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대로의 당신이 좋아요

[서평] 베델의 집 이야기...<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등록 2006.01.13 18:45수정 2006.01.13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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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미지 ⓒ 삼인

인생을 병과 함께 살아온 베테랑 정신병 환자들에게서 깊은 평안을 얻는다.

<'베델의 집'의 표어>
'포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 놓고 땡땡이 칠 수 있는 회사 만들기'
'편견, 차별 대환영, 결코 규탄하지 않습니다'
'다시마도 팔지만 병도 판다'
'있는 대로, 그대로'
'고생 되찾기'
'약함을 유대로'
'그것으로 OK!'
'베델은 항상 문제투성이'
'문제 해결하지 않기'
'고치지 않는 의사 지향하기'
'베델을 접하면 병이 생긴다'
'베델은 전염된다'



'장애인'과 '정상인' 사이

이 책은 일본에서 정신장애인 공동체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 '베델의 집'이라는 공간을 취재한 르포이다.

최근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변하고 있지만,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뭔가 도움을 주고, 돌봐줘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생각이 가연성 물질처럼 숨어 있다. 또 정신분열증에 이르지는 않았더라도 '울병', '은둔형 외톨이', '불등교', '알코올 중독' 등 무언가 답답해서 잘 살아갈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그런데 의사나 교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을 어떻게 하면 자기들 같은 '정상인'처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관리'한다. 그러나 '베델의 집'에서는 다르다.

'베델의 집'을 보면, 장애인들은 보살펴주고 보호받지 않으면 제대로 살지 못한다는 생각이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애인의 '장애성'에만 시선을 두고 자립과 사회 복귀를 말해온 우리의 고정관념과 안일함, 도덕과 정상에 대한 관념들이 뒤흔들린다.

'베델의 집'은 "병에 걸려서는 안 된다, 지금 이대로의 당신이어서는 안 된다"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구속하는 사회적 명령에서 벗어난 곳이다. 삶의 어려움과 인간의 약함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데에서 출발하는 자신과의 화해와 유대야말로 진정한 인간 회복을 가져온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러한 '베델의 집'은 독지가나 국가적 지원이 아니라, 스스로 장사를 하고 이익을 올려서 유지되고 있다. 과연 여기서는 누가 '장애인'이고 누가 '정상인'일까?


회사 창업이라는 모험으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간다

홋카이도 우라카와라는 작은 바닷가 동네에 '베델의 집'이 있다. 그동안 마을에서 문제를 일으켜 나가달라는 말을 들으며 순찰차나 구급차 신세도 져왔지만, 실패를 거듭하면서 장사를 시작해 노하우를 쌓으며 조금씩 마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베델의 집' 사람들 스스로 공동 주거와 작업장, '유한회사 복지숍 베델'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특산품인 다시마를 비롯해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서 팔고, 다채롭고 독특한 활동을 펼쳐왔다.


"'베델의 집'이 회사를 설립한다는 것은 실로 무모하고 세상 사람들의 상식과 동떨어진 사건"이었다. '의료'나 '복지', '행정'의 틀 안에 있는 한 그들은 항상 병자, 즉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이고 '장애인', 곧 사회에 복귀해야 하는 미완의 존재였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발짝 나아가 장사의 세계로 들어가자, 의료 세계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만남과 연대가 생겼다.

그 모토는 "마음 놓고 땡땡이칠 수 있는" 회사이며, "일할 수 없는 사람은 자도 좋다"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정신'이다. 이러한 '베델의 집'의 불평등한 시스템을 일반 사회는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베델의 집'은 그 결과로 망하기는커녕 상상 이상의 이익을 낳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엔 참으로 말로는 다하지 못할 고생이 있었다. "병을 앓으면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하는 고민과 고생이 가득 차 있었다.

분열병과 함께 살며,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사람들

어떻게 이렇게 사는 것이 가능했을까? 저자는 '베델의 집'의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며, '베델의 집'을 가능케 한 것은 무엇인지 물어간다. "그들의 이 '살아가는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라는 의문 속에 그것을 묻기 시작한 저자를 기다린 것은, 더욱 큰 정신의 표류와 놀람, 감동이었다.

정신분열병은 친구들이 생기는 병이라고 믿는 자칭 '즐거운 분열병 환자', '자, 빨리 밥 먹어'라는 말에 몸이 몇 시간씩 굳어지는 사람, 망상에서 오는 '상상 임신' 소동이나 열렬한 연애와 파국 등의 에피소드들, '치료할 수 있는 의사'를 목표로 하다가 고치지 않으려는 의사를 지향하며 병과 어떻게 사귈지 알려주는 의사, 엄청난 좌절과 휘둘림 앞에서 절망이라는 광맥을 파냈다고 기쁨을 느끼는 사회복지사. '베델의 집' 사람들과 의사, 목사, 지역 주민이 만들어가는 만남과 충돌, 교류는 실로 감동적이다.

'베델의 집'에서는 효율을 우선시하는 현대사회와는 다른 색다른 원칙이 있다.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병을 고쳐야지 하고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그대로 있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신병이라는 '무거운 사실'을 안고 그 사실과 마주하고 그 아래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응시하면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묻는 생활방식이다. 거기에서 의료라는 차원을 넘어선, 치료라는 틀에서는 결코 평가받을 수 없는 풍요로움이 생긴다.

고민하는 힘으로, 약함을 유대로 인생의 달인이 된다

저자는 이러한 '베델'식의 삶을 보면서, "돌아보면 지금 우리 사회는 정신장애인이 그러한 고생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신장애인은 병이나 인간관계 등으로 엄청난 고생을 짊어지면서도, 보호나 보살핌 등의 이름 아래 병원에 갇혀서, 고생에 직면하는 자유, '고민하는 힘'을 계속 빼앗겨왔다"는 것이다.

'베델의 집' 사람들은 '고민하는 힘'으로 병을 고민하고, 병과 함께 살아가는 인생을 고민하며, 살아가는 것의 풍요로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고민'이나 '병'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거기서 벗어나려고 애써 외면하면 할수록 '고민'도 '병'도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베델의 집 사람들이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고민'과 '병'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사귐으로써, '고민'이나 '병'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고민'이나 '병'과 자유로운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난리와 싸움, 병과 발작과 혼란, 문제투성이인 '베델의 집'이지만, 이 책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안도감의 근원은 적극적인 삶의 방식에 있다. 이 책은 여러 의미에서 놀라움의 연속이다. '정신장애인'을 이해하는 데에서 나아가 자신의 약한 부분이 받아들여지는데서 오는 위로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불가사의한 희망을 느끼게 한다. '베델의 집' 사람들은 베델에 오면 병이 생긴다고 한다. 이 병이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유쾌한 정신장애인들의 공동체 '베델의 집' 이야기

사이토 미치오 지음, 송태욱 옮김,
삼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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