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수험생들이 방학 중임에도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는 비인가 대안학교 고등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다. 지난 1년간 대학에 가겠다고 했다가, 내년에 가겠다고 했다가, 결국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초등학교 땐 하버드에 가겠다고 했고 중학교 땐 서울대에 가겠다고 했다. 고1 무렵엔 서울권 대학만 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반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에 편입할 때에도 당연히 대학에 가고, 그것도 서울권 대학에 가고자 했다. 올 4월엔 대입 준비 차원에서 고졸 검정고시까지 치렀다.
나는 내가 일류대학에 가길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대학에 가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뭐라도 돼서 먹고살려면 대학 졸업장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졸, 혹은 지방대 출신이라고 했을 때 받게 될 대접과 시선이 두려워서라도 최소 서울권 대학에 가고자 했다.
대학에서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뭐라도 배울 게 있겠지' 싶었다. 또래들과 지내고 싶었고 전공분야가 있었으면 했다. 행여나 일반 고등학교에서 겪은 것과 같이 가치충돌이 있더라도, 내가 대학과 친구들을 변화시키며 다니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품었다.
내가 다니는 대안학교는 비인가 학교로, 수능 관련 교육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생활은 '빡센' 편이다. 1년 내내 논문을 붙잡고 있어야 하고 과제도 많다. 회의도 많고 여행도 가야 하고 동아리도 즐겨야 한다. 올해 학년 대표와 반장까지 되어버렸고, 여기저기 일도 많이 벌였다. 학교생활과 대학 준비를 병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고, 고민 끝에 대입을 미루기로 했다. 선배 노릇도 좀 하고 마지막 학교생활을 '찐하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처음엔 1년 늦게 대학에 간다고 마음먹는 것도 힘들었다. 재수하면서 정신병에 걸리진 않을까, 적응이 힘들진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도 대학에 가려는 마음은 변함없었다. '논문 잘 쓰면 대학 갈 때 도움이 되겠지?'라고 생각했고, 수시모집 때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선생님들께 활동한 자료들을 잘 모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하버드와 서울대가 꿈이던 나... 이제 대학 '너머'를 본다대학이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일류 대학, 지방 전문대, 대안학교 학생들이 많이 가는 그곳(!), 예술대학 등 다양한 대학이 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며 많은 대학생 언니 오빠들, 어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대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을 읽기도 했다. 대학 가서 하기 나름이지만 수업과 교수진에 실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수업과 교수진에 실망한다는 건 심각한 문제임을 깨달았다. 대안교육은 늘 과도기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 특히 우리 학년은 수업에 대해, 학교 전반적인 운영에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다. 학생, 학부모, 교사, 이 교육의 3주체가 머리를 맞대고 학교의 성장을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은, 분명 힘들지만 매순간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대학에 가서도 그렇게 하다가는 공부 외적인 부분에 지나치게 에너지를 쏟느라 지쳐서, 진짜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 가서 수업과 교수에 불만이 있다면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바꾸어 나가야겠지…'라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혔다. 그 거대한 시스템을 바꿀 수 있을까. 변화를 위해 노력하며 배우는 것은 많다. 하지만 변화하기까진 긴 시간이 필요하며, 변화를 위한 노력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고 지친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참고 적당히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아니다 싶은 건 참지 못하는 날 보며,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중간이 없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대학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