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방법원.
김지현
이근수 판사는 3월 29일 TV조선 취재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우선 이들의 주거침입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하지만 TV조선이란 언론사가 공익적 취재 목적으로 조민씨의 오피스텔을 방문했기 때문에, 정당한 행위(형법 제20조)에 해당한다고 봤다. 당시 조민씨는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할 정도로 기자 취재에 심리적 압박감을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아래는 이 판사가 작성한 판결문의 주요 내용이다.
"피고인들(TV조선 취재진)은 피해자를 상대로 한 취재 또는 반론기회 부여를 위해 방문한 것이었고... (중략) 피해자가 거주하는 호실의 내부를 촬영하거나 피해자의 내밀한 사적 영역을 취재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TV조선 취재진이) 현관문을 두드렸고, 손잡이를 돌린 사실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는 취재에 응해줄 것을 요청하는 행위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중략) 피해자에게 추가적인 법익침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거의 없을 것...(후략)"
이 판사는 '조선일보 윤리규범 가이드라인'까지도 별도로 검토해, TV조선 기자들의 취재 행위가 이 가이드라인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법률적으로 효력이 없는 TV조선의 사내 취재윤리 가이드라인까지 검토한 끝에 이 판사는 TV조선이 공익적 목적의 언론 취재를 한 것이라고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2월 UPI뉴스 기자에 대한 윤찬영 판사의 판결은 달랐다. 윤 판사는 UPI뉴스 기자들이 지난 2월 직원이 있는 동부산업 사무실에 노크를 하고 들어간 행위에 대해선 무죄로 봤지만, 기자들이 사무실 내 황 사장 집무실을 둘러본 행위는 '주거침입'에 해당한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UPI뉴스 기자 A씨에게는 벌금 300만 원, 당시 이 언론사 소속으로 함께 취재했던 B씨에게도 벌금 200만 원이 선고됐다.
윤찬영 판사는 UPI뉴스 기자들의 행위를 공익적 목적의 취재 행위라고 보지 않았다. UPI뉴스 측은 공적 목적의 취재행위이기 때문에 형법 20조에 따른 위법성 조각을 주장했지만, 윤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의 행위를 업무로 인한 행위"라거나 "정당성 요건을 갖춘 행위로 평가할 수 없다"고 했다.
UPI뉴스 측이 당시 황 사장 집무실에 걸린 액자 사진 등을 촬영해 공식적으로 보도했음에도 윤 판사는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을 '업무로 인한 행위가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직원이 있는 회사 사무실 방문은 허가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사무실 안에 별도 공간으로 마련된 황 사장의 집무실을 둘러본 행위는 회사 측 허가를 받지 않은 행위라는 형식 논리가 지배한 판결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UPI뉴스 기자들은 사적인 목적으로 황 사장의 사무실과 집무실을 방문한 것이 된다.
판단 잣대 다른 위법성조각사유
형법 제20조는 위법성조각사유 중 하나로 정당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이 조항에서 업무로 인한 행위에는 공적 목적의 언론기관 취재가 당연히 포함된다.
법학계는 언론사 공적 취재에 대한 위법성조각사유를 넓게 해석하는 것이 헌법가치인 언론자유 실현에 필수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같은 법원에서 TV조선 취재진에 대해선 '무죄', UPI뉴스 기자들에게는 '유죄'가 나온 것은 위법성조각사유를 판단하는 기준이 판사에 따라, 혹은 언론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두 개의 판결문을 꼼꼼히 들여다봐도 취재 과정에서 발생한 주거침입 혐의에 대해 TV조선에만 면죄부를 준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모든 법리와 판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가장 합리적인 최선의 판결을 내리는 이상적인 법관을 '헤라클레스'라고 명명했다. UPI뉴스 기자들의 주거침임 혐의 사건에 대해 새롭게 유무죄를 다툴 항소심 재판부에게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지나친 욕심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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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주거침입에 TV조선 '무죄', UPI뉴스 '유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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