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흐트러진 상태인 하야사카입니다"

[서평]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등록 2008.07.23 19:13수정 2008.07.2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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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삼인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삼인

난 번역가다. 아니 엄밀히 얘기하면 '번역가 지망생'이다. 옛날에 대여섯 명이 함께 번역한   것이 책으로 나온 적은 있지만, 2년 전에 번역한 책은 아직 출판이 안 됐고, 요즘 책을 두 권 번역하고 있는데… 아무튼 이번에는 꼭 나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번역을 하고 싶어하다 보니까 출판사 몇 곳을 드나들고 그러다 보면 편집자들이 공짜로 책을 줄 때가 있다. 뭐, 다른 거 줄 거는 없으니까. 그런데 잘 팔리는 책은 안 준다. 별 재미를 못 본 책, 그러니까 2쇄를 못 찍은 책을 먼지를 쓱 닦은 다음 준다. '드림'이라는 고무인을 찍는 것도 잊지 않는다.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라 일단 받지만 읽을 일이 없다.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삼류 번역가도 마찬가지니까.

 

그런 책들은 대부분 몇 번을 만지작거리다가 동네 헌책방 아저씨에게 선물로 드린다. 그러면 아저씨는 잘나갔던 헌책을 답례로 주신다. 그러다가 너무 심심해서 그 중에 하나를 읽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사이토 미치오 지음, 송태욱 옮김, 삼인 펴냄). 일본에서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이 1979년부터 우라카와의 버려진 교회 건물을 '점거'하고 사는 이야기이다.

 

일본 각지에 온 사람들이 다 보였다, '베델의 집'

 

일본 각지에서 온 이 정신 나간 사람들은 버려진 교회를 신이 사는 집이라는 뜻의 '베델의 집'이라고 부르고 무작정 함께 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냥 할 일 없이 지내다가 심심해서 다시마 손질 부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5년 후에 겐짱의 전화 한 통으로 이 부업을 잃게 된다. 공장에서 다시마가 오지 않자 퉁명스러운 겐짱이 그것도 약을 먹고 전화를 걸어서 "저어, 다시마, 언제 오냐고요"라고 물었지만 상대는 "저, 다시-, 언, 오냐-요"로 들은 거다. 통화는 곧 말싸움으로 변했고 공장에서 트럭이 와서 다시마 작업 도구를 몽땅 가져갔다. 그리고 겐짱은 'A급 전범'이 됐다.

 

그후 "바보들이 그런 걸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소리를 듣고 모두 화가 나서 다시마 판매를 시작했다. 그리고 긴장을 하면 몸이 굳는 증상이 있는 하야사카 기요시씨 때문에 사업은 활기를 띠게 된다. 한 교회에 판매를 갔던 하야사카는 그만 몸이 굳어져 쓰러졌는데 그걸 본 교회의 주부들이 다시마를 모두 팔아준 것이다. 그래서 다시마 사업은 성공하고 베델의 집은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이 오고 싶어 하는 곳이 되었다.

 

뭐, 꼭 다시마 사업 때문만은 아니다. "별 건 아니야 노이로제 같은 거니까 약 좀 먹으면 나을 거야"라고 둘러 말 하지 않고 "넌 병에 걸린 거야"라고 솔직히 말하는 대신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분위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란다.

 

사실 이 점이 이 책이 한국에서 인기를 끌지 못한 이유다.

 

"관련 단체하고 복지기관에도 연락해 봤는데…… 병을 고치는 건 몰라도…… 그냥 둔다는 생각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

 

이 책을 한국어로 낸 편집자가 한 말이다. 하긴 베델의 집 사람들은 어느 곳에 초대받아 가면 "정신분열병자인 마스모토입니다"라던가 "정신이 흐트러진 상태에 있는 하야사카입니다"라며 자기소개를 한다. 이걸 좋아할 곳은 어디에도 없을 거다. 경찰이 출동 안하면 다행이고.

 

우리 솔직하게 말해요 "제가 정신이 좀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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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델의 집 ⓒ 삼인

베델의 집 ⓒ 삼인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책이 2006년 초, 그것도 새해 초에 야심만만하게 나왔다가 실패한 지 2년도 더 지난 지금 주목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광적인 교육열에 죽어가고 정치인들은 부끄러움도 잊은 채 광적인 파벌 싸움을 하고 있다. 또 60년 전 제주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 중에 33%가 아이들, 노인들, 여성들이라고 한다. 이런데도 이념 타령만 하면서 서로 "네가 미쳤다"고 외치고만 있기 때문이다. 언제 우리는 "미안합니다. 사실 제가 정신이 좀 나갔었나봅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 일은 지금은 희망이 없으니까 먼저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를 읽어보면 어떨까? 이 책을 읽으면 까르르르 웃을 수 있고, 회사에서 땡땡이 칠 용기도 생기고, 편견과 차별도 환영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책을 쓴 일본 TBS 방송국 기자 출신의 사이토 미치오처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소리를 듣게 될 지도 모른다.

 

나가토모 씨가 중얼거리듯 말을 했다.

 

"아사미씨, 불쌍해요."

 

아사미씨는 열여섯에 분열병자가 되었다. 그것이 심오한 계시처럼 내 안에서 울렸다. 홀로 기차역 벤치에 앉아서 나는 숨죽여 울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화해를 했다.

 

아참, 내가 정신이 나갔었나 보다. 중요한 걸 빼 먹고. 이 책이 그렇다고 정신병을 방치하자고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병 의사치고는 좀 덜 떨어졌지만 애정이 깊은 가와무라 선생, 따뜻한 웃음의 소유자 마쓰이 간호사, 환자와 거리를 두라는 충고를 무시하는 사회복지사 무카이야치 같은 사람들이 인생을 걸고 베델의 집 사람들의 정신 건강 회복을 위해 싸운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은 분열병입니다, 하고 말할 수는 있어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살피는 것은 의학의 책임 밖의 일인 것이다."

 

그리고 병을 고치고 싶다면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2008.07.23 19:13 ⓒ 2008 OhmyNews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유쾌한 정신장애인들의 공동체 '베델의 집' 이야기

사이토 미치오 지음, 송태욱 옮김,
삼인, 2006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베델의 집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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