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타기가 너무 어렵네요

등록 2001.02.26 00:14수정 2001.02.2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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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아파트나 신도시보다는 탁 트인 자연 환경을 선호하다 보니, 남들과 거꾸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나의 정해진 일과는 집에서 가게로, 가게에서 집으로 출퇴근하는 중에 승용차 이용과 버스 이용, 그리고 택시 타기가 고루 섞여 있다.


어쩌다 승용차 없이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날은 영락없이 정신적 피해를 보게 되는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니 서민들은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아직도 이렇게 낙후되고 소외된 환경이 있다니.... 아니 내 돈을 내고 택시를 타겠다는 데도 이렇게 어려우니 전국민이 너도나도 차를 사야 하고 - 이 좁은 국토에서, 이 좁은 서울에서 - 오로지 돈 많이 벌어서 좋은 곳에 가서 잘 살아야지 하고 오직 돈을 쫓는 국민이 되어 가고 있는 것 아닐까?

이런 게 어차피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과 소양이지 누구를 탓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일본에 뒤진 것도 알고 보면 돈이나 경제가 아니고 국민 전체의 예절(매너)에 있지 않나 싶다.

오늘은 드디어 내가 또 성질이 폭발해 버렸다. 역곡역 4거리. 아니 3거리다. 고속도로 같은 8차선 국도가 양옆으로 있고 4거리 중에 하나는 역곡역 입구라고 봐야 하니까 길이 터진 것이 아니고 잘렸기 때문에 나머지는 3거리라고나 할까?

'역곡 남부역 3거리. 서울 방향으로 차를 세우고 기다리는 택시 기사들을 잡으러 한국 방송 공사의 몰래 카메라 출동하세요' 근 3년 동안 내 마음속의 외침이다.

서울에 - 아니 한국에 - 이런 부당 행위가 어디 한두 가지일까마는 내 가게는 역곡 북부역 쪽에 있지만 - 그곳에서 택시를 잡을 수 있어야 정상이지만 - 높다란 역곡 전철역 계단을 오르내려서 남부 역으로 건너온다.


역곡이란 부천(인천) 방향으로 서울을 벗어난 첫번째 역이다.
우리 집은 구로구 항동이라는 동네인데 서울 - 부천간 국도에서 약간 귀퉁이로 빠지는 곳에 위치해 있다. 문제는 이 귀퉁이로 살짝 빠진데 있다. 불과 5 분 거리다. 나를 실어다 주고 그 자리에 돌아와도 10분도 안 걸린다.

그러나 서울을 향해 합승을 모아서 총알택시로 달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기사들. 굳이 시간과 돈의 계산도 해보지 않고 후진 동네니까 거들떠보질 않는 것이다. 거기 몰려 있는 기사들은 상습적인 도사들일 것 같다. 왜냐면 한번은 나를 태우려고 택시가 섰는데 여기 모여 있던 악덕 기사들이 하도 무섭게 윽박지르는 통에 혼줄이 난 채 그곳을 떠났는데 그도 나만큼 분노하는 것을 보았다. 이건 진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장이다.


그간 3년동안 이곳에서 싸운 이야기는 생략하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니까. 이제 더 칠 계란도 없다. 이젠 차라리 순응하고 감정일랑 싹 뽑아 버리기로 작심했다. 마치 멀쩡한 사람이 정신병원의 모진 치료에 이제 진짜 힘없는 정신병자가 되버린 이치다.

이전의 나는 팔팔 했으나 혼자 외쳐 봤자 소용이 없었으므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세상에서 나도 쓸모 없는 악화가 되버렸다. 아니 쓸모 있는 악화가 된 것이다. 양화는 아무래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피터지게 터득해 버린 슬픈 이야기. 아후 슬퍼.

이젠 그냥 잘난 척 안하고 한 대, 두 대, 세 대, 네 대, 다섯 대.... 나를 용케 태워 주는 택시가 올 때까지 몸을 실었다 내리라면 내리고 안 간다면 포기하고 하다가 오늘 드디어 또 한차례 폭발했다. 그냥 성질 나는대로 한순간 미쳐 버렸다.

택시들은 언제나처럼 코너부터 시작해서 3대가 줄줄이, 하릴없이 서 있었다. 그곳은 택시 안에 기사가 타고 있지도 않다. 모두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서있는 게 보통이다.

코너 쪽이나 큰길에서 혹 빈 택시가 나타나도 잡을 재간이 없게 되어 있다. 이 빈 택시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고, 곧 버스 정류장이 있고 등등 그 설명만 하려고 해도 천불이 나서 내 건강을 해칠 것 같다.
밤 11시. 자칫하면 집에 들어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국제도시 서울에서. 것도 뭐 꼬불꼬불 달동네도 아니고 산꼭대기에 있거나 다닥다닥 길 찾기 고약한 코스도 아니다.

단 5분 거리인데 사이드로 빠진다는 것이다. 내가 백번 걸어가고 싶지만 인적이 없는 벌판을 걸어가야 한다. 바로 이 벌판이 나로서는 항동에 사는 이유인데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한 20분을 서서 궁리하다 보니 정신이 확 돌아 버렸다.
담배를 뻐금뻐금 피우고 있는 기사들이 미웠다. 나는 오늘 돌아 버리기를 작정하고 행동에 들어갔다. 택시의 차번호를 확인해 보았다. 물어 볼 것도 없이 서울 택시다.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기사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안 가세요?"
"어디요?"
"요앞에 항동이요."
그는 대답도 않고 가치도 없다는 듯이 턱만 한번 모로 틀었다.
"왜 안가요? 가요!"

아주 단호하고 뒷심 있는 태도로 명령했다. 거의 위압적이었다. 그래서인지 기사는 생각보다 기죽은 말씨로 "저쪽에서 오는 걸 잡으세요" 한다. 저쪽이란 부천 쪽에서 올라오는 중앙선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나는 폭발했다.

"여기 서 있는 차도 안 가는데 저렇게 쌩쌩 달리는 차를 잡아요? 당신들이 이렇게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차를 어디다 세워요? 차가 어디서요? 엉? 중앙선에 뛰어들어 잡아요? 차가 설 데가 어딨냐구요? 봐요. 어떻게 택시가 서겠나, 당신들 모두 일년 내내 몰래 카메라로 잡아내야 해. 여기 서 있느니 항동을 7번은 갔을거에요. 내가 20분을 서 있는데 그 동안 데려다 줬으면 왕복 다섯 번도 간다니까요. 왜들이래요? 엉? 그런 직업의식으로 뭘해요? 엉?"

암튼 난 미쳐 버렸다니까! 고래고래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미친 여자가 재수가 없었는지 슬그머니 몇 명은 사라져 버리고, 언뜻 보니 혼자 남은 기사가 중앙선에서 달려오고 있는 빈 택시 하나를 능숙하게 불렀다. 악덕 기사들이 사라진 자리에 차는 설 수 있었다.
독이 난 나는 획 돌아서 그 택시에 몸을 싣고 문을 탁 닫았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택시도 항동이 어디냐, 모른다 따위로 능청을 부리면 승차 거부는 누워서 떡먹기다.
"어서 오십시오."
첫인사가 이쯤 되는 기사는 십중팔구 좋은 기사님이다. 행운의 반전 예감.
"항동인데요." 괜히 미안해지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모시겠습니다."
갑자기 살 맛나는 세상이 되네. 이 감동, 이 고마움. 갑자기 세상은 나만 악하고 다 선한 것처럼 둔갑한다. 지옥이 천국으로 확 변하면서 난 천사가 되버린다.
"항동... 아세요....?" 물었더니 "가 보십시다" 하는 것이다. 그곳을 여러 번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워낙 내가 이상한 곳에서 이상한 곳을 통과하고 있는 처지다.

그러나 채 2분도 안되어서 우리는 항동의 벌판에 접어들었다.
"여기는 참 좋습니다" 하며 창문을 쪼금 내린다.
"공기가 좋지요? 이 동네는?" 하신다. 이 얼마나 여유 있는 표현인가. 내가 여태 부정적으로 화를 냈지만 지금까지 겪어 본 결과 '한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는 말이 택시 잡기에서만큼 정확히 떨어지는 경우도 드물다.

택시를 타면 '어서 오십시오' 너무나도 정상적이고 당연한 기사의 태도지만 아직 우리는 요원한 이야기다. 그런데 어쩌다 이런 몸짓을 하는 택시 운전사는 틀림없이 종내 매너가 좋다. 오늘도 최상의 기사 님을 만났구나 싶었다. 또 하나 너무도 신기한 것은 이런 기사님은 항동의 벌판을 달릴 때 반드시 감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사람의 유형이다.

"이 벌판과 공기가 좋아서 사는데 대가를 치르고 있어요. 좋은 기사 님을 만나야 기분 좋게 귀가를 하지요."
나는 다소 말이 많아졌다.
"좀 후미지다 보니 그럴 거에요. 어쩌겠습니까? 우리 민족인데... (미워하지 맙시다)" 하는 억양으로 대신 미안해 하셨다. 지옥처럼 대들고 싸웠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뒤집히고 있었다. 기사 님의 끝말씀 '우리 민족인데' 라는 부분! 그건 나도 수없이 분노를 달래는 처방이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나눌 틈도 없이 목적지에 닿았다. 1500원에서 1800원 오르내리는 요금. 보통 3000원을 드리지만 매너가 최상이면 나도 최상 금액 5000원까지 드린다. 오늘은 5천원이다. 그런데 내 고집도 여간한 것이 택시를 타기도 전에 '더 생각해 드릴께요' 라든지 '따불요' 하고 악덕에 비위를 맞추기는 절대로 싫다.

악덕 기사들은 들어라. 네롱!이다.
담배나 피워 대며 초조하게 혈안이 되어 있을 때, 맑은 공기 마시며 5분 동안에 5000원을 버는 행운을 그대들은 절대로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고로 미덕에는 반드시 행운의 여신이 따르는데도 당장 코앞의 잇속만 챙기려는 우매한 인간은 알 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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