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남주 시인
김남주해남기념사업회
몇 달 전, 25년 전 시작된 어떤 활동의 기억을 나누자고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다.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저마다의 삶으로 이어지는 활동이었다. 옛 사진을 돌려보며 서로 가진 기억을 맞추다가 '죽창가' 얘기가 나왔다. 누군가 죽창가를 잘 부른 사람으로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녹두꽃이 되자 하네... 다시 한 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김남주의 시에 곡을 붙인, 원래 제목도 '노래'인 노래였다. 청-송-녹-죽의 푸름을 끝까지 벼려 죽창이 되겠다는 듯 마음으로 부른, 내가 좋아하던 노래였다. 그걸 기억해 준다니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데 동시에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죽창가의 연관검색어는 김남주보다 조국이고, 어떤 세대와 진영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죽창가를 좋아했던 오래 전의 내가 그리 반갑지 않았다. 이 글의 청탁 연락을 받았을 때 반가웠던 건, 그래서 좀 모순적이었다.
"나는 소위 사회주의자인데"
나는 김남주를 대학 동아리방의 노래책에서 노래들로 먼저 알았다. 한 선배가 책을 선물하겠다며 책방에 데려갔을 때, 그해 출간된 유고시집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을 집어 들었다.
그의 시는 대체로 서늘했다. 역사와 현실에 격분할 때도 그는 화를 내기보다 차라리 심장을 멈춰 세울 듯 냉정했다. 과녁을 겨누듯, 한가운데를 뚫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읽었다. 옥중에서 쓴 시들은 내게 주어진 시간이 내가 모르는 어떤 이들의 고난에 기대고 있음을 일깨웠고, 그가 스스로 몰아세우는 날카로운 질문과 후회들은 내 것처럼 갖고 싶었다.
김남주가 자신을 시인이 아니라 전사라 말했던 것처럼, 나는 그의 시보다 스스로를 혁명가로 부르는 어떤 사람을 동경했다. 김남주의 30주기를 새겨보자는 연재에 글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나는 내 안에 담아둔 혁명의 꿈을 들킨 느낌이었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과는 조금 달랐다.
그 시절 '혁명'은 이미 철 지난 것으로 찾아왔다. '두메'와 같이 사라지는 말들, '반란'과 같이 사라질 수 없는 말들 사이를 진동하는 것이었다.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었다거나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 더 이상 '혁명'은 유효한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근거로 제시되었다.
'혁명'은 내가 가져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던 대로 하면 될 것처럼, 앞선 이들이 가던 길로 가면 될 것처럼. 그런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지는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을 생각이오. 나는 소위 사회주의자인데, 이제까지 내가 말해온 사회주의는 어디 하늘의 뜬구름 속이나 몽상가들의 잠꼬대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컨대 소련, 예컨대 동독, 이런 것들이었소." (김남주,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초판, 226쪽)
유고시집 발문을 쓴 김형수가 전한 이야기다. 나는 김남주에게서 이 시절을 통과하는 정직함을 배웠다. 서럽고 남루하고 부끄러운 것에서 새로운 시대가 태어나기를 바라며.
미래를 열어놓는 일
산은 무너지고 이제 오를 산이 없다 한다
깃발은 내려지고 이제 우러러볼 별이 없다 한다
동상은 파괴되고 이제 부를 이름이 없다 한다
- '노동의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중
"기고만장해서 환호하는 자본가의 검은 손들"과 "그 손을 맞잡고 승리의 샴페인을 터뜨리는 패자들의 의기양양한 얼굴들"을 지나 "기가 죽었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 노동과 투쟁의 어제를 입술에 깨물고 우두커니 서 있는 낯익은 사람들"을 응시하며 시인은 "애증의 협곡에서 가슴을 펴고 눈을 부릅떴다".
이 시는 1992년 창간한 <이론>의 축시였고 특집 주제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현재성"이었다. 자신이 말해온 것들을 더이상 말할 수 없게 됐더라도, 미래를 봉쇄할 권한이 자신에게 없음을 그는 알았을 것이다.
"노동의 대지에 뿌리를 내린 투쟁과 승리의 깃발이 나부끼게 하자" 김남주는 미래를 남기고 떠났다. 충분한 언어를 남기지는 않았다. 그의 시에 흐르는 땅과 흙의 냄새, 노동하는 몸의 불뚝거리는 근육 같은 것을 나는 좋아했지만, 그의 시에 담긴 근육은 언제나 남성의 것이었다. 그가 늘 가까이 두었던 가난의 풍경에서도 여성은 '몸을 팔아야 하는' 부조리의 증거로만 등장했다.
어느새 그와 꽤나 멀어졌음을 오래전 시집을 다시 읽으며 깨달았다. 그러나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더욱 분명해졌다. 말할 수 없음과 말해야 함 사이에서 흔들리며 그가 보낸 시간은 '혁명'이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도록, 미래가 더 열린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만들려는 또 다른 투쟁이었다.
노동을, 힘을, 움직임을, 여성의, 장애인의, 이주민의 것으로 읽어낼수록 노동의 대지는 얼마나 넓어질지, 우리가 결국 땅과 물에 기대 잠시 머무르는 존재임을 잊지 않는다면 그 뿌리는 얼마나 깊게 내릴 수 있을지, 서로 엮으며 바람의 방향을 맞출수록 깃발은 얼마나 크게 펄럭일지, 더 많은 미래를 열어놓는 일. 혁명은 그렇게 이어지는 역사일 것이다.
가자, 체제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