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표정의 추미애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우상호 원내대표.
남소연
큰 틀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형사책임과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한민국의 근본 질서인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짓밟은 데 대하여 분명하게 책임을 지고 넘어가야 한다.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다. 국가를 법에서 정하고 있는 시스템에 의해서 운영한 것이 아니라 숨어 있는 비선들을 통해서 운영하고, 개인이나 특정단체의 이익을 위하여 국가권력을 남용했다는 의혹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사익을 챙기는 데 국가권력이 동원됐다면, 민주사회에서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우선 지금 진행 중인 수사는 객관적이고 엄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철저하게 수사한 다음, 잘못의 정도에 따라서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드러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당연히 수사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혐의가 인정될 경우에는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면 반드시 기소하여야 한다. 그게 우리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길이다.
동시에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특별검사가 되었든 아니면 현행 수사팀으로 수사를 이어가든,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야당에서 추천하는 전문가들이 수사팀에 합류해야 한다. 관련 정보를 공유하면서 다른 국가권력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수사팀과 검사장, 대검찰청, 청와대 민정수석에 보고하는 방식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수사의 독립성이 유지될 수 없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수사상황을 보고받아서도 안되고 어떤 형식으로도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은 청와대 전체가 수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비밀유지를 위해서 제3자의 개입을 금지시킨다는 것은 밀실수사를 자행하면서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수사팀의 수사상황을 객관적인 외부인사와 공유하면서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예외 없는 공정한 수사야 말로 사건해결의 핵심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을 생각해 보자. 대통령의 지위를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대통령이 하야를 하면서 대통령의 지위를 내려놓을 것인지, 아니며 임기를 채우면서 실질적인 권한들을 헌법의 규정에 따라서 국무총리에게 줄 것인지의 문제다. 책임총리 제도만 제대로 실현된다면 국정공백의 우려는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하야는 대통령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고 어느 누구도 강요할 수는 없다. 야당과 국민들이 하야를 요구하더라도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다.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고(헌법 제65조 제1항),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제2항 단서). 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된다(제3항).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은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헌법 제113조 제1항).
수사상황과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 등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관계에 비춰 볼 때 박근혜 대통령은 단순한 법률위반이 아니라 헌정질서를 파괴했다. 이는 탄핵사유로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도 야당은 왜 탄핵발의를 하지 않는 것일까? 이미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하여 그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주도해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당시에는 대통령의 발언이 과연 탄핵사유에 해당하느냐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음에도 무리하게 탄핵발의가 이뤄졌고, 결국 역풍이 일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한다.
그 이후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말이 사실상 금기시되어 왔다. 탄핵이라는 단어가 정치권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정도의 큰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말로 여겨진 것이다. 탄핵트라우마가 자리 잡힌 셈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여전히 탄핵이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한다.
현재 국회의 구성 상태로 보면 탄핵소추에 필요한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은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의석수에 새누리당에서 29명만 찬성하면 되는 것이고, 새누리당 내 비박계 의원들의 구성을 살펴보면 상당 부분 현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야당은 탄핵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국헌을 문란케 한 대통령에 대하여는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탄핵제도를 이용해서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실현가능성도 없는 하야주장만 반복하면서 변죽만 울릴 일이 아니다. 탄핵소추의 요건이 충분한데도 정치적인 부담 때문에 이를 회피하려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구성이 보수적이어서 혹시라도 탄핵심판에서 기각판결을 받게 되면 오히려 야당이 정치적 타격을 입지 않을까 염려할 필요도 없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의 지지를 상실하였으며, 헌법재판소도 이러한 국민들의 의사를 분명히 읽고 있을 터이므로 쉽사리 탄핵소추를 기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헌법재판소의 폐지를 주장하는 국민적 분노를 맞이하게 될 더 큰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야당의 무능한 모습 지속된다면, 역풍 불지도내각의 구성에 관해서 살펴보자. 지금의 상황에서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은 총사퇴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책임총리가 임명되고 나면 총리의 추천을 받아 내각을 구성함으로써 정국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버린 것은 물론 내각마저 신뢰할 수 없는 입장이다. 최순실이라는 비신실세에 부복하면서 지시를 따랐던 내각이 무슨 명분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인가?
따라서 여당과 야당을 포함한 국회는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총리와 내각의 구성을 늦추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납득할 수 없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서로의 욕심을 버리면서 열린 자세로 임해야 한다.
야당의 경우에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내각을 구성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국정교과서의 문제, 개성공단 부활을 위한 협상의 시작 등 몇 가지 사안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마련되는 선에서 욕심을 거둬들여야 한다. 내각을 비롯한 국정의 공백상태가 오래될수록 야당을 향한 구민들의 시선도 따가워질 것임은 분명하다.
지금은 대한민국 최대의 위기상황이다.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는 데다가 국정공백 상태가 오래간다면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게 된다.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서 공정하면서 엄격한 수사와 그에 따른 책임은 분명히 하면서도 국정현안을 원만히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실현가능성 없는 하야만을 외치면서 법에서 정하고 있는 탄핵재판 절차도 진행하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무능한 것이고,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역풍을 맞게 될 것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결국 야당은 대통령의 2선후퇴 또는 하야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수사진행 상황에 대한 철저한 점검, 내각구성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 그리고 국회차원에서 탄핵발의를 진행함으로써 국정의 난맥상을 풀어가기 위하여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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