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소에서 추모예배김해성
| | | 고(故) 박흥식 전도사는? | | | | 지난 1999년 7월 31일 충남 서산군 연포해수욕장에서 열린 '외국인노동자와 함께 하는 여름수련회'.
'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박흥식(28·한신대 신학과 3년) 전도사는 이날도 외국인노동자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던 도중, 물에 빠져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고등학생(18) 2명을 구조한 후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다음 날 숨진 채 발견됐다.
정부는 박흥식 전도사의 의로운 행동을 인정해 의사자로 선정했으며 한신대는 지난 2001년 2월 23일 졸업식에서 의로운 행동을 보여준 박 전도사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한신대는 아울러 2000년부터 고인의 살신성인 정신을 기리기 위한 '박흥식기념장학회'를 만들어 불우한 한신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 김해성 | | | | |
박흥식 전도사!
그날처럼 또 다시 자네를 부르네. 그 해 여름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그날은 살아 있는 게 죄스럽고 부끄러워 자네 이름을 부르는 게 그렇게도 목메었지만 어느덧 세월이 지나 슬픔이 걷히고 나니 영원한 스물여덟 젊은 전도사인 자네가 너무 자랑스럽네. 그렇게 부르고 불러보니 하늘로 떠난 지 8년이 되었지만 잊혀지기는커녕 더욱 더 그립기만 하네.
'외국인노동자의 집/중국동포의 집' 자원봉사자였던 자네는 외국인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노동부로, 법무부로 뛰어다니며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지. 그 해 여름방학에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좀 더 깊이 있는 이해와 만남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진정한 사도로 일하고 싶다"면서 외국인노동자의 집 쉼터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먹고 잠자며 생활했지.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의 설움을 겪고, 고국에 찾아와서는 같은 민족에 차별받던 중국동포들, 불법체류자의 처지로 마음 졸이며 살아야 했던 그들의 한(恨)과 시름을 달래기 위해 '중국동포 여름수련회'를 어렵게 마련했지.
동행했던 자네는 어김없이 설거지와 청소 등의 궂은 일을 도맡으면서 중국 동포들을 편히 쉬게 하려고 애썼네. 그런데 그만, 눈감고 지나쳐도 아무런 책임도, 죄책감도 없는데 자네는 물에 빠진 청소년을 구하다가 목숨을 잃었네.
자네는 진정 예수의 제자였네. 서른 세 살의 목수였던 예수는 세상 부와 권력을 쥔 자를, 지식을 자랑으로 아는 자를 제자로 삼지 않았지.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은 더 가지려고 안달할 뿐, 사랑으로 나누거나 혹은 낮은 자로 겸손하거나 아니면 자기를 희생하지 않지.
그래서 예수는 가난하고 못 배워서 남루하기만 했던 이들을 제자로 삼았지. 그 낮은 땅에서 노동과 눈물, 설움과 가난으로 살아온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삶의 영원함을 깨우치게 했네. 그래 자네는 예수의 제자들처럼 가난했으며, 살아온 생활 또한 땀과 고된 나날이었지.
자네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 노동자로, 공사판 인부로 막노동을 하면서도 이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뒤늦게 한신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지. 학업에 임하면서도 중국집 배달부, 공사판 막노동자 등의 일을 하며 독학을 하였고, 그 와중에도 줄곧 수석을 놓치지 않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젊은이였네.
예수와 전태일의 길을 따라간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