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인쇄소에서 일하고 있는 난민
공익법센터 어필
난민도 주민이다. 난민이 지역사회의 주민이라는 것이 생경할 수 있지만 말이다. 대한민국의 법제에서는 주민등록과 외국인등록이 구분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들이 주거를 이전하면 주민등록을 하듯 난민들은 외국인등록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된다. 등록된다는 의미는 법률상 의무를 부과하겠다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 국가가 이들을 파악하여 세금을 납부케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난민들은 지방세, 국세, 및 거의 모든 종류의 직간접세를 납부하며, 지역에서 소비하고, 재화를 구매하며, 다양한 형태의 노동력을 제공한다. 지역 사회의 다른 주민들과 어울려 관계를 맺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서울시에 살아가는 6759명, 부산시에 살아가는 967명의 주민인 난민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아니며 지자체에서 이들을 그렇게 취급할 수도 없다. 투표권이 없다거나, 숫자가 작다거나 하는 이유는 근거가 될 수 없다.
난민들은 여러 행정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일부의 오해와 달리 난민들의 삶은 어렵다. 난민들에게는 아무런 혜택도, 권리가 없다. 추방되지 않고 한국에 살아갈 자격, 직장에 취업해도 잡혀가지 않는 자격 같은 난민이 얻는 자격은 권리가 아니다. 사회의 성원으로 살아간다면 당연히 회복되어야 할 일부 자격이 회복되는 것뿐이다.
한국사회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들에게도 녹록지 않다. 그런데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며 여타 다른 이주민들과 달리 한국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거의 연계가 없는 상태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삶이 결코 쉬울 수 없다. 수많은 한국사회의 정보로부터도 한국어를 완벽히 구사하지 않는 한 소외된다. 해외에선 '난민'으로서 같은 범주에 놓이는 북한이탈주민과 같은 정착지원은 전혀 없다. 갖고 있던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이 과거 본국에서 어떻다 하는 것과 무관하게, 과거의 경험에 따른 직업을 얻기도 어렵다.
실제로 난민들은 대부분의 사회보장 혜택에서는 비켜나 있고, 그나마 있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전달체계마저 잘 마련되어 있지 않다. 특히 한국어의 장벽은 너무나도 높다. 코로나19의 국면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알 수 없는 정보 속에 계속해서 날아오는 한국어 안내문자는 단지 아직 이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는 공포감만 부여하는 것뿐이다. 지방정부는 난민들을 알고 있고 어디에 있는지도 파악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코로나19의 두려움이 전국을 삼켰던 2020년 초, 긴급재난지원금은 중앙정부에서 '원칙적으로 외국인은 지급 제외'였다. 긴급한 상황에서 애초에 정부는 당연한거 아닌가, 라며 입안했을 수 있다.
그러나 당연하지 않다. 독일에서 지급되는 코로나19 즉시지원금은 세금번호를 받고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프리랜서, 자영업자, 소규모 사업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코로나19 고통 분담을 위한 현금 지원책을 약 200만 명의 미등록 이주민에게까지 지급했다. 일본의 경우, 3개월 이상 체류자격이 있다면 국적을 따지지 않고, 1인당 현금 10만 엔을 지급하기로 했었다.
인간의 권리가 세금 납부 기준으로 축소되진 않지만 난민들도, 이주민들도 세금을 엄연히 내고 살아가고 있는데, 왜 이들만 배제되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가? 지방자치단체들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을 별도로 지급하게 됐을 때도, 지자체마다 모두 제각각이었다. 공적 마스크는 더했다. 건강보험 가입 자격이 없던 외국인들 46만 명은 한국에 적법하게 오랫동안 살았다 하더라도 마스크를 구매할 수조차 없었다.
난민들에게 시장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