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망한다, 워렌 버핏처럼 돈 쓰는 재벌을

등록 2006.07.02 17:45수정 2006.07.0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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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빌 게이츠 부부가 워렌 버핏(오른쪽)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빌 게이츠 부부가 워렌 버핏(오른쪽)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증권회사에 오랫동안 근무했던 내게 있어 워렌 버핏(Warren Buffet)은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10여년 전에는 그의 투자기법과 철학을 담고 있는 책을 달달 외우다시피 하며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투자에 임할 때에는 늘 그의 말을 되새기려 하였고, 그의 투자기법을 무슨 금과옥조 내지는 경전처럼 떠받들기도 하였다.

또한 증권업계를 떠나 사회책임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라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면서도 역시 워렌은 경모의 대상이었다. 기업의 펀더멘탈에 입각한 장기투자를 실천하고, 반면 루머에 사고 파는 금융시장의 경박스러움을 배척하는 워렌은 이미 사회책임투자를 실천하고 있는 훌륭한 벤치마크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워렌이 나를 다시 한 번 황홀하게 만들었다. 며칠 전 그가 갖고 있는 전재산(약 440억 달러, 44조원)의 85%에 해당하는 약 300억 달러(30조원)를 빌 게이츠(Bill Gates)가 설립한 빌&멜린다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에 기부하겠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가 발표한 사회 사업에 대한 그의 실천 의지와 천문학적인 금액의 규모에서도 놀랐지만, 세계 2위 부호인 워렌이 세계 1위의 빌 게이츠가 세운 재단에 전 재산의 85%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한 데서 더욱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 속담에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워렌은 그의 이름 대신 언뜻 보기에 재산 순위의 경쟁관계인 듯한 빌 게이츠의 이름 앞에 그가 60여년 동안 벌어들인 재산의 상당액을 기부한 것이다.

그러면서, 워렌은 이렇게 말한다. 이미 수 년 전부터 자선활동에 깊은 철학을 갖고 개발도상국의 질병퇴치와 미국의 교육 및 도서관 사업 등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자선사업에서도 세계 1위인 빌 게이츠 부부의 열정과 전문성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1999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의 한 논문에서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와 마크 크래머(Mark Kramer) 교수는 자선 재단의 비효율성을 이렇게 지적했다. 즉, 자선 재단들이 그 재단을 운영하기 위해 '과잉고용' 내지는 '고용을 위한 고용'을 일으키고 있고, 따라서 불요불급한 경상비용 등을 많이 지출하고 있다고 말이다.


아마도, 워렌은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평생을 경제의 현장에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추구했을 그는 기부행위에서조차 철저히 경제원칙을 준용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재단을 설립하여 입주할 건물을 구하고, 재단을 운영할 사람들을 고용하고 각종 조사를 행하고 데이터 베이스 등을 구하는 일에 추가적으로 돈을 사용하느니, 이미 설립되어 가장 훌륭하게 일하고 있는 곳에 그의 재산을 얹어 주는 것이 보다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서양 사람들의 이러한 모습들을 접할 때마다, 그들의 효율성 중시의 사고방식과 아울러 상대의 전문성과 나의 전문성을 상호 인정하면서 파트너십을 맺고 이러한 공동의 힘으로 전체의 파이를 키워 나가는 그들의 협력정신을 우리도 하루 속히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발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선 우리의 재벌 총수들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그들의 돈을 사회에 기부할 날을. 그리고, 만일 이러한 기부가 이루어진다면, H그룹 총수가 활짝 웃으며 S그룹 창업자의 호를 따서 설립된 H재단이 보다 더 전문적이고 효율적이기에 그곳과 기꺼이 의기투합 하겠노라고 말하는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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