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민족반역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모르는 조총련 이야기<6> 리츠메이칸 APU 3학년 박경신씨

등록 2004.07.15 18:38수정 2004.07.1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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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까지 민족학교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재일조선인의 국적 문제와 교육 문제를 다뤘다. 하지만 재일조선인사회가 지금까지의 인터뷰에서 보이듯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 정세와 더불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한 이후 일본이나 한국으로 국적을 바꾸는 이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또, 젊은 세대 중에는 전통적인 민족과 국가 개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기자가 만난 박경신씨는 2001년 규슈조고를 졸업하고 현재 일본 대학 리츠메이칸 APU(Asia Pacific University)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대학생이다. 박씨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민족과 국가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동시에 민족학교와 총련에 대해 비판적 시선를 분명히 했다(그는 현재 대학 내 NPO(Non-Profit Organization) ‘코코코리아’의 회장이기도 하다).
다음은 간추린 인터뷰 내용이다

한국 국적을 가진 일본인 4세대

리츠메이칸 APU 3학년 박경신씨
리츠메이칸 APU 3학년 박경신씨장원재
- 언제 가족이 일본에 왔나.
"일제시대에 증조할아버님이 증조할머님, 큰할아버지와 함께 일본에 왔다고 들었어요. 와서 일본 이름으로 바꾸고 떠돌다가 지금의 기타규슈시 고쿠라 근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도 그곳에서 태어났죠."

- 일본에 정착하기까지 고생이 많았을텐데.
"할아버지는 자석으로 고철을 모아 팔며 하루하루 살았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다 명태알을 만드는 공장을 세웠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자 그 자금으로 파칭코를 세워 성공했죠(재일조선인들 파칭코 사업을 하는 이들이 많다)."

- 그럼 몇세대인가.
"4세대입니다. 어머니 쪽으로는 3세대고요."


- 국적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에 와서 바꿨어요."

- 국적에 대한 생각은.
"(잠깐 생각하다) 전 국적은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국적이 한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것도, 존재를 결정하는 것도 아니죠. 그건 자기 자신이 판단하는 거죠. 그리고 조선 국적을 가지고 일본에서 사업을 하거나 활동을 하려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칠 수 밖에 없어요."


- 국적을 바꾸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지 않나.
"조선적에 대한 차별은 편견이나 선입견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여러 매체들에서 자이니치는 이렇다, 저렇다고 말하는 것을 일본인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죠. 그걸 다시 되짚어보고 자기만의 시야를 갖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저희 서클 ‘코코코리아’에서 하고 있는 활동입니다.

- NPO ‘코코코리아’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면.
"일본은 이미 다민족 사회고 빠르게 변화하는데 일본 고등학교에서는 그런 것을 배우지 못합니다. 지금까지의 선입견과 편견을 다시 생각해보고 나름의 기준으로 걸러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고등학생들을 도와주는 것이 ‘코코코리아’의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서 심포지움, 한국어 교실, ‘코코코리아 학습’ 등의 활동을 하고 있어요. (잠깐 생각하다) 저는 결국 자이니치에 대한 차별도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일본 문화에서 생기는 한 문제라고 봅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 근본적인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 친구들은 이름을 어떻게 부르나.
"한국 친구들이나 자이니치들은 ‘경신’이라고 부릅니다. 일본 친구들은 ‘신’이라고 부르지요. 물론 일본 이름도 있습니다. ‘야마시타’가 제 성이고 이름은 ‘경신’을 일본식으로 읽기도 하죠. 하지만 그게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가 쓰고 싶은 이름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 초등학교부터 계속 민족학교를 다녔나.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계속 민족학교를 다녔습니다. 할아버지는 별 말씀이 없으셨지만, 큰 할아버지가 조총련 쪽에서는 꽤 유명하신 분이었어요. 집안의 어른이라 그 분 뜻을 따라야만 했죠."

장원재
- 민족학교에 다니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나.
"주변의 친구들이 다들 자이니치(재일조선인의 일본식 줄임말)들이라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보통이라고 느꼈죠. 학교에서는 재일조선인이라면 당연히 민족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친구들과는 같은 처지라 유대감을 느끼게 됐어요. 길게는 초등학교부터 12년간 같이 생활하기도 했으니까요."

- 민족학교에 다니면서 도움이 됐던 점은.
"좋았던 점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학교에서 예절 교육을 받기 때문에 예의가 바르게 된다는 점이죠. 다른 하나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깊게 사귈 수 있다는 점입니다."

- 그럼 민족학교의 문제점은.
"학교에서 조선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려고 노력하고,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는 것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부심을 느낄 것인지 아닌지는 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차피 일본에서 살아야 하는데, 민족학교는 일본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용을 가르칩니다. 수준도 낮고요. 대신 필요없는 사상교육을 너무 중요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죠."

- 민족학교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보나.
"싱가폴 학교처럼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싱가폴에서는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수업을 받습니다. 언어와 문화를 배울 때만 다른 교실에서 공부를 하죠. 저는 이처럼 민족학교도 일본인들, 다른 민족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

- 그것은 민족학교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물론입니다. 일본 학교에서도 자이니치를 받아들이고 합당한 교육을 제공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일조선인과 일본인들은 함께 일본에서 지내면서도 마치 다른 나라에 사는 것인 양 살아왔어요. 때문에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으면서도 일본 친구 하나 없는 민족학교 학생들이 생기는 거죠. 제게는 이런 상황이 매우 모순적으로 느껴집니다."

- 결국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보나.
"먼저 일본 정부가 달라져야 합니다. 일본 정부에서 자이니치들을 포용할 수 있는 교육 제도를 만들어야죠. 그리고 두번째로는 총련도, 민단도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총련은 북한을, 민단은 남한을 위한 조직 아닙니까?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재일조선인들을 위한 재일조선인들의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 총련은 민족을 지키려는 의식이, 민단은 일본 사회에 적응하려는 생각이 강하다고 들었는데.
"그 점에 있어서는 민단 쪽의 생각이 옳다고 봅니다. 사실 민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사회에 나와봤자, 변변한 직장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살 필요가 없잖아요. 지금 글로벌 시대인데 언제까지…. (안타까운 표정으로) 너무 시야가 좁고 보수적인 거 아닌가요?

"민족학교도 변화가 필요하다"

장원재
- 총련과 민족학교 설립 당시에 북한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는데, 아직까지 부채의식이 있나.
"처음에는 북한에서 원조를 많이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나이드신 세대들 중에는 ‘은덕을 입었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 후 계속해서 재일동포들이 북한에 원조를 해왔죠. 민족학교에서는 북한에서 오는 장학금을 받을 때마다 학습을 합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일본 사회에서도 인정이 되는 학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잠깐 생각하다가) 민족학교가 많이 달라져야죠."

- 그런 생각을 재학시절에도 가지고 있었나.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었어요.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끼리도 이건 이렇게 바뀌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죠. 하지만 학교가 그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굉장히 힘들죠. 특히, 저는 학교위원장(학생회장)이어서 더 조심스러웠어요."

- 일본 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제 꿈이 일본에서 사업을 해 성공하는 겁니다. 그리고 세계를 더 넓게 보고 싶었어요. 조선대학교에 진학하면 불가능한 꿈이었죠. 아버지께서 먼저 조선대학교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버지 자신도 조선대학교를 나오셨으면서 말이죠. 선견지명이 있으신 분입니다. (웃음)"

- 학교에서는 일본대학 진학을 말리지 않았나.
"당시 졸업생 53명 중 6명 정도가 일본 대학교로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일 큰 문제였죠. 규슈조고 45년 역사에서 제가 처음으로 일본 대학에 진학한 학교위원장이었으니까요. 그 때문에 선생님들에게 회유도 많이 당했고, 욕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친구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몇년 동안이나 함께 지냈던 친구들이 제게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나’, ‘나는 이제 너를 못 믿겠다’라고 말했어요. 한 친구는 ‘너는 민족반역자다’ 라고까지 말했죠. 그 전까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었는데, 이후로는 연락도 안합니다. 학교에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분한 듯)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단지 일본 대학에 가는 것 뿐인데 말이에요. ‘민족반역자’라니…."

- 얼마 전에 규슈조고에 다녀왔는데, 일본 대학 진학을 막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억울한 듯) 정말 그랬어요? (잠깐 생각하다가) 사실 제가 학급 위원장이라서 좀 심하게 시달린 편이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좀 달라졌을 거라고 봐요. 지금 그 학교에 재학중인 제 동생에게서 들은 얘기도 그렇고…. 제가 졸업하고 나서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시인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죠. 정말 센세이셔널한 일이었죠. 하지만 총련 자체가 변하지 않으면 학교가 변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다른 한국인과 똑같지는 않지만...

NPO '코코코리아' 회의 모습
NPO '코코코리아' 회의 모습장원재
- 자이니치의 정체성은.
"저도 계속 자신에게 묻고 있지만 아직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한국인이라고 말할 것인가, 어디까지를 자이니치라고 볼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죠. 저는 한국 국적이지만, 다른 한국인들처럼 군대에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적을 가지고 따지거나 일본, 한국, 북한 이렇게 카테고리를 나눠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라고 봐요. 개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나, 그게 더 중요한 것 아닌가요? 그리고 자이니치로서 구별되는 정체성이 있을 것 같아요. 일본, 한국, 북한 어느 쪽에 치우쳐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닌 고유의 정체성. 아직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확실하게 대답은 못 하겠지만.

-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이 있나.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이니치들은 보통 한국, 북한, 일본 중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면서 서로 나뉘게 되죠. 하지만 대학에 와서 많은 이들을 만나보니 그렇게 볼 게 아니더군요(APU는 정원의 절반이 외국인인 국제대학이다). 여기 학생들 중에는 말레이시아 차이니즈, 필리핀 아메리칸 등 다양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있는 이들이 많아요. 물론 사무적으로는 국적으로 분류되지만, 함께 수업을 듣거나 일을 할 때 국적 같은 건 중요하지 않죠."

- 대학에 와서 느낀 점은.
"(강하게) 제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민족학교에서는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일본 정세가 어떤지에 대해 전혀 가르치지 않아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민족학교 학생들은 공부를 너무 안합니다. 저도 대학에 와서 처음에는 고생을 좀 했지만 이제는 일본사회에서, 또 국제사회에서 잘 살아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

-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면 어느 학교에 보낼 생각인가.
"그건 부인과 상의해봐야겠죠? (웃음) 민족학교는 싫습니다. 그렇다고 일본 학교에 보내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차별이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두 학교 모두 너무 시야가 좁은 교육을 하기 때문이죠. 자식을 낳으면 (잠깐 생각하다가) 초등학교는 한국에서 마치게 하고 중학교부터는 싱가폴이나 다른 외국으로 보내서 좀 더 넓은 시야를 키우게 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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