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가 있어야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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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억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을까, 친구들과 마주 앉아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A가 "아무리 그래도 100억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하자, 나는 100억이 너무 꿈같은 숫자라 화들짝 놀랐다. 강남에 아파트 한 채 값이 얼마인 줄 아느냐고, 번듯한 집 한 채 사고 여유 있게 살려면 100억은 있어야지. A는 우리에게 세상 물정 모른다는 말투로 타박했다.
나는 강남 아파트까지는 필요 없으니 30억쯤이면 충분할 것 같다고 했고, 또 다른 친구 B는 5억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바람을 밝혔다. 5억이든, 30억이든, 100억이든 우리에게 없는 돈이라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누구 얘기 들었어?"로 이어지는 다른 지인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화제의 중심은 사람이 아니라 돈이었다. 주식이, 코인이, 부동산이 '떡상'해서 부자가 된 젊은 나이에 은퇴족이 되어 자유를 만끽하고 산다는 지인의 소식은 왠지 모를 부러움과 낭패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도비는 자유예요!"라고 외치며 회사를 뛰쳐나오는 게 소원이라며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느냐는 친구의 푸념에 함께 깔깔 웃다가 마음이 푸석거렸다. 소설을 쓰는 내게 "그래도 너는 돈을 떠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잖아"라고 말하는 또 다른 친구에게, 돈벌이가 시원치 않은 소설가이기 때문에 돈을 벌려면 하고 싶지 않은 다른 일을 해야 할 때가 많다는 사정을 털어놓았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는 언제쯤 오느냐고 우리는 함께 울부짖듯 소리쳤다.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는 '경제적 자유'가 우선이라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유라는 말이 지나치게 오염되어 있는 현재의 세태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경제적 자유'라는 기이한 자유
언젠가부터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속박되지 않을 만큼의 자산을 보유하고 직장이나 노동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삶,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고 회사를 박차고 나온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자신의 부(富)를 과시하며 인플루언서가 되기도 한다. 수단, 목적, 가리지 않고 종잣돈을 모은 다음 자산을 불리고 불려 경제적 자유를 얻는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솔깃하다.
인플루언서는 자산을 수십 배, 수백 배 불려낸 자신의 성공담을 전시하고, 그에게는 수많은 팔로워가 따라붙는다. 부자가 된 셀럽은 현재의 여유 있고 자유로운 삶을 과시하고,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노력을 기울였는지 자신의 고생담을 곡진하게 들려준다. 마치 그것이 모범답안이라도 되는 듯이.
그렇게 누군가의 자산이 폭등하는 동안,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될 다른 누군가의 고통은 점점 지워지고 만다. 재테크에 무지한 채로 근로소득에 기대는 사람들, 땀 흘려 노동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이 시대에서는 그저 어리석은 존재에 불과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