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강정을 잊지 마세요" 우리가 4·3을 기억하는 법

[기행] 강정마을에서의 2박 3일...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은 국가폭력의 종식과 평화

등록 2018.04.06 10:16수정 2018.04.0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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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는 또 다른 소유를 낳고,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낳을 뿐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는 진리를 가슴에 새기며 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매일 오전 7시, '생명평화의 100배'를 올리는 사람들이 제주 강정마을의 아침을 밝힌다. 이미 완공된 해군기지 앞에서 진행되는 생명평화의 100배는 이제 마을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연대자들은 절을 하고, 그동안 군인 몇 명이 기지 안으로 들어간다. 입구를 지키고 선 군인은 거수경례를 한다.

 제주 강정마을에서는 매일 아침, 생명평화의 100배를 올린다. 너머의 회원들도 100배에 참여하였다.
제주 강정마을에서는 매일 아침, 생명평화의 100배를 올린다. 너머의 회원들도 100배에 참여하였다.신민주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4.3은

4.3 항쟁 70주기를 앞둔 4월 1일, 청년정치공동체 <너머>에서는 강정마을에 방문했다. 4.3 항쟁 70주기 추모식에는 대통령도, 유명 정치인도, 국회의원들도 참여했으나 강정마을은 유독 고요했다. 해군기지가 이미 들어섰지만, 마을 주민들과 평화 활동가들은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너머>의 회원들은 4월 1일부터 4월 4일까지 강정마을에서 지내며 4.3 항쟁을 기억하고 해군기지 저지 운동에 연대했다.

생명평화의 100배를 마치고 삼거리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연대자들을 위해 마련했다는 삼거리 식당에는 "강정은 4.3 학살이었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그 나무패 앞에 멈춰 서 있었다. 4.3 항쟁 70주기 추모식을 앞둔 우리가 강정마을에서 기억해야 하는 4.3이란 '사건'이 아닌 '항쟁'이었기 때문이다.

 강정 마을 삼거리 식당에 걸려 있는 문구.
강정 마을 삼거리 식당에 걸려 있는 문구. 신민주

 정선녀 공소 회장님이 성프란치스코 회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하고 있다.
정선녀 공소 회장님이 성프란치스코 회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하고 있다.신민주

"이제사 고람수다"

제주에 도착한 4월 1일, 정선녀 강정 공소회장님이 <너머> 회원들을 맞아주었다. 제주 강정 프란치스코 평화센터 옆에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기억하기 위한 '베트남 피에타상'이 놓여 있었고, 회관 내부에는 큰 구럼비 바위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구럼비 바위 위에서 저렇게 사람들은 낮잠도 자고, 밥도 먹고 했었지요."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50년간 제주 4.3 항쟁은 말해서도 들어서도 안 되는 일로 치부되었다. 제사 때 희생자들의 이름을 마음 놓고 부르지도 못했고, 과거를 묻는 질문은 금기시되었다. 비로소 이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이제사 고람수다"(이제야 말한다)라는 말로 항쟁과 학살의 기억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공소회장님은 4.3 항쟁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이 시대를 살고 있었다면 하고 싶을 말이 무엇인지 고민한다고 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음을 고민하며 강정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는 공소회장님은 그들이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이 땅의 평화를 위한 길에 함께하는 일일 것이라 답했다.

이 땅의 평화를 외치는 구호들로 국가폭력에 대항하는 일, 그리고 억압받는 사람들 곁에 서서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70년 전 그 사람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살아 있었다면 기꺼이 강정의 평화를 위해 거리에 서 있었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강정은 4.3 학살이었다는 문구가 우리의 마음에 부딪히는 이유는 안타까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 항쟁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강정마을에서 100배를 올리는 사람들의 얼굴에 비추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너머>의 회원들과 강정 마을 평화 활동가들은 4.3 추념식 뒷편에서 강정의 평화를 바라는 깃발을 들고 서 있었다.
<너머>의 회원들과 강정 마을 평화 활동가들은 4.3 추념식 뒷편에서 강정의 평화를 바라는 깃발을 들고 서 있었다.신민주

추념식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너머>의 회원들은 그 추념식에 작은 깃발들을 들고 참여했다. 4.3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문제도 고민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추념식이 진행되는 곳 뒤쪽에 "생명평화 강정마을",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 "비무장 평화의 섬 제주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깃발을 들고 서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고 응원의 말들을 해주며 지나갔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왜 이 자리에 서 있느냐고 물어왔다. "이것이 우리가 4.3을 기억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추념식이 시작할 무렵, 문재인 대통령이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이 우리의 말들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며 열심히 달려 안전선 앞으로 향했다. "문재인 대통령님! 강정을 잊지 말아 주세요!" 강정마을 활동가가 달리며 문 대통령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대통령은 우리를 보지 못한 듯 멀어져 갔다. 우리는 대통령의 차가 멀어질 때까지 깃발을 펼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4.3 항쟁 이후 일어난 학살에 대해 미안함을 표현하는 대통령이라면 우리의 문구를 봐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페이스북 게시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페이스북 게시글신민주

학살의 '원인'과 '자격'

돌아오는 길,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올린 페이스북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4.3 희생자들을 기리면서도 추념식이 "남로당 좌익 무장 폭동이 개시된 날"과는 무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댓글 창에는 이러한 입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남긴 지지의 말들이 가득했다.

우리가 제주에 있을 때, 낮에는 4.3 학살 유적지들을 돌아보았다. 관광지로 소개된 제주도에는 곳곳에 학살터가 널려 있었다. 학살을 예견한 마을 사람들이 자신이 끌려간 장소를 알리기 위해 바닥에 고무신을 던져 놓았던 곳도, 희생된 마을 사람들의 이름이 빽빽하게 적힌 비석들이 무수히 많은 곳도 제주도였다. 너븐숭이에 방문했을 때는 애기 무덤에 한 어린이가 반짝이는 작은 돌들을 올려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돌을 올려놓던 어린이와 같은 나이대였을 희생자들은 원인도 모른 채 생을 마감했다.

4.3 학살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과정에서 꺼림칙하게 놓여 있는 학살의 '원인'은 늘 학살 피해 생존자의 입을 막았다. 기나긴 침묵의 시간만큼 가족과 이웃을 떠나보냈던 사람들의 고통도 가중되었다. 침묵의 시간을 천천히 생각해본다면, '4.3 사건'이 아니라 '4.3 학살'이었다는 말도 사실 반쪽짜리 설명에 불과했다.

항쟁의 역사를 가리고자 하는 사람들 속에서 보이는 반공주의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고 그들의 입을 막았다. 반공주의가 죽인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은 땅에서, 존엄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의 '자격'을 묻는 발화들이 과연 정당한가. 남로당이 문제면 왜 문제인가. '남로당이었기 때문에' 4.3은 항쟁으로 비추어질 수 없는가. 질문들이 머리를 맴돌았다.

단지 '사건'도, 오로지 '학살'도 아니다

4.3은 탄압이었지만, 여전히 학살이기도 했다.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시간들과 삶을 찾기 위해 지속되는 싸움들이 존재하는 이 땅에서 우리는 4.3을 항쟁으로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고요한 강정마을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도, 추념식에 강정마을의 평화를 비는 깃발을 펼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우리가 4.3을 기억하는 방식은 슬펐던 과거의 사건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국가폭력의 종식을 바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4.3은 '사건'일 수도, 오로지 '학살'일 수도 없다.
#4.3 항쟁 #강정마을 #추념식 #홍준표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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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정치에 관한 책 <판을 까는 여자들>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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