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는 예수고, '피델'은 신이다

[쿠바 여행기-5] 세발자전거 쿠바는 어디로 가는가

등록 2004.03.04 22:04수정 2004.03.0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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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9일부터 1월 23일까지 녹색문화기금 프로그램으로 쿠바를 다녀온 그린네트워크 장원 대표가 쿠바방문기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합니다. 이번 연재에는 쿠바의 환경, 유기농 실태, 사회복지 등을 비롯해 쿠바 거주 한인들의 생활상 등도 소개됩니다. 장 대표의 연재는 모두 7회 정도이며, 이 기사는 그 다섯번째입니다....편집자 주

a 체 게바라의 동상

체 게바라의 동상 ⓒ 장원


'체'는 예수고 '피델'은 신이다. 적어도 쿠바에서는 그렇다. 체는 죽어 쿠바 민중을 해방시켰으며, 피델은 살아남아 신이 되었다. 그러나 혁명 45년이 지난 지금, 이 현대판 신권적 사회주의 체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달러라는 우상 때문에, 달러라는 물신 때문에, 잉카 제국의 정체(政體)와 비슷한 쿠바의 신권적 사회주의는 최대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물론 쿠바 내에서는 가는 곳마다 아직 '피델 가라사대'가 건재하며, 여타 중남미 국가에서도 피델의 인기가 여전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쿠바에는 세 개의 클럽이 있다. 식민 역사가 용해되어 있는 쿠바의 대표적인 사탕수수 술 아바나 클럽, 이제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 버린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그리고 '달러 액세스(Access) 클럽'이 그것이다.

달러 클럽은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 친척이 있어서 달러를 송금 받을 수 있거나, 아니면 아바나 같은 대도시나 바라데로 같은 관광지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달러를 벌 수 있는 계층을 말한다. 달러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은 '페소(쿠바의 통화 단위) 클럽'에 속해 있는 셈이다.

식민 역사가 용해돼 있는 사탕수수 술 '아바나 클럽'

그런데 이 달러 클럽이 쿠바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 교수와 전문의들은 한달 급여가 20달러도 안 되는데, 밤거리의 여인들은 단 하룻밤에 100달러씩을 벌 수 있으니, 그로 말미암은 극심한 빈부 격차와 불평등 구조의 심화는 심각한 정도를 이미 넘어서고 있다.


물론 정부 관료들은 달러 클럽이니 페소 클럽이니 하는 분류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누구나 달러를 구할 수 있으며, 누구나 달러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달러 중심의 경제 체제는 이제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으며, 단 그로 인한 빈부의 격차가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적절히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도 않거니와 아무도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는다. 나라나 개인이나 달러 벌이에 그야말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이 참에 피해를 보는 것은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다.


외국인들에게는 생수 한병에 1달러이고 모히또(민트 잎을 넣은 럼주) 한잔에 3달러나 받는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입장료만 20달러이다. 쿠바인들의 한달 월급인 것이다. 당연히 엄청난 빈부 격차가 발생하게 되며, 이 격차는 여느 자본주의 국가의 그것을 오히려 넘어서고 있다.

자발적 가난 또는 수평적 가난일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어쨌든 평등하기는 했으니까. 지금은 달러 있는 자와 달러 없는 자 사이의 상대적 박탈감이 너무 크다. 바로 이것이 건강했던 쿠바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사실 쿠바 국민들에게는 최소한의 식량, 주거, 교육, 그리고 의료가 무상으로 보장되어 있다. 유아사망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며 쿠바인들의 평균 수명은 76세에 이르고 있다. 범죄 발생 빈도도 여타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대단히 낮다.

a 시거를 물고 있는 여인

시거를 물고 있는 여인 ⓒ 장원


그런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제는 쿠바인들이 더 많은 부와 더 많은 자유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달러를 벌기 위해서 쿠바의 자존심을 버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자유를 찾기 위해 치열한 암중 모색을 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돈과 자유를 찾아 아예 외국으로 나가고 싶어한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 국립의료원의 책임자로 있는 에멜리아의 얘기를 들어보자.

"비록 모자라는 게 많기는 하지만 우리는 혁명을 통하여 이룩한 것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 중심이 된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 곳에서는 사회 정의가 시스템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피델을 믿습니다."

또 다른 사람, '우정의 집' 바실리오 총지배인의 얘기를 들어 보자.

"자본주의는 하나의 직장을 가지고 둘이 경쟁합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모든 면에서 평등을 추구합니다. 언론의 자유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 봉쇄를 비롯한 미국의 전방위 압박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도의적으로 정부에 대해서 또는 체제에 대해서 불평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들 두 사람은 쿠바 사회 내에서 다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은 일반인들의 얘기도 한번 들어 보도록 하자. 그런데 그것이 참 쉽지가 않다. 일단 보통 사람들과는 영어가 통하지 않고, 그나마 어렵게 영어를 몇 마디라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거개의 경우, "바이 시거" "기브 미 원 달러" "굿 바 매니 걸" 하는 식이니 절망하게 된다.

다행히 영어가 통하는 결혼한 대학생을 만날 수 있었는데, 절대 이름도 밝히지 말고 사진도 공개하지 말 것을 전제하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무엇보다 학생으로서 외국에 자유롭게 나갈 수 없는 것이 불편해요. 자유와 권리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보장되어 있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사회주의 국가라 사회 보장이 다 된다고는 하지만 부족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한달에 약간의 쌀, 빵, 커피, 설탕, 소금, 콩 등을 배급받는데 그것 가지고는 모자라요. 고기도 먹고 싶고 달걀도 사야 하고, 비누, 치약, 식용유, 옷가지, 신발 등 살 것이 무척 많답니다.

그런데 한달에 받는 돈은 200페소(8달러)밖에 안되지요. 우리 아이가 열병에 걸렸을 때는 병원에 몇 군데나 갔었는데, 문제는 처방해야 할 약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결국은 돈을 주고 암시장 같은 데서 구해 오거나 외국에서 오시는 분들한테 부탁해야 하지요."


마탄자 신학대학의 한 교수는 더욱 적나라하게 현실을 얘기해 주었다.

"요즘은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옵니다. 현재 좌절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위기에 종교적이 되기 마련입니다. 쿠바에서 교회는 압력 밥솥에서 김이 새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안 그러면 압력을 못 이겨 터질 것입니다.

혁명 전에 아바나는 창녀와 도박의 도시였습니다. 그러면 혁명 후에는? 창녀와 도박에 음주와 마약이 더 보태졌습니다. 이대로는 안됩니다. 쿠바 체제의 비효율성은 고쳐져야 합니다. 일당 독재도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당이 생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놈이 다 그 놈이니까요. 궁극으로 자유, 민주주의, 다양성, 토론 문화의 정착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혁명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다른 라틴 아메리카의 국가들에 비해서 쿠바는 잘하고 있다. 미국의 엄청난 압박과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카리브해의 이 작고 아름다운 섬나라는 용케도 버텨 내고 있다.

a 쿠바의 유기농 도시 농장

쿠바의 유기농 도시 농장 ⓒ 장원


미국의 경제봉쇄로 인해 농약이나 비료를 들여오지 못하자 전 농토를 유기농으로 전환시키기 시작했고, 차량을 들여 올 수 없게 되자 수십만대의 자전거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특하고 장한 일이다.

그러나 쿠바는 여전히 바람 앞의 등불이다. 안에서 부는 바람도 만만찮고 밖에서 부는 자본주의의 바람은 가히 돌풍이라 할 만하다. 사회주의 체제인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해 세계 어느 나라가 이 돌풍을 잠재울 수 있었던가?

자본주의는 계속 달리지 않으면 넘어지고 마는 두발 자전거이며 사회주의는 천천히 가지만 넘어지지 않는 세발 자전거라고 글쓴이는 생각해 왔다. 자본주의의 자전거는 방향을 잘못 잡아 파멸을 향해 제 죽을 줄 모르고 달리고 있고, 사회주의의 자전거는 방향은 옳을지는 몰라도 너무 느리고 실제 그 구현에 문제가 많다.

이제 무엇이 대안 체제인가? 뒷바퀴에 작은 바퀴가 둘 달린 네발 자전거가 대안인가? 그것은 생태사회주의인가 아니면 생태민주주의인가? 우리는 여러가지 면에서 쿠바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무려 스물여섯시간의 비행을 감내하면서 그 곳으로 달려간 것 아닌가?

쿠바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라틴 아메리카의 아즈텍, 잉카, 마야 문명처럼 어느날 갑자기 쿠바는 사라지고 말 것인가. 쿠바는 대체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누구도 믿지 않는다는, 심지어는 자기 부모도 믿지 않는다는 카스트로를 믿어야 하나? 아니면 체의 부활을 믿어야 하나?

체의 아들, 까밀로의 얘기를 마지막으로 들어보자.

"무엇보다 쿠바의 생존 자체가 지금은 중요합니다. 이상적인 해법을 논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쿠바의 생존 자체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쿠바여 꿋꿋하라! Cuba Si!

덧붙이는 글 | 시사저널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시사저널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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