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에 고교 자퇴... 19살엔 대학을 버린다

'공부'가 꿈인 내가 대학에 가지 않는 이유

등록 2014.12.11 08:56수정 2014.12.1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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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3 수험생들이 방학 중임에도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고3 수험생들이 방학 중임에도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는 비인가 대안학교 고등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다. 지난 1년간 대학에 가겠다고 했다가, 내년에 가겠다고 했다가, 결국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초등학교 땐 하버드에 가겠다고 했고 중학교 땐 서울대에 가겠다고 했다. 고1 무렵엔 서울권 대학만 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반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에 편입할 때에도 당연히 대학에 가고, 그것도 서울권 대학에 가고자 했다. 올 4월엔 대입 준비 차원에서 고졸 검정고시까지 치렀다.

나는 내가 일류대학에 가길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대학에 가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뭐라도 돼서 먹고살려면 대학 졸업장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졸, 혹은 지방대 출신이라고 했을 때 받게 될 대접과 시선이 두려워서라도 최소 서울권 대학에 가고자 했다.

대학에서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뭐라도 배울 게 있겠지' 싶었다. 또래들과 지내고 싶었고 전공분야가 있었으면 했다. 행여나 일반 고등학교에서 겪은 것과 같이 가치충돌이 있더라도, 내가 대학과 친구들을 변화시키며 다니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품었다.

내가 다니는 대안학교는 비인가 학교로, 수능 관련 교육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생활은 '빡센' 편이다. 1년 내내 논문을 붙잡고 있어야 하고 과제도 많다. 회의도 많고 여행도 가야 하고 동아리도 즐겨야 한다. 올해 학년 대표와 반장까지 되어버렸고, 여기저기 일도 많이 벌였다. 학교생활과 대학 준비를 병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고, 고민 끝에 대입을 미루기로 했다. 선배 노릇도 좀 하고 마지막 학교생활을 '찐하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처음엔 1년 늦게 대학에 간다고 마음먹는 것도 힘들었다. 재수하면서 정신병에 걸리진 않을까, 적응이 힘들진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도 대학에 가려는 마음은 변함없었다. '논문 잘 쓰면 대학 갈 때 도움이 되겠지?'라고 생각했고, 수시모집 때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선생님들께 활동한 자료들을 잘 모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하버드와 서울대가 꿈이던 나... 이제 대학 '너머'를 본다

대학이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일류 대학, 지방 전문대, 대안학교 학생들이 많이 가는 그곳(!), 예술대학 등 다양한 대학이 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며 많은 대학생 언니 오빠들, 어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대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을 읽기도 했다. 대학 가서 하기 나름이지만 수업과 교수진에 실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수업과 교수진에 실망한다는 건 심각한 문제임을 깨달았다. 대안교육은 늘 과도기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 특히 우리 학년은 수업에 대해, 학교 전반적인 운영에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다. 학생, 학부모, 교사, 이 교육의 3주체가 머리를 맞대고 학교의 성장을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은, 분명 힘들지만 매순간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대학에 가서도 그렇게 하다가는 공부 외적인 부분에 지나치게 에너지를 쏟느라 지쳐서, 진짜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 가서 수업과 교수에 불만이 있다면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바꾸어 나가야겠지…'라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혔다. 그 거대한 시스템을 바꿀 수 있을까. 변화를 위해 노력하며 배우는 것은 많다. 하지만 변화하기까진 긴 시간이 필요하며, 변화를 위한 노력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고 지친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참고 적당히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아니다 싶은 건 참지 못하는 날 보며,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중간이 없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대학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가 생겼다.

 대안학교 '교육공간 오름'의 학생들과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활동가들이 수능시험이 치러진 11월 13일 '투명가방끈과 입시희생자를 위한 희망콘서트'를 열었다.
대안학교 '교육공간 오름'의 학생들과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활동가들이 수능시험이 치러진 11월 13일 '투명가방끈과 입시희생자를 위한 희망콘서트'를 열었다.소중한

대학을 경험해보지 않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대학의 모순을 늘어놓으며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대학 자체를 부정하고 배제한 것도 아니다. 대학에 갈 이유와 잘 맞는 학과를 찾는다면 갈 의향도 있다. 굳이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마음먹은 결정적인 이유는, 대학 아닌 곳에서도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하고 싶다. 깊게 공부하고 싶다. 내 속도대로,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다. 공부를 통해 세상을 보고 싶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넘치는 지적 욕구를 채우고 싶다. 잘 살기 위해서 공부하고 싶다. 사회학과 철학,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다. 이런 공부를 할 생각이라면 대학보다 더 나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 많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비용도 등록금보다 더 싸기도 할 것이다.

졸업 후 공부할 곳을 찾고 있다. 좋은 스승, 함께할 도반들, 특히 또래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인문학을 공부할 것이다. 일반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잠시 은둔생활을 해본 결과, 혼자 지내면 성격이 이상해진다. 너무 어른들하고만 지내는 것도 좋지 않다. 관심 분야가 너무 많아서 혼란이 많지만, 인생은 길다. 아직 무언가 결정 내리고 그것만을 보고 달려가야 할 나이는 아닌 것 같다.

10대의 끝, 내 결정에 대한 자신감... 나는 '잘 살고' 있다

대안학교로 편입한 건 200% 만족한다. 일반 학교를 계속 다녔어도 아마 잘 다니다 그럭저럭 대학에 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안학교를 선택했기에 나는 10대 막바지에 나란 사람에 대해, 내가 사는 이 세상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평생을 함께할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학교에서 논어, 사회과학, 수학, 철학 등을 공부하며 공부가 재밌다고 느끼고, 공부하고 싶다고 결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에 가지 않을 용기가 생겼다. 예전에 대졸자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남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에 대학에 가고자 했지만 어느새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열심히 논문 쓰고 공부하다 보니까 '졸업장 없어도 먹고살 수 있겠는데?'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다들 기를 쓰고 대학에 가게 만드는 이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제도와 이데올로기를 이해하기 힘들다. 입시공부 하기 싫어서, 자신 없어서 회피하는 거 아니냐는 질책 어린 질문도 많이 받았다. 맞다. 입시공부 하기 싫다. 잘해낼 자신도 없다. 장난 삼아 하는 말이지만 나는 서울대에 안 가는 게 아니고 못 가는 거다.

흔히들 입시 준비하며 몇 년만 고생하고 견디면 미래에 행복할 거라고 한다. 하지만 내 신조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입시지옥을 견디고 원하는 목표에 닿는 사람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입시 경쟁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누군가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기에 스스로 결정을 내리자는 주의다. 엄마도 이런 고민과 변덕을 묵묵히 지켜보며 기다려주셨다. 인생은 기니까 조금 돌아가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인생에는 맞고 틀리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 결정에 많은 사람들이 용기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80%를 훌쩍 넘는다는데,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과감한 결정으로 보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난 특별히 과감하고 용기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저 나름 치열하게 고민해서 결정 내린 것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10대의 끝 무렵, 내 결정에 대한 신념과 떳떳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기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기도 하다. 앞으로 무언가를 평생 결정하며 나아갈 것이다. 이 자신감이 앞으로 길을 만들어나가는 데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날 걱정하는 많은 분들께 난 잘 크고 있다고, 잘 살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대학 #입시 #대안학교 #입시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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