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용·조남희 부부가 기거하는 조립식 패널집 현관.오은주
"하숙집할 때 학생들하고 도란도란 지내던 생각이 많이 나요. 우리 하숙집에서 사귀어서 결혼까지 한 학생들도 많았는데…."
쌩쌩 불어오는 찬바람에 옷깃을 절로 여미게 되는 이 겨울,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철거민인 안수용(65) 할머니에겐 따뜻하게 쉴 집이 없다. 안 할머니는 두 사람이 누우면 꼭 맞는 크기의 난방도 되지 않는 조립식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안수용·조남희(66) 부부는 화장실도 없는 집에서 벌써 3년째 겨울을 나고 있다.
고려대 학생들에게 하숙을 치며 생계를 꾸려가던 이들 부부의 단란하던 가정은 1995년 겨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일어난 후 산산이 부서졌다. 화재가 난 부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성북구청이 안씨 집을 강제철거했기 때문이다.
화마가 휩쓴 자리에 찾아온 구청의 강제철거
@BRI@성북구청은 안씨에게 1998년 11월 26일, 그해 12월 8일까지 자진시정(자진철거)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12월 8일까지 자진철거할 것을 요구했던 성북구청은 실제로는 그보다 하루 전인 12월 7일 강제철거를 단행했다.
이를 근거로 안수용씨 측은 철거 자체의 부당성뿐 아니라 집을 철거한 행정집행 절차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성북구청은 그 과정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북구청 주택과 나성봉씨는 성북구청이 1998년 12월 7일 안씨 집을 철거한 이유에 대해 "안씨 집이 건축신고를 하지 않고 공사를 실시했으며 20㎡ 정도 무단증축을 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성북구청 관계자는 11일 "건축주 조남희씨가 위법행위를 시정하지 않고 계속 불법행위를 함에 따라 행정 계도를 수시로 하며 시정토록 종용하였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아 전체 위법건축물 중 일부를 철거 조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안수용씨는 "1998년 11월 5일 안암동사무소에 신고하고 구두로 수리승인을 받았다"며 무단증축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또한 "당시 성북구청이 고발한 20㎡ 무단증축분 중 3㎡의 추가 증축분은 대지여건상 증축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20㎡를 무단증축했다는 성북구청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실제 증축분은 17㎡라는 주장이다.
또한 안씨 측은 동절기에 철거를 집행한 점도 문제라고 주장한다. 철거와 관련, 서울시가 1988년에 정한 '무허가건물 정비사업 업무처리 지침'(아래 '처리 지침')의 '행정사항'에는 "철거를 연말로 미루었다가 월동기에 집행하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성북구청 관계자는 같은 날 "이 규정은 월동기에 철거를 금하라는 뜻이 아니고 철거를 계속 연말로 미뤄 동절기에 일제히 철거를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이 규정에 대해 서울시 건축지도팀의 김동곤씨는 12일 "동절기 철거가 가혹할 수 있는 서민의 처지를 고려해 가급적이면 동절기 철거를 하지 말라는 규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처리 지침'은 법과 같은 강제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성북구청처럼 '연말로 미루지 말라는 뜻'이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지만, 본래 무허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취지가 담긴 지침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