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장모씨', 10년만에 외출하다

첫 단행본 <'그'와의 짧은 동거> 펴낸 만화가 장경섭

등록 2005.12.22 21:52수정 2005.12.23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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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있음을 발견했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a <'그'와의 짧은 동거>

<'그'와의 짧은 동거> ⓒ 장경섭, 길찾기

만화가 장경섭, '그와의 짧은 만남'은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1996년 '저예산 독립만화지' <화끈>에 실려 있던 <장모씨 이야기>라는 작품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한 건물의 옥탑방을 배경으로 만화가인 '장모씨'가 펼치는 일종의 모노드라마인 이 작품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새로움에 새삼 감탄하게 될 정도로 기존의 만화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연출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후 1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만화가 장경섭은 아주 잠깐씩 몇 개의 지면에 얼굴을 내밀었다가 오래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좀처럼 독자들의 시야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잠깐씩 얼굴을 내밀었던 지면들은 하나같이 주류 만화와는 동떨어진 곳이어서, 그에게 관심을 갖고 있던 독자라고 해도 만나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그가, 드디어 자기 이름으로 된 단행본을 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0년 동안 지극히 '짧은 만남'만을 허락해왔던 만화가 장경섭과의 '긴 만남'은 어떤 기분일까. 본격적으로 책을 펼치기에 앞서 '그와의 짧은 만남'을 한 번 더 가져보았다. 다만 이번엔 지면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침을 튀겨가면서.

(필자와 함께 장경섭씨를 인터뷰한 필명 '깜악귀'는 만화비평모임 '두고보자'에서 활동하는 만화비평가입니다...편집자 주)

a

ⓒ 이성민


만화가 장경섭을 아십니까?

-필자(아래 생략): 10년이 넘게 만화가로 활동해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어쩌면 장경섭이란 만화가를 처음 알게 된 독자가 더 많지 않을까 싶은데요. 처음 만화가로 데뷔하셨던 게 <화끈>을 통해서라고 보는 게 맞겠죠?
장경섭(아래 생략): "그렇죠. 그런데 저처럼 주류의 바깥에서 어물쩍거리다 시작하는 사람들은 뭐든 애매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1996년에 <화끈>을 통해서 데뷔했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해도 어떤 입장에서 보면 그 말 자체가 전혀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말하기가 항상 난감해요. 그래서 그냥 낯설면 낯선 대로 작품을 통해서 봐주셨으면 싶어요."


-데뷔 전에 만화 공부는 어떻게 하셨어요?
"대학 때 만화동아리에 들어가서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조금씩 그렸어요. 그러다가 만화를 그리면서 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뭐 달리 하고 싶은 게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10년 동안 만화가로서 어떻게 지내 오셨나요?
"<화끈> 관련된 작업을 1년쯤 하고나서는 여기저기 날품팔이로 삽화도 하고, 조교도 하고, 가르치는 것도 하고… 특별히 생각나는 건 아내 만나서 결혼한 것하고 애가 생겼다는 것 밖에 없네요. 생각이 안 나요, 10년 동안 뭐했는지. 진짜로.


어렸을 때 저는 서른 이후의 인생을 꿈꿔본 적이 없어요. 우리 어릴 때 보던 잡지 같은 데는 지구 멸망설 같은 기사가 많았잖아요…(웃음) 전 정말로 지구가 멸망하는 줄 알았어요. 겁나서 실제로 운 적도 있어요. 어렸을 때의 그 공포가 무의식에 박혀있었나 봐요."

장경섭 만화 속의 어둠과 공포

-작품 속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이 다뤄지고, 죽음의 이미지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도 그런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죽음 뿐 아니라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든가 번식에 대한 두려움처럼 삶에 내재돼 있는 공포에 대해서도 천착하시는 것 같고요.

a <즐거운 나의 방>

<즐거운 나의 방> ⓒ 장경섭

깜악귀: 장편인 <그와의 짧은 동거>를 보면 한 번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의지를 볼 수 있거든요. 그런데 기존의 단편들만 본 독자들은 자칫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희망은 못 보고 자살이라든가 죽음에 대한 탐닉만 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건 어떻게든 삶의 길을 찾고 싶다는 얘기일 텐데, 그런 의미에서 <즐거운 나의 방>의 경우는 끊임없이 자기를 죽이는 이야기이면서도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는 이야기이고, 보이지 않는 희망을 찾아서 살아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장경섭 만화의 순환구조

-평소에 많이 고민하시는 흔적들이 작품에도 드러나 있는데, 작품에 대해서 스스로는 얼마나 만족하고 계시나요?
"스스로 만족할 때도 있지만 그건 짧은 순간일 뿐이고요. <그와의 짧은 동거> 같은 경우도 뒤로 진행되면서 저 스스로에게 몰입되고 복잡해지는 바람에 이것이 독자들에게 제대로 읽힐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어요. 어떻게 끝은 낸 것 같은데, 어차피 제가 하는 얘기들은 사실 끝이란 게 굉장히 애매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작품들을 보면 순환구조로 짜여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것도 그냥 단순하게 반복되고 순환하는 게 아니라 작품 속의 세계도 그렇고 작가의 자아도 그렇고 한 번 뒤틀리면서 순환되는 느낌이랄까. 뫼비우스의 띠라든가 에셔의 그림이 연상되기도 하고요.
"전 그런 게 좋더라고요. 그런데 저 스스로는 좀 의문이었는데 장경섭의 대표작으로 <그와의 짧은 동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렇게 남들이 대표작으로 기억해주는 작품을 끝내지도 못하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려서 일단 이걸 끝내야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시간이 한 4, 5년 정도 지난 상황에서 보니까 좀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더라구요. 장모씨란 캐릭터도 조금은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되고요."

작가 장겹섭을 관찰하는 작가 장경섭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이전이나 이후의 작품들에서도 자기 스스로를 굉장히 객관화해서 바라보고 있다는 게 느껴지던데요. 창 밖에 나가서 방 안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a 만화가 장경섭

만화가 장경섭 ⓒ 이성민

"그렇게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사실 최근의 일이에요. 어느날 작업실에서 콘티를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냐, 그거 아니야~' 하고 제가 혼자서 얘길 하고 있더라구요. 마치 옆에 누가 있는 것처럼. 그런데 사실 저는 10년 전에도 누군가를 옆에 상정해놓고 혼자서 중얼중얼 얘기하는 버릇이 있었어요. <장모씨 이야기> 1편도 어떻게 보면 그런 모습인 거고요.

그런데, 저한테 그런 버릇이 있다는 걸 제가 실제로 느낀 건 콘티를 쓰고 있던 그 순간이었어요. 깜짝 놀랬죠. 10년 동안 계속 혼자서 떠드는 이야기를 그리고, 구상하고, 울궈먹던 사람이 실제로 현실에서도 자기가 그렇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 뒤부터는 저 자신을 약간은 떨어져서 바라보면서 비틀어볼 수도 있고, 가지고 놀 수도 있게 된 것 같아요."

- 지금까지 발표해 오신 작품들을 보면 거의 모든 작품에서 작가란 무엇인가 혹은 작가로서의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고민이 묻어있다고 느껴지는데요.
"저는 기억력이 떨어져서 아주 인상 깊게 봐도 집에 들어오면 다 잊어버리고 인상과 느낌만 남아있어요. 그러다보니까 어떤 객관적인 상황들을 조목조목 기억해내서 그것들을 작품 속에 재현해내는 것들이 저한테는 불가능하거든요. 그래서 그냥 저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게 관찰해서 일종의 일기처럼 표현하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본격적인 작품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저 자신한테는 만족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다이어리스트' 같은 직업이 등장한 거로군요.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일기를 판매하는 다이어리스트라는 직업을 보고 이렇게까지 자기비하를 하는 작가도 드물 거라고 생각했어요.

a <다이어리스트 블랙K>

<다이어리스트 블랙K> ⓒ 장경섭

"저는 어차피 제가 자기의 일기 같은 이야기들을 팔고 다니는 입장이라고 생각했어요."

a <고질라가 있는 풍경>

<고질라가 있는 풍경> ⓒ 장경섭

-예전에 <계간만화> 창간호에 발표하셨던 <고질라가 있는 풍경>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었거든요. 저는 그 작품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한 비판, 좀 거창하게 얘기한다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드리워져 있는 거대한 폭력(그걸 제국주의라든가 신자유주의 같은 말들로 바꿔 불러도 좋을 텐데요)에 대한 이야기라고 봤는데요.

사실 그게 이렇게 무슨 주의니 침략이니 폭력이니 하는 거창한 언어들을 동원해서 설명해도 잘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인데, 그걸 익숙하고 일상적인 말과 풍경만을 사용해서, 그리고 칸 안으로 들어오거나 나가는 그림자를 그냥 묵묵히 보여주는 연출만으로 드러내는 솜씨를 보고 충격을 받았죠.

그런데 스스로가 일기 같은 이야기를 팔고 다니는 작가라는 자기비하도 그렇고, <장모씨 이야기>를 비롯한 거의 모든 작품에 자학적인 요소들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그건 저같이 소심한 사람들의 버릇이지 싶어요.(웃음) 개인적으론 그런 자기부정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a <히말라야에 가보셨나요?>

<히말라야에 가보셨나요?> ⓒ 장경섭

뭐, 일기장에는 자기 목이 잘리고 하는 그런 낙서도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것이 만화로서 독자들에게 다가갈 때는 구성이라는 게 있고 뼈대라는 게 있어야 하잖아요. 적어도 발표하는 작품일 경우에는 그런 뼈대를 갖추는 게 최소한 기본적인 예의인 것 같아요. 그래서 머리를 싸매고 연출을 신경 쓰고, 스토리의 흐름을 고민하는 거죠."

깜악귀: 작품을 하시면서 영향을 받는 것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요?
"인상적인 만화나 영화, 책을 보게 되면 작업 중간에도 많이 흔들려요. 제 위치는 항상 좀 흔들리고, 흔들리면서도 어느 정도 중심을 잡고 방향성을 가지고 가는 그런 위치인 것 같아요."

-딱 <히말라야에 가보셨나요>의 캐릭터네요. 방향성은 있는데 계속 흔들리는.

장모씨와 수봉이 형

-<그와의 짧은 동거>의 바퀴벌레는 해석의 여지와 폭이 굉장히 넓은 것 같아요.

깜악귀: 노동자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가정주부와 남편의 관계로 보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저는 바퀴벌레가 작가 자신을 형상화한 거라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혹은 장모씨 연작에서 칸 밖에서만 존재하던 '수봉이 형'이 바퀴벌레의 모습으로 칸 안으로 들어온 거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수봉이 형 얘기가 나왔는데, 역시 <장모씨 이야기>는 수봉이 형을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겠죠? 기존의 만화들에도 간혹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한 캐릭터는 있어왔지만, 수봉이 형처럼 존재 자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혹은 존재하지 않는(수봉이 형은 주인공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니까요) 캐릭터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건 일종의 클리셰나 마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장모씨 이야기에는 왠지 수봉이 형이 등장해야 될 것 같더라고요.(웃음)"

a <장모씨 이야기>, 칸 밖의 '수봉이 형'과 대화를 나누는 장모씨.

<장모씨 이야기>, 칸 밖의 '수봉이 형'과 대화를 나누는 장모씨. ⓒ 장경섭

-대화의 상대가 칸에서 배제되어 있으니까 장모씨는 열심히 대화를 하고 있는데도 그게 다 독백이 돼버리잖아요. 실제로 대화를 나눌 때도 서로 소통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각자 하고 싶은 얘기들을 지껄이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이쪽에서 하는 얘기가 저쪽에 전달되지 않고 그냥 허공에서 흩어져버리는 상황.
"듣고 싶은 얘기만 귀에 들리기도 하고요. 사실 그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대사가 서로 오가지 않는 연출이 뭐가 좋냐 하면, 장모씨가 잘 모르는 얘기를 할 때는 상대방이 다 얘기를 해줘요.(물론 칸 밖에서) 그러면 장모씨는 그냥 동의만 해주면 돼요. '아 맞아, 그거.'(웃음) 이건 제가 볼 때는 그야말로 완벽한 대화가 되거든요. 처음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수봉이 형이 여러 번 등장하다보니까 이야기를 진행하는 중간에 제가 잘 모르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런 식으로 연출상의 잔머리를 쓰기도 해요.(웃음)"

깜악귀 : 작품들이 늘 고독한 개인의 이야기였는데, 그러면서도 그 안에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늘 존재했었어요.

-그런데 자기 얘기를 다루는 것과 사회문제에를 다루는 방식이 많이 다르시더라고요. 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기도 한데, 개인의 문제가 너무나 훌륭하게 만화적으로 표현된 데 비해서 사회문제를 다루시는 방식은 내레이션이나 독백으로 처리해서 말로 설명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것들을 일일이 그려주면 일단 너무 길어지니까 그리기도 귀찮을 뿐더러(웃음), 또 다양한 캐릭터들을 그려야 되는데 저는 캐릭터가 '장모씨'밖에 없거든요.(웃음)"

만화로 세상과 소통하기

- 그런데 만화를 통해 자기 얘기를 하시면서도 늘 연출하는 방식이라든가, 새로운 모습들을 자꾸 보여주시잖아요. 독자로서 그런 것들을 보는 즐거움이 상당하거든요.
"사실 가끔은 연출을 하면서 내가 왜 이 노가다를 해야 되나 회의가 들 때도 있어요. 내용이 아무리 재미없고 자학적이고 낯설고 하더라도 일단은 읽혀야 되고, 전달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연출은 쉽게 하려고 노력해요."

-그만큼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신경을 많이 쓰신다는 얘긴데, 작가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구구절절하게 설명 필요 없이 그대로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만화가 가진 힘 중의 하나잖아요.
"힘이자 또 약점이죠. 감춰지는 것 없이 너무 다 보여져버리니까 만만해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만화라는 매체를 가볍게 대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 점에서 장모씨 같은 경우에는 다 보여주질 않잖아요. 수봉이 형도 안 보이고.(웃음)
"그게 의도했던 장치는 아닌데, 그런 욕심이 좀 있어요. 다 보여주지는 않겠다는. 그런데 만화는 소설과는 다르게, 예를 들면 칸을 이용한 연출이라든가 <그와의 짧은 동거> 같은 경우에 개연성이나 설명 없이 바퀴벌레가 툭 등장해버리는 이런 장면에서 독자들이 만화적인 시원함 같은 걸 느끼는 것 같거든요. 소설에서도 이런 게 가능하긴 하지만 만화처럼 충격적인 효과는 떨어지니까요."

a <서브웨이 카니발>

<서브웨이 카니발> ⓒ 장경섭

-<서브웨이 카니발>에서 장모씨가 지하도로 내려가는 장면의 경우는 이걸 글로 풀어놓으면 그 느낌이 바로 오지도 않을 뿐더러, 사실 만화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연출이잖아요.
"똑같은 그림을 세 번 그리다 보니까 좀 지루해서 한 번 틀어준 건데, 만화를 그리다보면 그런 경우들이 가끔 있어요. 그런 부분들은 그리면서도 재밌지만 보는 사람들도 재미를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깜악귀 : 작품들이 굉장히 독자성이 있는데, '이것이 어떤 만화다' 하고 부르기가 꽤 애매한 것 같아요.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기를 원하세요?
"<그와의 짧은 동거> 중간에 갯벌 이야기가 잠깐 나오잖아요. 제 만화는 그런 것 같아요. 바다도 아니고 땅도 아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서 계속 변하는 갯벌 같은 이미지랄까. 개인적인 욕심이라면 그냥 '장경섭 만화'라고 불리는 거죠. '걔는 어떻게도 분류하기 어려워. 그냥 자기만화야'라고."

깜악귀 : 그건 욕심이라기 보단 어마어마한 야심이네요!!(웃음)
"이제 책이 나오니까 저도 어디 가면 만화가라고 얘기하고 다닐 것 같고…. 그 전에는 만화가라고 안 했어요. 그냥 대답을 못 했죠. 대답을 안 하고 있으면 20대 때는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30대가 되니까 불쌍하다는 듯이 시선을 한 번 던지고는 더 이상 안 물어보더라고요.(웃음)

스스로도 내가 뭐하는 인간인지 모르겠다고 스스로를 부정하면서 살아왔는데‥ 저 같은 캐릭터는 사람들 앞에 드러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도 자꾸 하게 되네요. 자기를 가장 밀접하게 드러내는 나만의 이야기들은 사실 보여주고 싶지 않거든요. 부끄러운 것들이고…."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은 작품을 통해서 다 보여주고 계시잖아요.
"그게 묘하더라고요. 보여주고 싶으면서도 보여지고 싶지 않은 기분. 연출을 해서 다 만드는 건데도 그래요."

-그런데도 만화를 그리신다는 건, 그것도 그렇게까지 연출에 신경을 쓰면서 그린다는 건 그만큼 자기를 드러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텐데요?

깜악귀: 자기를 남한테 이야기해야 할 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거든요. 나는 내가 누군지 알겠고, 내 안에선 그게 확실한데 그게 한마디로 얘기가 안 되니까 소설이나 만화 같은 걸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게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런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말더듬이인 셈이죠. 생각하는 것, 보여주고 싶은 것과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의 불일치를 어떻게든 극복해보려고 그런 식의 사족들을, 인생의 사족들을 자꾸 달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해온 작품들이 사족이었다면 부디 지네처럼 많은 발을 달아주시기를 부탁드려야겠네요. 독자로서 장경섭 작가님의 작품을 읽는 즐거움을 좀더 많이 누리고 싶거든요.

장모씨, 10년만의 외출

▲ 좀머씨 이야기와 장모씨 이야기

<장모씨 이야기>는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를 패러디해서 만든 제목이다. 10년 전 <화끈>에 실렸던 <장모씨 이야기>의 타이틀 페이지도 장 자끄 상뻬가 그린 <좀머씨 이야기>의 표지를 패러디해 그린 것이었다. 좀머씨가 가지고 있는 '은둔'의 이미지는 작가 장경섭과 그의 캐릭터인 장모씨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데뷔 후 10년 간 그야말로 '은둔'해 있던 작가 장경섭은 <'그'와의 짧은 동거>를 통해 처음으로 온전히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성인여성을 위한 만화잡지 <허브>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성인여성을 위한 만화잡지 <허브>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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