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서울교육청 '교육격차 해소방안' 재검토해야

서울시교육청의 우수교사 선정 기준은 비교육적

등록 2006.02.28 18:19수정 2006.02.2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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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택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이 27일에 3년간 서울 시내 학교의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데에 8000억원을 투자하여, 교육여건과 진학 선호도가 낮은 초·중·고교를 '좋은 학교 만들기 자원(自願)학교'로 선정해 해마다 1억∼1억5000만 원의 운영비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시교육청은 ▶신입생들이 배정 후 전학을 원하는 학교 ▶교사들이 근무하기를 싫어하는 학교 ▶학력 수준이 낮은 학교 ▶저소득층 주거 지역에 있는 학교를 기피학교로 분류하고 이런 유형의 학교를 '좋은 학교 만들기 자원학교'로 분류해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시교육청은 학교 구성원과 지역사회의 의견을 수렴해 5월경 학교장의 ‘자원학교’ 신청을 받기로 하고, 올해 120개교를 선정하고 2008년까지 서울 전체 학교 수의 15%인 180개교로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서울 시내에서 속칭 '잘나가는' 초·중·고교 교사(우수교사)를 학생·학부모가 기피하는 학교로 보내는 방안이 추진된다고 한다. 이런 학교에 배치할 우수 교사는 ▶선호 학교에서 명문대 등에 많이 진학시킨 교사 ▶EBS방송 출연 현직 교사 ▶저술 등의 학업 실적이 높은 교사가 해당하는데 200명 정도 선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공 교육감은 "경기고, 서울고 등 '좋은 학교'로 평가받는 학교에서 근무했던 과목 교사가 임기를 채우고 다른 곳으로 전보할 경우 자원학교에 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자원학교에 근무한 교사는 근무성적 평정(근평) 때 가산점(월 0.01점의 경력 가산점, 총 1.25점 범위 내 부여)을 받으며,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학생을 가르치면 수당을 받고 해마다 학교 평가를 해 포상과 해외연수 등의 기회도 얻는다고 한다.

참, 반가운 소식이다.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 지역에 관심을 갖고 거액을 투자한다니. 그동안 경쟁과 수월성을 내세우며 능력 있는 학생을 우수한 인력으로 키워야 한다고 하더니 이제 학교 간의 격차나 학생들 간의 교육 혜택 격차를 해소하는 데에 노력을 한다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교육청에 교육여건 개선을 요구할 때에 습관적으로 말하던 '예산이 없어서'라는 말 대신에 소외받은 계층을 위하여 거액을 투자한다고 하니 획기적인 발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예산이 정말 확보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 간다. 예산 문제에서는 교육부조차 기획예산처의 눈치를 보며 처분에 맡겨야 하는 상황에서 서울시교육청이 이런 거액의 예산을 어떤 방법으로 확보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일이다.

그러나 전교조에서도 지적을 했지만 이런 격차 해소 방안에는 기존 불평등 구조를 그대로 놓아둔 채 소외 계층에게 얼마간의 물질적 혜택을 베푼다는 한계가 가로놓여 있다. 학벌이 사람의 계급과 삶의 질을 결정짓는 현실, 학벌은 사교육비 등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기에 경제력이 학벌과 좋은 직업을 가름한다는 현실, 모든 공교육이 입시에 방향을 맞추어 학생들을 어릴 때부터 공부 노예가 되게 하는 현실. 이런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서 다만 예산 얼마 투자하여 대학생에게 방과 후 과외를 하게하고 시설을 개선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격차가 해소될 리는 의문이다.


특히 학생이나 학부모의 진학 선호도가 낮은 학교를 지원한다고 하는데 이는 아주 위험한 결과에 빠질 수가 있다.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교육 여건이나 교육의 질을 보지 않고 좋은 대학에 합격을 많이 시키는 학교를 선호한다. 학교 운영을 인간 교육 측면이 아니라 입시 교육 측면에서 강화하는 학교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스파르타 교육으로 맹위를 떨쳐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상문고가 한동안 그 지역에서는 신흥 명문고로 이름을 날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교육 시설이나 여건에 상관없이 학업 능력이 뛰어난 우수한 학생들이 다수 확보된 강남 지역의 학교가 언제나 우수 학교가 되고 만다. 강북 지역에 아무리 거액을 투자하더라도 우수한 학생들의 카르텔이 형성되지 않으면 강북 지역 학교는 늘 진학 선호도가 낮은 기피학교가 된다. 금년 입시에서 서울대에 가장 많이 합격시키고 강남 지역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교인 대원외고가 아이러니컬하게 강북 저소득층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음미해야 하는 것이다. 강북 지역에 있는 일부 학교는 강북 지역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중고가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학군을 형성하여 학부모들이 선호하기도 한다.


또한, 우수교사를 뽑아 자원학교에 보낸다고.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교육청의 발표로 볼 때 우수교사는 한 마디로 진학 지도를 잘 하는 교사인 듯하다. 좋은 대학에 많이 보내는 능력이 있는 교사를 기피 학교로 보낸다는 것이다. 이는 교육의 결과물을 대입 결과로만 따지는 아주 비교육적이고 천박한 생각이다.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명문대를 보내고자 하는 학부모들의 요구를 그대로 따르면서 학교를 학원으로 만드는 데에 교육청이 앞장서고 있다는 비난을 모면할 수 없다. 나중에 학부모들이 학원의 이른바 유명 강사를 교사로 특채하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EBS에서 방송을 하고 명문대에 많이 진학시킨 교사가 우수 교사라니, 공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청에서 할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육이란 교육목표와 교육과정이 있고 그것을 해석하고 학교 현실에 맞추어 구성해서 수업을 실시하는 교육활동이 있다. 아울러 교사와 학생이 어우러져 삶을 꾸려나가는 학교공동체도 있다. 교사들은 이런 여러 영역들을 맡아서 전문 능력으로 소화해내고 서로 협조해나가면서 학생을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과 영역, 그리고 교사들의 활동을 무시하고 오로지 명문대에 진학시킨 교사를 우수교사로 본다는 것은 학교를 학원으로 본다는 반증일 뿐이다. 사실 학교에서 쉬운 교육 분야가 입시교육이다. 일반 수업은 교육과정과 학습자, 학습 분량 등을 고려하여 교사가 설계하고 자료를 만들어 수업을 한 뒤에 피드백까지 챙겨야 하지만, 입시교육은 단순 반복적인 기능 학습 요소와 지식 정보 획득 요소가 많기 때문에 몸이 건강하고 입시 경험이 많은 조건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문대 진학은 한두 사람 교사의 노력이 아니라 오랜 기간 교육과정대로 많은 교사들이 노력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피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에게 승진에 필요한 근평 가산점을 준다고 하면 승진 점수가 필요한 교사들이 대거 지원할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지금 가산점 0.01점 때문에 승진이 엇갈리는 경우가 허다함을 교육청에서는 익히 알고 있을 텐데 그렇다면 교육청에서는 승진에 목을 매단 교사들을 우수 교사로 여기고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서울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서울의 낙후 지역을 지방의 도서 지역과 동일시하여 가산점을 준다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다.

공 교육감이 경기고, 서울고 등 '좋은 학교'로 평가받는 학교에서 근무했던 과목 교사가 임기를 채우고 다른 곳으로 전보할 경우 자원학교에 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는데 이 발상도 터무니없이 현실에 맞지가 않다. 서울교육청에서는 강남, 서초구와 송파구 일부 고등학교를 (가)군에 포함하여 정기전보 시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다. 교육여건이 좋은 (가)군 학교에 근무하는 것 자체를 특혜로 인정하고 이런 제한을 두는 것인데, 이 지역에 근무한 교사를 기피학교에 보내 가산점을 준다면 이중적인 특혜를 베푸는 것이다.

교육여건이 좋지 않은 학교에 더 많이 투자하여 시설을 개선하는 것은 올바른 생각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공개하고 지원받은 학교가 기피학교라는 사실을 구태여 홍보할 필요가 있을까. 진정 지역 학교간의 불균형을 잡고 여건이 좋지 않은 학교에 산술적인 평균치 이상의 예산을 투자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말없이 이를 실천하면 될 것이다. 기피학교로 각인된 학교에 교육청에서 집중 투자하고 입시교육에 뛰어난 교사를 배치한다고 해서 학부모들이 주거지를 옮겨 자녀를 입학시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피학교를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학부모들의 선호도는 떨어질 것이다.

교육 정책을 펼칠 때에는 철학이 중요하다. 외형적인 결론이 유사한 정책일지라도 거기에 깔려있는 철학이 다르면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공정택 교육감은 교육감 선거 때부터 학력 저하의 원인인 고교평준화를 폐지하고 자립형사립학교나 특목고를 많이 설립하며 학력 향상을 위하여 초등학교 일제고사를 실시하자고 주장하였다. 취임 이후 실제로 초등학교에서는 일제고사가 실시되고 성적표가 서술형에서 과거 수우미양가와 비숫한 등급형으로 바뀌면서 초등학교 아이들이 학원으로 몰리고 이에 대비하는 공부가 가열된 바 있다.

공 교육감의 정책 방향은 기본적으로 인성 교육이나 특기적성 교육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수월성 교육이나 경쟁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학생들이 좋은 여건 하에서 행복하게 자아를 실현하는 데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개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그 능력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교육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학생의 존재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 아니라 사회의 인적 자원으로 능력과 학력을 극대화해야 하는 부속품으로 여길 우려가 다분하다. 이런 시각에서는 경쟁은 필수이고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능력 있는 학생만이 중요하다. 그러다보니 입시교육 속에서 존재감을 상실한 채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가는 아이들의 존재는 무시된다. 나아가 학벌사회나 학력중심 사회에서 자식들이 승리하도록 하기 위해 온갖 사교육에서 허우적대는 학부모들의 고통이 간과된다. 교사들을 바라볼 때에도 아마 인간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지식을 통하여 성장을 돕는 조언자가 아니라 경쟁과 지식사회에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자를 가려내는 심판관으로 여길 것이다.

지역간의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노력과 계획을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현실의 모순과 문제를 덮기만 하고 실제적인 격차를 해소하는 데에 도움이 안 되는 정책은 정책이라기보다는 생색내기일 뿐이다. 서울시교육청과 공정택 교육감은 교육격차 해소라는 모처럼의 좋은 정책을 도로로 끝나게 하지 말고 비판적인 여론이나 교육단체와 시민단체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 그 결실을 맺기 바란다. 입시지도를 잘 하거나 소위 8학군에 근무한 교사가 우수교사라든가, 기피학교에 지원하는 교사에게 특혜를 준다는 식의 단견을 제시하기보다는, 교육 격차를 만드는 요인을 좀더 면밀하게 분석하고 여건이 좋지 않은 학교에 말없이 오랫동안 지원을 해주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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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사람을 위해 필요한 교육을 하고자 몸부림치는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또한 이 세상이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곳으로 바뀌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학교에서 경험한 일을 토대로 우리가 짚고 넘어거야 할 문제를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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