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페이스북 게시글
신민주
학살의 '원인'과 '자격'돌아오는 길,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올린 페이스북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4.3 희생자들을 기리면서도 추념식이 "남로당 좌익 무장 폭동이 개시된 날"과는 무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댓글 창에는 이러한 입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남긴 지지의 말들이 가득했다.
우리가 제주에 있을 때, 낮에는 4.3 학살 유적지들을 돌아보았다. 관광지로 소개된 제주도에는 곳곳에 학살터가 널려 있었다. 학살을 예견한 마을 사람들이 자신이 끌려간 장소를 알리기 위해 바닥에 고무신을 던져 놓았던 곳도, 희생된 마을 사람들의 이름이 빽빽하게 적힌 비석들이 무수히 많은 곳도 제주도였다. 너븐숭이에 방문했을 때는 애기 무덤에 한 어린이가 반짝이는 작은 돌들을 올려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돌을 올려놓던 어린이와 같은 나이대였을 희생자들은 원인도 모른 채 생을 마감했다.
4.3 학살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과정에서 꺼림칙하게 놓여 있는 학살의 '원인'은 늘 학살 피해 생존자의 입을 막았다. 기나긴 침묵의 시간만큼 가족과 이웃을 떠나보냈던 사람들의 고통도 가중되었다. 침묵의 시간을 천천히 생각해본다면, '4.3 사건'이 아니라 '4.3 학살'이었다는 말도 사실 반쪽짜리 설명에 불과했다.
항쟁의 역사를 가리고자 하는 사람들 속에서 보이는 반공주의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고 그들의 입을 막았다. 반공주의가 죽인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은 땅에서, 존엄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의 '자격'을 묻는 발화들이 과연 정당한가. 남로당이 문제면 왜 문제인가. '남로당이었기 때문에' 4.3은 항쟁으로 비추어질 수 없는가. 질문들이 머리를 맴돌았다.
단지 '사건'도, 오로지 '학살'도 아니다4.3은 탄압이었지만, 여전히 학살이기도 했다.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시간들과 삶을 찾기 위해 지속되는 싸움들이 존재하는 이 땅에서 우리는 4.3을 항쟁으로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고요한 강정마을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도, 추념식에 강정마을의 평화를 비는 깃발을 펼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우리가 4.3을 기억하는 방식은 슬펐던 과거의 사건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국가폭력의 종식을 바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4.3은 '사건'일 수도, 오로지 '학살'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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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정치에 관한 책 <판을 까는 여자들>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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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강정을 잊지 마세요" 우리가 4·3을 기억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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