선수처럼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해 걸었다.

혀가 꼬부라져서 비실비실 웃던 녀석은 시끄러운 소리에 밖을 내다보던 이웃 아줌마에게 떠들어 댔다.

"아줌마 아줌마, 저기 가는 아저씨 있죠? 그 아저씨가 말이야. 젊은 여자 끼고 가면서 자기 딸이래. 거짓말을 그렇게 해."

큰 소리로 떠드니 내 귀에까지 들린다. 화가 난 아버지가 먼저 집으로 들어가셨다. 뒤따라 들어가는 내가 한쪽 손으로 대문을 닫으려는데 그냥 집에 들어가면 잠이 안 올 거 같았다. 억울했다.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나오는 대로 냅다 소릴 질렀다.

"야이 새끼야! 정신 똑바로 차려! 나 우리 아버지 딸 맞거든."

그리고 재빨리 대문을 쾅 닫았다. 녀석이 쫓아올까 무서워서.

"휴, 오늘도 살았구나"... 힘겨운 한 밤의 퇴근

그렇게라도 소릴 지르니 속이 다 시원했다. 아버지와 나를 무슨 원조교제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한 녀석이 괘씸했다. 화가 났다. 미친 녀석 아닌가? 그날 밤, 생각해 보니 그 젊은 남자도 안 된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 나이 들도록 연애 한 번을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연애를 못 한 이유가 돈 많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다 채 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았다. 그러니 얼마나 못난 인간이란 말인가. 그 생각을 바꾸기 전까지 아마도 연애를 할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학원 강사 일을 할 때는 퇴근이 그렇게 늦었다. 치한을 만나면 어쩌나 취객을 만나면 어쩌나 걱정하느라 가슴이 잔뜩 쪼그라진 채로 길을 걸었다. 간신히 집 대문 안에 들어서면 쪼그라진 가슴에서 휴 하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휴~ 오늘도 살았구나!" 한밤의 퇴근은 그렇게 매일 힘겨웠다.

요즘은 어떨까?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도 여전할 거 같다. 이제는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 한 밤 중에 일터를 나서는 젊은 여성들의 퇴근길도 편안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출퇴근길의 추억 공모글 입니다.
#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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