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11살 에이즈 환자 은코시

[플래시] 에이즈와 아이들의 웃음이 공존하는 아프리카

등록 2006.12.13 15:42수정 2006.12.1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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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 시민기자가 지난 7월 초부터 9월 말까지 두 달 반 동안 남아공, 탄자니아, 이디오피아 등 아프리카를 여행했습니다. 그곳 아프리카의 검은 대륙에서 김남희 기자가 마주친 것은 바로 에이즈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김남희 기자는 에이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분들은 김남희 기자의 홈페이지(www.skywaywalker.com)나 쪽지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오디오를 켜면 내레이션을 들을 수 있습니다(사진·내레이션: 김남희, 제작: 권우성·김호중). <편집자주>


"키스하고 손잡아도 에이즈가 옮지 않아요"

2000년 7월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열린 세계 에이즈 총회에서 연설한 11살의 소년 은코시 존슨(Nkosi Johnson, 1989~2001). 그는 에이즈에 감염된 엄마 때문에 HIV 바이러스를 갖고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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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보살펴주고 받아들여주세요. 우리를 두려워하지 말아요. 우리도 꼭 같아요" 은코시 존슨. ⓒ 김남희

"...내 이름은 은코시 존슨입니다. 나는 열한 살이고 에이즈 환자예요. HIV 바이러스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나는 두 살 때 HIV 양성인 사람들을 위한 센터에서 살게 됐어요. 엄마도 병에 걸려서 나를 데리고 있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곳 공동체에서 우리 두 사람이 모두 감염된 것이 들통나 쫓겨날까 봐 엄마는 두려워했어요. 나는 엄마가 나를 몹시 사랑했다는 것과 할 수만 있었다면 나를 찾아왔을 거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돈이 없어 센터 문을 닫아야 했어요. 그래서 양어머니 게일 존슨씨가 나를 받아들였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이 상처가 있고 그 상처에 내 피가 닿을 때에만 내 피가 위험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럴 때는 나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지요...

1997년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엄마 다프네가 죽었어요. 양어머니 게일이 내게 말해 주었습니다. 나는 많이 울었어요. 게일 엄마가 나를 데리고 장례식에 갔습니다... 그뒤로 나는 엄마가 정말로 보고 싶어요. 엄마가 나와 함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엄마는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내 어깨를 내려다보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지요.

나는 에이즈 환자인 게 싫어요. 자꾸만 몹시 아프니까요. 에이즈 병을 가진 다른 아기들이나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정말로 슬퍼요. 나는 정부가 의약품 AZT를 임신한 엄마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바이러스가 엄마에게서 아기에게로 넘어가지 못하게 도와줍니다.

아기들은 아주 빨리 죽을지도 몰라요. 나는 병에 걸려서 우리에게로 왔던 아기를 알아요. 미키라는 애였는데, 그애는 숨을 쉬지 못했어요. 먹지도 못하고 너무 아팠어요. 게일 엄마가 보건소에 전화를 했고 그들이 와서 아기를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아기는 거기서 죽었어요. 하지만 그애는 정말로 예쁜 아기였어요. 그래서 나는 정부가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기들이 죽는 걸 바라지 않으니까요...

내가 어른이 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에이즈에 대해 설명해 주고 싶어요. 게일 엄마가 허락해주면 세계 모든 곳에서 말이에요. 나는 사람들이 에이즈가 무슨 뜻인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보살펴주고 존중해 주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병을 가지고 있어도, 그 사람을 건드리고 끌어안고 키스하고 손을 붙잡아주어도 에이즈가 옮지는 않아요.

우리를 보살펴주고 받아들여주세요. 우리는 모두 인간입니다. 우리는 아주 정상이에요. 우리는 두 손이 다 있고 두 발도 있습니다. 우리는 걷고 말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똑같은 소망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를 두려워하지 말아요. 우리도 꼭 같아요!"


은코시, 나를 남아공으로 이끈 사람

에이즈 고아만 1천5백만
아프리카 에이즈 현황

전 세계 3천5백만 명의 에이즈 감염자 중 사하라 이남 지역에 2천5백만 명이 거주.

- 15~49세의 전체 아프리카인 중 7.4%가 에이즈에 감염.
- 아프리카 대륙 전체 사망자의 25%가 에이즈로 사망.
- 사하라 이남 지역 15세 이상, 24세 이하 임신 여성의 에이즈 감염률: 스와질랜드 39%, 보츠와나 32%, 남아공 24%, 케냐 22%, 짐바브웨 18%, 말라위 18%
- 현재 아프리카의 에이즈 고아 : 1천5백만 명. 2010년까지 2천8백만 명의 에이즈로 인한 고아가 생겨날 것으로 추정.

-아프리카 일부 국가는 에이즈로 인해 평균 수명이 30년까지 줄어들기도 했음.
-보츠와나 : 성인의 36% 에이즈 감염. 평균수명 30세 미만. 남아공 :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550만명이 에이즈 감염.
2010년- 남아공 인구의 25%가 에이즈 보균자가 될 것으로 전망.
내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찾아간 이유는 딱 하나였다. 은코시 헤이븐(Nkosi Haven)에 가기 위해서였다.

2000년, 남아공에서 열린 세계 AIDS 총회에서 열한 살의 소년 은코시가 단상에 올랐다. 제 몸보다 더 큰 양복을 입고 나온 어린 소년의 연설은 세계를 울리고, 멀리 바다 건너 작은 반도에까지 날아와 사무실에서 조간신문에 실린 그 글을 읽던 나를 울렸다.

이집트에서 우연히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라는 책을 읽게 됐다. 그 책에서 은코시의 연설문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은코시를 기념해 에이즈에 걸린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사는 '은코시 헤이븐'이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정에도 없던 남아공을 찾은 건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요하네스버그.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꼽혀 많은 여행자들이 그냥 통과해 버리는 도시. 그곳에는 우리의 광주와 같은 땅, 소웨토(Soweto)가 있었다. 소웨토에는 넬슨 만델라의 집도 있었고, 너무나 잘 만들어져 슬픔이 배가 되는 아파르트헤이드 박물관(인종차별 박물관)이 있었고, 데스몬드 투투 주교의 집도 있었다.

"이 거리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 두 명이 살고 있는 곳이야."

가이드는 자부심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그곳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평화상 수상자가 두 명이나 나올 만큼 평화를 찾는 긴 싸움을 벌여야 했을 가파른 삶이 문득 생각났다.

시내의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혼자 돌아다니는 일이 너무나 위험한 요하네스버그. 은코시 헤이븐을 찾기 위해서도 택시를 불러야만 했다. 택시에서 내리니 두 채의 빅토리아풍 흰 건물이 작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에이즈에 걸린 16명의 엄마와 58명의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정원의 그네와 철봉에 매달려 웃고 있었고, 젊은 엄마들은 빨래를 하거나 그릇을 닦고 있었다. 햇살은 따가웠고, 하늘은 높고 파랗기만 해 내가 서 있는 곳은 그저 평범한 가정집 마당 같기만 했다. 은코시의 양엄마였고, 지금은 이곳의 책임자인 게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가 전해주는 아프리카의 에이즈 이야기는 절망스러웠다. 나의 무지와 무관심이 더없이 부끄러워지는, 처절한 현실이었다.

바쁜 그녀를 보내고 정원에서 잠시 아이들과 놀았다. 아이들은 밝았고, 어여뻤고, 빛나고 있었다. 스스럼없이 다가와 팔을 내밀고, 품에 안겨왔다. 이 아이들 중의 반수가 넘는 아이들이 에이즈에 걸려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몇 년 후에도 키아를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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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까지 전 두 명의 한국인 친구가 생겼네요." 키아. ⓒ 김남희

그 곳에서 만난 닭벼슬 같은 머리 모양을 한 열 네 살의 소년 키아.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 이름은 키아예요. 한국의 키아자동차와 같은 이름이죠."

"한국의 어린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누구나 다 컴퓨터를 가지고 놀고, 게임이나 로봇을 자유롭게 즐기면서 자란다는 게 사실인가요? 나도 한국에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과학자가 꿈이라는 키아는 헤어질 때 내게 말했다.

"우리반에 준호라는 한국인 친구가 있어요. 이제 당신까지 전 두 명의 한국인 친구가 생겼네요."(은코시 헤이븐에 살고 있는 아이들 모두는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다. 키아는 그 학교에 한국인 친구가 있다고 했다.)

난 정말 키아의 친구가 된 걸까? 몇 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그때도 키아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그곳을 빠져나올 때 키아는 오래도록 손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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