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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사람들도 야근합니다, 근데 '이것'이 달라요

통계로 본 한국-호주 삶의 질... 호주가 한국보다 행복한 이유는 '커뮤니티'

등록 2024.07.21 15:28수정 2024.07.2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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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호주 시드니의 야경.

호주 시드니의 야경. ⓒ pexels

 
* 지난 기사(호주로 간 청년들, 한국 안 돌아오겠다는 이유는 이것 https://omn.kr/29eph )에서 이어집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매년 발행하는 베터 라이프 인덱스(Better Life Index, 더 나은 삶을 위한 지수)는 각 국가의 웰빙 지수를 종합적으로 비교하는 유용한 도구다. 이 지수는 경제적 요소를 넘어 환경, 교육, 커뮤니티, 치안, 일과 삶의 균형, 삶의 만족도 등을 고려해 삶의 질을 평가한다. 굉장히 다를 것 같은 한국과 호주지만 이 지수에서 서로 유사한 점과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는 항목이 있다. 


서로 닮은 한국과 호주

호주와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시민 정치 참여도를 보이는 반면, 일과 삶의 균형에서 낮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 소위 '워라밸'이 좋을 거라 생각했던 호주이기에 이 지표는 정말 흥미로웠다.

 
a OECD Better Life Index의 <일과 삶의 균형> 항목 막대 그래프 왼쪽 막대는 대한민국, 오른쪽 막대는 호주의 것으로, 두 국가 모두 OECD 평균 대비 일과 삶의 균형이 나쁘다.

OECD Better Life Index의 <일과 삶의 균형> 항목 막대 그래프 왼쪽 막대는 대한민국, 오른쪽 막대는 호주의 것으로, 두 국가 모두 OECD 평균 대비 일과 삶의 균형이 나쁘다. ⓒ oecdbetterlifeindex.org

     
이 통계에 따르면, 하루의 대부분을 일에 쏟는 피고용인의 비율은 OECD 평균 10%인데, 호주는 13%, 한국은 약 20%에 달한다. 두 나라 모두 평균을 뛰어넘으며, 워라밸이 좋지 않은 국가라는 오명을 쓴 셈이다. 여행 중 밤늦게까지 환하게 켜져 있던 시드니 달링하버 근처의 수많은 빌딩이 떠올랐다. 서울의 여의도가 겹쳐 보여 함께 걷던 남편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호주는 오후 3시만 되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다 퇴근해 집으로 돌아가서 모든 카페는 문을 닫는다고 들었어. 근데 불이 켜져 있는 이 빌딩들은 다 뭘까? 여기도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나?"

호주의 실상을 알게 된 건 멜번에서 만난 한 교민 분 덕분이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호주 사람들은 다 퇴근하자마자 해변가에 놀러 가고 여유롭게 산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호주에 10년 넘게 살면서 느낀 점은, 호주 사람들 중 성취 욕구가 큰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더라고요. 대부분은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직종과 사람에 따라 한국인들보다 더 경쟁적이고 일을 우선시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부와 명예 또는 자아실현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다. 그래도 상사와 회사 눈치를 보며 마지 못해 야근하는 것보다는, 야근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호주 직장인이 K-직장인보다는 조금은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는 없고, 호주에는 있는 것


그렇다면 호주와 한국이 가장 극명하게 다른 점은 뭘까? 환경, 건강 지수와 관련해서도 차이가 크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주제는 바로 '커뮤니티'였다. '내가 힘들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그 사회가 얼마나 결속되어 있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a OECD Better Life Index의 커뮤니티 지표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보여주는 지표. 왼쪽 막대는 한국, 오른쪽 막대는 호주의 것으로,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지수를 보이는 국가 중 하나다.

OECD Better Life Index의 커뮤니티 지표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보여주는 지표. 왼쪽 막대는 한국, 오른쪽 막대는 호주의 것으로,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지수를 보이는 국가 중 하나다. ⓒ oecdbetterlifeindex.org

     
OECD 평균은 91%로, 호주인은 그보다 높은 93%가 의지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한국인은 80%만 그렇다고 답했다. 41개국 중 한국을 포함해 콜롬비아, 그리스, 멕시코만이 OECD 평균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인다.

슬픈 우리나라의 자화상에 최근 연일 뉴스에서 회자되는 고독사 급등 문제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은둔형 청년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외롭게 사회와 삶으로부터 단절된 사람들. 대부분 고독사나 은둔하게 되는 원인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니 심리적으로도 점점 위축되고, 주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돈이라는 가치가 삶의 중심이 돼 버린 천민자본주의의 결과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도 역설적으로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다. 때문에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존재가 있는 것은 생명의 동아줄과 같다. 오래전부터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를 정도로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1인 가구의 증가세가 대변하듯 가족들은 점점 해체되고 있지만, 그럴수록 내가 기댈 수 있는 커뮤니티는 정말 중요하다.

위 통계가 내포하듯, 호주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족친화적이고 가족 중심적인 사회다. 특히 여행 중 나는 호주에 다양한 취미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가 많다고 느꼈는데, 특히 호주 사람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포츠 커뮤니티가 인상 깊었다.

러닝 커뮤니티인 멜버른 앨버트 파크런(Melbourne Albert Parkrun)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토요일 아침 8시 800여 명의 사람들이 공원에 모여 시작 총소리와 함께 5km를 뛰거나 걷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혼자 또는 가족, 친구 반려견과 함께 참여하거나 심지어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뛰는 사람도 있었다.


모임 운영자에 따르면, 처음엔 35명 정도에 남짓했던 이 커뮤니티가 몇 년 새 1000여 명의 참가자와 30~40여 명의 자원 봉사자가 함께하는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사람들은 달리기 후 삼삼오오 브런치를 함께하기도 하며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들기도 한다. 특히 멜번 파크런은 이민자가 모여 사는 멜번에서 국적, 성별, 고향, 직업 등에 상관없이 모든 이가 환영받는 곳이었다. 낯선 곳에서의 수용은 큰 위안이 된다.

물질적 충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화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양질의 '(내가 좋아하는) 사회적 관계'를 쌓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 사회의 불행의 이유를 직장 상사, 시가, 처가, 선후배 등 '의무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찾으며, "거창할 것 없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강조한다.

긴 업무 시간이 우리가 불행한 가장 주된 이유인 줄만 알았는데, 우리의 외로움이 가장 큰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절대적 빈곤을 벗어난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주변을 향하는 따뜻한 관심과 손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enerdoheezer)에 최근 게재된 글을 보완해 작성했습니다.
#호주 #한국 #삶의질 #호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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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까지 여권도 없던 극한의 모범생에서 4개국 거주, 36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영국인 남편과 함께 현재 대만에 살고 있습니다. 다양한 해외 경험을 통해 '자기 성찰'의 기회를 많이 얻었습니다. 여행과 질문만이 내 세계를 확장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며, 글을 통해 해외에서 배운 점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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