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옆, 집 없이 사는 60대 노부부를 아시나요

화마와 철거가 삼켜버린 안수용·조남희씨의 '잃어버린 8년'

등록 2006.12.13 09:22수정 2006.12.1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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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용·조남희 부부가 기거하는 조립식 패널집 현관. ⓒ 오은주

"하숙집할 때 학생들하고 도란도란 지내던 생각이 많이 나요. 우리 하숙집에서 사귀어서 결혼까지 한 학생들도 많았는데…."

쌩쌩 불어오는 찬바람에 옷깃을 절로 여미게 되는 이 겨울,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철거민인 안수용(65) 할머니에겐 따뜻하게 쉴 집이 없다. 안 할머니는 두 사람이 누우면 꼭 맞는 크기의 난방도 되지 않는 조립식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안수용·조남희(66) 부부는 화장실도 없는 집에서 벌써 3년째 겨울을 나고 있다.

고려대 학생들에게 하숙을 치며 생계를 꾸려가던 이들 부부의 단란하던 가정은 1995년 겨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일어난 후 산산이 부서졌다. 화재가 난 부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성북구청이 안씨 집을 강제철거했기 때문이다.

화마가 휩쓴 자리에 찾아온 구청의 강제철거

@BRI@성북구청은 안씨에게 1998년 11월 26일, 그해 12월 8일까지 자진시정(자진철거)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12월 8일까지 자진철거할 것을 요구했던 성북구청은 실제로는 그보다 하루 전인 12월 7일 강제철거를 단행했다.

이를 근거로 안수용씨 측은 철거 자체의 부당성뿐 아니라 집을 철거한 행정집행 절차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성북구청은 그 과정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북구청 주택과 나성봉씨는 성북구청이 1998년 12월 7일 안씨 집을 철거한 이유에 대해 "안씨 집이 건축신고를 하지 않고 공사를 실시했으며 20㎡ 정도 무단증축을 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성북구청 관계자는 11일 "건축주 조남희씨가 위법행위를 시정하지 않고 계속 불법행위를 함에 따라 행정 계도를 수시로 하며 시정토록 종용하였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아 전체 위법건축물 중 일부를 철거 조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안수용씨는 "1998년 11월 5일 안암동사무소에 신고하고 구두로 수리승인을 받았다"며 무단증축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또한 "당시 성북구청이 고발한 20㎡ 무단증축분 중 3㎡의 추가 증축분은 대지여건상 증축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20㎡를 무단증축했다는 성북구청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실제 증축분은 17㎡라는 주장이다.

또한 안씨 측은 동절기에 철거를 집행한 점도 문제라고 주장한다. 철거와 관련, 서울시가 1988년에 정한 '무허가건물 정비사업 업무처리 지침'(아래 '처리 지침')의 '행정사항'에는 "철거를 연말로 미루었다가 월동기에 집행하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성북구청 관계자는 같은 날 "이 규정은 월동기에 철거를 금하라는 뜻이 아니고 철거를 계속 연말로 미뤄 동절기에 일제히 철거를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이 규정에 대해 서울시 건축지도팀의 김동곤씨는 12일 "동절기 철거가 가혹할 수 있는 서민의 처지를 고려해 가급적이면 동절기 철거를 하지 말라는 규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처리 지침'은 법과 같은 강제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성북구청처럼 '연말로 미루지 말라는 뜻'이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지만, 본래 무허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취지가 담긴 지침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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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중 집 밖으로 끌어내진 살림살이들. ⓒ 안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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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후 텐트에서 지내던 시절, 조남희씨와 손자. ⓒ 안수용

고려대 등 잇따른 소송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집

또한 안씨 부부의 수난은 철거에서 그치지 않았다. 한쪽에서 성북구청에서 집을 철거하고 있을 때, 다른 한쪽에서는 이웃 신모씨가 안씨 집이 점유하고 있는 본인의 토지를 돌려줄 것, 해당 토지에 있는 건물을 철거할 것을 요구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1996년에 시작된 소송은 2002년 2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법원에서 안씨의 '토지사용권'을 인정하고 안씨 부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소송에서 이겼지만 안씨에게 남은 것은 소송과정에서 생긴 빚뿐이었다. 이 빚 때문에 2000년 10월, 안씨의 16-5번지 토지가 경매에 넘어갔다. 안씨 부부는 16-5번지 토지를 안씨 집이 있는 1-19번지의 고려대 토지와 맞교환해 사용하고 있었는데, 16-5번지가 경매로 넘어가면서 그동안 맞교환해 사용하던 1-19번지 토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힘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2001년 고려대는 1-19번지에 있는 안씨의 가옥에 대한 '건물 등 철거소송'을 시작했다. 법원은 고려대의 손을 들어주었다. 2003년 10월, 법원의 명령에 따라 안씨가 화재 후 살아오던 반쪽짜리 집마저 완전히 철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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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전 안수용씨와 고려대의 토지 사용 현황. ⓒ 오은주

철거 당시 집에는 중풍으로 투병 중인 남편 조남희씨와 90세 된 노모, 네 살배기 손자만 있었다. 강제철거에 충격을 받은 노모는 병세가 악화됐고,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천막에서 지내는 신세가 됐다. 그 후 이웃과 친지의 도움으로 조립식 패널 집에서 지금까지 기거하고 있다.

주거권 찾기 위해 거리에 서야 하는 60대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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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용 할머니. ⓒ 오은주

안씨 부부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고려대 학생들은 이들 부부와 연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해 9월 만들어진 '주거권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공간(供間)'의 김영진(고려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씨는 "누군가의 인권이 침해된다는 것은 언젠가 '나'의 인권도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하고 "학교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거권 침해 문제에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공간'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노부부가 성북구청에 요구하고 있는 '철거 이전 상태로 원상복구'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힘을 보태드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이제 '안암동 철거대책위원장'이 되었다. 잃어버린 삶을 되찾는 방법은 맨몸으로 할 수 있는 시위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65세의 여윈 안씨가 "단식투쟁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바라는 것은 두 노인이 여생이나마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주거권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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