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왜 대원군을 납치했는가?

등록 2006.10.18 20:27수정 2006.10.18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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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실험 이후 북한문제를 둘러싼 중국의 딜레마는 가중되고 있다.

중국의 딜레마는 중북관계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즉, 북한의 전략적 가치(소위 순망치한)로 인해 북한을 포기할 수 없는 반면 개혁개방기 미국과의 관계 역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북한의 대미 강경책 역시 지지할 수 없는 것이다.

동맹이론에 따르면, 강대국(중국)은 일반적으로 동맹관계에 있는 약소국(북한)으로 인해 촉발되는 제3국(미국)과의 분쟁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강대국은 약소국에 압력을 행사해 자제시키거나 극단적으로 제3국과의 협의하에 약소국에 대한 ‘공동통치’를 시도하게 된다. 실제로 현재 중국은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긴밀히 협조하고 있으며, 북한 핵실험에 대해 ‘단호한 반대’를 공식화하고 유엔 제재안에 찬성함으로써 대북 압력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현 상황에서 북한이 ‘최후의 레드라인’(핵확산, 핵미사일 위협)을 넘고 이에 대해 미국이 무력 대응하는 상황이 임박했을 때 중국의 대응은 과연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19세기말 임오군란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이에 대한 단초를 제시한다.

임오군란 그리고 대원군 납치

1882년 7월 23일 발생한 임오군란은 당시 일본이 지원한 별기군과의 차별에 불만을 느낀 구식군대의 폭동이었다. 이들은 일본공사관과 별기군영을 습격하고, 당시 정치적 실권세력인 명성황후 및 개화파 세력을 공격하였다.

사실, 임오군란의 배후에는 대일 강경론자인 대원군이 존재하였다. 그는 명성황후와 연계된 개화파 세력에 의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상황에서 친일개화파 세력을 제거함으로써 정치적 실권을 회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중국은 즉각적인 군사개입을 통해 조선에서의 정치적 혼란을 조기에 진정시키려 하였으며, 그 결과 정여창이 이끄는 청함대가 8월 10일 인천항에 도착하였다. 일본 역시 조선출병을 감행하였는데, 임오군란시 일본으로 탈출했던 일본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는 8월 중순 군병력과 함께 서울에 입경해 국왕알현을 요구하며 무력시위를 벌이기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국은 적극적인 중재를 통해 조일간 긴장을 해소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사실, 중국의 중재노력은 상술한 동맹이론에서 보여지듯 매우 합리적인 대응이었다. 즉, 중국은 외교적 해결을 통해 조선에 대한 종주국으로서의 입지를 확보하고, 반대로 조선문제로 인해 일본과의 분쟁을 차단하려는 계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임오군란의 수습을 위해 정치 무대로 복귀한 대원군은 일본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오히려 무력대결까지도 고려함으로써 중국을 매우 난처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중국은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8월 27일 대원군을 납치해 천진으로 압송하고 명성황후세력을 재집권시키게 된다. 동시에 조선정부에게는 일본과의 조속한 협상을 강요해 8월 30일 조선의 대일본 사과를 주 내용으로 하는 제물포조약을 체결토록 하였다.

대원군이 비록 대일 강경론자라는 점에서 중국의 이해관계와 부합되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중국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 국가이익(조선의 종주권 견지 및 일본과의 충돌방지)을 동시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보다 유순한 조선지도부였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은 임오군란 이후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강화하기 시작하였으며, 조선내 친일쿠테타인 갑신정변을 진압한 이후 10여 년간 본격적인 대조선 개입정책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반면, 일본과는 1885년 4월 18일 천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향후 조선문제로 인한 쌍방간 군사적 충돌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의도 역시 드러내었던 것이다.

대원군, 김정일, 그리고 한반도

영화 <한반도>는 19세기말과 현재의 상황을 중첩시키면서 관객에게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이러한 주장을 부정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반도의 정치체(남북한)는 주변강대국보다 우월한 국력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보다 근본적으로 한반도는 그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주변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점에서 동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19세기 말의 한반도는 조선이란 통일된 정치체를 갖고 있었다면, 현재는 남북한이란 2개의 정치체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러나 19세기 조선에 수구파와 개화파의 정치세력이 있었듯이 현재의 남북한 역시 한 국가 내 두 개의 정치세력이라 한다면 구한말과 현재는 역시 동일하다. 더욱이 남한이 주변강대국과의 관계에서 보다 타협적인 반면 북한은 반외세적이라는 측면에서도 19세기 조선의 개화파, 수구파와 닮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입장 역시 한 세기전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중국에게 필요한 것은 김정일 체제가 아니라 미국과의 충돌을 방지하면서도 한반도에서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견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치세력일 것이다.

북핵문제에 있어서 중국이 최근 남한과 거의 완벽한 공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의 이러한 속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대북 무력제재를 거부하면서도 경제제재는 찬성하는 중국의 입장은 미국과의 충돌도 회피하면서 북한을 제어하려는 의도로 풀이될 수도 있다.

이와 같다면, 남한(온건파)의 선택은 현실적으로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즉, 강대국에 의한 북한(강경파) 붕괴를 용인하든가 아니면 북한을 설득해 궁극적으로 남북간 자주적 통일을 지향하든가다. 남한내 대북강경론자의 입장이 전자라면, 햇볕정책의 골간은 후자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대안 중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인간사회가 자연상태와 달리 ‘인위적 진보’를 이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우리가 왜 대북포용정책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강대국에 의한 북한 붕괴는 한반도를 '그들만의 리그'로 다시금 전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우리의 이해관계가 배제된 강대국들의 비열한 이전투구를 다시 목격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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