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현재 세계 원전밀집단지 현황. 곧 가동될 신고리 4호기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고리·신고리는 캐나다 브루스와 함께 원전밀집단지 공동 1위이고, 신고리5?6호기까지 건설하면 단독 1위가 된다.
강민혜
세계 최대 원전밀집단지에 지진 공포까지
환경단체들은 원전이 몰려 있으면 자연재해 등 중대 사고에 따른 연쇄폭발 확률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45·여) 사무처장은 "원전이 8개가 있을 때와 10개가 있을 때는 위험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자로가 밀집될수록 하나의 원자로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이웃한 원자로에서 연쇄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후쿠시마 원전은 인접한 원자로 4기에서 연쇄 수소폭발이 발생했다. IAEA는 이 사고를 계기로 개별 원자로 사고 때 인접한 원자로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 지 연구하는 '다수호기 안전성 평가'를 모든 회원국이 실시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한수원이 다수호기 안전성 평가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은 지난해 6월 23일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가 나온 후였다.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은 총 6기의 원자로 중 1~4호기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났다. 지진해일(쓰나미)이 원전을 덮치면서 원자로의 전원이 끊겨 노심(爐心)을 식혀 주는 냉각수 유입이 중단됐고, 이 때문에 연료봉이 녹으면서 수소가 발생했다. 이 수소가 격납용기 밖으로 새어나와, 격납용기를 둘러싼 직육면체 콘크리트 구조물 내부에 쌓였다가 폭발한 것이다. 일본 정부 사고조사·검증위원회는 사고 당시 점검을 위해 가동 중지 상태였던 4호기에서 일어난 수소 폭발은 3호기에서 나온 수소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3호기와 4호기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서로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핵연료가 녹아내린 1~3호기는 6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이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방사선 수치가 높으며, 지난 2월 기준으로 원전 인근 주민 중 8만 명이 아직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녹아내린 노심의 상태조차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고의 최종 수습비용은 수백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지진 우려 지대에 몰려 있는 원전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에요. 울산은 작년 7월 5일 규모 5의 지진이 발생했고, 9월 12일에는 경주에서 규모 5.8 지진이 발생했거든요. 5.8 지진이 났을 때는 울산 시민들이 다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지진이었어요. 제가 있던 곳에서도 탁자 위 컵이 미끄러지고, 책장의 책이 떨어지고, 벽에 금이 갔어요."
용 국장은 지난해 직접 체험했던 경주 지진을 회고하며 "당시 원전 사고에 대한 공포감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다가왔다"고 털어 놓았다. 환경운동연합이 지난해 10월 전국 성인 남녀(만 19세 이상) 10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9%가 "지진 위험지역에 지어진 원전을 중단하고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고 답했을 만큼 경주 지진의 파장은 컸다.
문제는 앞으로 더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특히 고리·월성·한울원전에서 20~30km 떨어져 있는 양산단층이 활성단층인지 여부가 논란이 됐는데, 지난해 10월 5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신중호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은 "양산단층은 활성단층이 맞다"고 답변했다.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단층 주위에 원전을 지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신고리 일대에 60여개 이상의 활성단층이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 학술지에 발표됐는데도 한수원이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심의 당시 이를 무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주한규 교수 등 원전 전문가들이 '지진이 나도 원전 사고가 일어나진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강력히 반박한다. 후쿠시마 참사는 지진 때문에 쓰나미가 덮쳐 일어난 것인데, 아무도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원전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알 수 없다는 게 핵심이라는 것이다.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에서 사고가 났을 때, (일본은) 격납용기가 있는 자기네 원전은 괜찮다고 했어요. 하지만 격납용기가 있는 후쿠시마 원전에서도 사고가 났어요.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를 원전이 견디지 못한 거잖아요. 우리나라에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후쿠시마 지역은 동일본대지진 이전에는 큰 지진이 없는 곳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그래서 대형 쓰나미를 고려하지 않았고, 방벽 대비와 침수 방지에 소홀했다. 하지만 규모 9.0의 거대지진이 동반한 쓰나미로 인해 원전 사고가 터졌다. 용 국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예측 못한 상황이 부른 대참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