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역사교과서로 끝나지 않는다"

[현장] 책 <위험한 역사 시간> 북콘서트, "역사와 언어로 나라 장악하려는 시도"

등록 2015.11.03 11:16수정 2015.11.03 16:42
1
원고료로 응원
"조선총독부에서 역사학의 맥락을 결정하면서 교육 지침으로 내놓은 것이 있다. 거기엔 정확히 '요컨대 이치를 따지지 말게 하라'고 돼 있다. 교육과 정말 반대되는 개념이다. 교육이 무엇인가? 이치를 따지게 하고, 그 힘을 기르게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교육 지침이 아직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의 형제이자 미래인 학생들이 역사 교과서의 이런 맥락을 배우면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가겠나? 결론은 뻔하다."

이주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 한 말이다. 그의 뒤엔, 2010년까지 사용한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내용이 프레젠테이션 화면으로 띄워져 있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하루 앞둔 지난 2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책 <위험한 역사 시간> 북 콘서트가 열렸다.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선 <위험한 역사 시간>의 저자인 이주한 연구위원을 비롯해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이동형 시사평론가 겸 작가가 패널로 나섰다. 이날 행사엔 주최측 추산 100여 명의 청중이 함께했다.

이날 행사는 <위험한 역사 시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이주한 연구위원의 역사 특강과 패널 토론으로 진행됐다. 패널 토론은 정운현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행사의 초점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에 맞춰졌다.

"근현대사는 박 대통령 아킬레스건, 아버지 명예회복이 국정목표"

a

이주한 연구위원의 역사 특강 이주한 연구위원은 토론에 앞선 역사 특강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조지오웰의 말로 말문을 열었다. ⓒ 김예지


이주한 연구위원은 이날 역사 특강에서 자신의 책 <위험한 역사 시간>에서 다룬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짚어나갔다. 이 연구위원은 2010년까지 사용된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1단원 '선사시대의 세계'의 맨 앞부분에 실린 지도를 예로 들며 "이 지도는 고대 문명권을 네 군데(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로 표현했는데, 과연 이것이 팩트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이어 "이 지도는 고대 문명을 네 군데로 제한하고, 나머지는 문명과 독자성, 주체성 그리고 역사가 없는 비주체적 존재, 즉 야만으로 그리고 있다"며 "이러한 관점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가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주입한 비주체적인 역사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연구위원은 고조선을 신화의 일부로 치부하는 것이나 한반도에 국한 시킨 반도사를 언급했다.  


이 연구위원은 역사 교과서를 다시 국정체제로 되돌리고, 집필진에 비전문가가 참여하게 되는 것을 우려했다. 원론적으로 교과서 집필에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이번 국정교과서 추진의 경우 그 의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국정교과서 추진이 "프레임을 장악하고, 선거의 수단으로 활용하여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사상과 역사관을 심고자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패널로 참여한 이동형 작가도 "(역사교과서가 국정화 체제로 돌아가면 친일과 독재 행위가 미화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가 아니라 확정"이라며 "이것은 박 대통령의 국정 목표다,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근현대사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선 "자기(박근혜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사이가 안 좋지만, 국정교과서로는 '짝짜꿍'이 맞는다"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아버지 김용주의 친일 의혹이 따라붙으면 대권 가도에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음 타깃은 국어교과서... 길게 보고 싸워야"

a

토론에 참여한 패널들 2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위험한 역사 시간> 북콘서트 토론에 참여한 패널들. 왼쪽부터 이주한 연구위원, 정운현 사무국장, 곽노현 전 교육감, 이동형 작가. ⓒ 김예지


국정화 추진 작업이 역사교과서에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이란 예측도 나왔다. 이날 사회를 본 정운현 사무국장은 "역사교과서가 끝나고 나면 다음 타깃은 국어교과서"라며 "첩첩산중"이라고 표현했다. 이주한 연구위원도 "당연히 국어교과서는 그 다음 수순"이라며 "역사와 언어를 장악하면 그 나라를 장악하게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패널들은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작업을 쉽게 포기할 것이라 보지 않았다. 동시에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 거센 여론에도 주목했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박근혜 정권이 선거에서 계속 이겨 오만의 극치에 달하고 있다, 여론이 좋지 않지만 (국정교과서를) 계속해서 추진할 것"이라는 이동형 작가의 말에 동의를 표하면서도 "여론의 추이가 문제다"라고 말했다.

곽 전 교육감은 "국정교과서 추진이 오판이었고 오산이었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질 것"이라며 "역풍이 불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잘못하다가도 철회하면 박수를 받는다"며 "빨리 (국정화에서 다른 방향으로) 트는 것이 나라를 위해 바람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정교과서 추진 저지를 위해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동형 작가는 "국정교과서를 저지하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며 "다음 총선에서 심판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독재자들은 언로가 다양해지는 것 싫어해 신문과 방송도 딱 하나만 하라고 한다"며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 가지는 것 싫어하기에 정치혐오증을 자꾸 부추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곽 전 교육감은 "한 명이라도 더 국정화 반대를 조직해서 여론조사에서 8(반대)대 2(찬성)가 나오고, 그 이상이 나오면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그렇게 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사람들부터 더 많이 조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한 연구위원은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 연구위원은 "지금 우리가 너무나 빠른 속도전에 휘둘려 살고 있다"며 "천천히 생각하고 길게 보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자가 자기 삶에 책임 있는 행동을 하고,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자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 말미에는 참석자들이 직접 국정교과서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자신을 역사에 관심이 많은 회사원이라고 소개한 한 중년 남성은 "기존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17종의 (검인정)교과서는 문제가 없었나?"라는 질문을 던진 뒤 "박근혜 정권의 국정교과서 추진을 막는 건 당연하고, 우리 역사의 정체성을 되살리는 근본적인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 강단에서 역사를 가르친다는 젊은 교수는 중·고등학교 역사 수업에서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등을 가르치는 영국의 사례를 예로 들며 "국사 시험만은 5개 보기 중 답을 골라내는 오지선다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은 역사 수업 시간에 포스터를 그리거나 연극을 하기도 한다"며 "역사 수업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다양한 교육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편집ㅣ손지은 기자

#국정교과서 #역사 #국정화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사 탄핵' 막은 헌법재판소 결정, 분노 넘어 환멸
  2. 2 택배 상자에 제비집? 이런 건 처음 봤습니다
  3. 3 윤 대통령 최저 지지율... 조중동도 돌아서나
  4. 4 나이 들면 어디서 살까... 60, 70대가 이구동성으로 외친 것
  5. 5 서울 사는 '베이비부머', 노후엔 여기로 간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