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
<며느라기>
결혼 후 나는 우리 집 대신 시댁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차례를 지낸다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지만, 남편에게 명절 풍경은 그다지 달라진 게 없었다. 집에 내려갈 때 옆에 아내를 태우고 간다는 점만 추가되었을 뿐이다. 여전히 명절 전날 본가에 가고, 그곳에서 엄마와 작은엄마들이 음식을 만들고, 아빠와 아빠 형제들과 함께 절을 한다.
그는 그 모습이 불편하다는 생각을 적어도 날 만나기 이전까지는 떠올려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아마 명절이면 허리가 아프고 피곤한 엄마의 사정이 언젠가 '내 일'이 되리라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명절은 적어도 오랜만에 친척들이 만나 얼굴 보고 안부도 묻는 화기애애한 날이었다. 그 자리에 따라온 여자들은 서로 피가 통한 것도 아닌데, 매번 부엌에서 얼굴을 마주쳐야 한다는 건 그의 사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일은 언젠가 '내 일'이 될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결혼 후 명절이 싫어졌다. 남편은 내가 당장 시댁에서 요리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명절을 꺼리는지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남녀의 역할이 따로 정해져 있는 명절 풍경, 그 안에서 며느리라는 약자의 지위를 갖는 것이 불편하다는 걸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는 게 나로서는 더 이해가 안 됐다.
물론 한편으로는 나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친척 어른들을 소개해 주고, 이제 큰 범위의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화기애애한 명절을 보내길 바라는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마음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친정으로 가는 식으로는 평생 명절에는 만날 수 없는 남동생을 만나 명절 인사를 나눌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의 음식을 준비하거나 뒷정리를 하는 게 내가 아니기만 하다면. 그 점을 이해받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이건 여자들의 싸움이 아니다 일 년에 겨우 두 번 있는 명절, 거기서 여자들이 입을 다물면 명절은 지금까지처럼 적어도 겉으로는 평화롭게 지속될 것이다. 어쩌면 이 안의 불평등을 알고 있는 남편들도 일 년에 두 번뿐이니 시어머니의 비위를 맞춰주기를, 조금만 견디고 참아주기를 내심 바라는 듯하다. 때로는 당연하다는 듯이 종용하기도 한다.
"일 년에 두 번인데, 그것도 못 참아?" 그런 무신경한 질문은 갈등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적어도 이 불평등함에 대해 인식하는 것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결혼 제도의 어려움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몫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여자의 적은 여자, '여적여'의 프레임을 씌워 그들만의 싸움으로 선을 긋고, 남자들이 한 발 물러서 버리면 명절은 매번 부부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깨닫게 하는 갈등의 원흉이 되어버릴 뿐이다.
얼마 전, 이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자들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겠느냐고 누군가 물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런 것까지 불편해?'라고 묻지 않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왜 이렇게 예민해?"라고 묻거나, '별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 길고 끝없는 갈등의 출구는 멀어진다.
적어도 여자들이 명절을 왜 싫어하는지, 왜 명절이 불편한지 적어도 진심으로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온 명절의 풍경이 실은 누군가의 희생을 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성인이라면 자연히 명절 풍경은 조금 더 합리적으로, 또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결론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기득권층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또한 불편을 바로잡는 데에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나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여성의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학대인 줄도 모르고 학대에 방치되는 동물들, 불편함을 겪는 장애인들의 문제에 우리들 역시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신이 속한 어떤 집단에서 약자가 될 수 있다. 다른 이의 부당한 처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도 나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싸워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예민한 아내이자 며느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뭘 이런 것까지 불편해 하느냐'는 것까지 불편해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사소하고 확실한 의사 표현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7
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공유하기
"이 정도도 힘들어?" 명절에 대한 남자들의 의문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