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박흥식, 두 생명 구하고 떠난 사람아!

'외국인노동자의 집·중국동포의 집' 자원봉사자였던 전도사를 추모하며

등록 2007.07.31 14:28수정 2007.07.3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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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랑의 사도 박흥식 전도사

사랑의 사도 박흥식 전도사 ⓒ 김해성

부르지 않아도 대답하는 그대여!

박흥식! 어이 박흥식!
대답 좀 해 봐, 응-
선배가 부르는데 대답도 없네? 박흥식! 왜 대답이 없지? 그렇다면 자네 대신 내가라도 말 좀 해야 하겠네. 그동안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지. 하지만 자네를 보내는 이 시간, 마지막 인사라도 나누는 심정으로 이야기하고 싶네.


자네는 물에 빠져 허우적대며 살려 달라고 비명 지르는 아이들을 구하려고 고무 튜브 하나 가지고 산더미 같은 파도 속으로 뛰어 들었지. 결국 물에 빠진 아이는 살아 나왔지만 앞뒤를 재보지도 않고 저어 나가던 자네는 나오지 못했지. 자네 목숨과 그 아이의 목숨을 맞바꾼 것일까? 자네는 죽고 아이들은 살고, 예수는 죽고 우리는 살고, 그래, 자네는 예수의 진정한 제자였네!

많은 이들이 해변에 서서 허우적거리는 아이와 접근해 가는 당신을 바라보았지. 내로라하는 구조요원이나 경찰도 그저 지켜만 보면서 뛰어 들지 않았는데, 우리 일행도 아니고, 알지도 못하는 이들의 외마디에 자네와 최의승이 뛰어 들었지. 나 자신도 물가에 서서 그저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다 말았네.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며 구조선을 애원했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파도에 휩쓸리며 점점 멀어져 가는 자네를 보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지. 뒤늦게 한 사람, 한 사람 구조되어 나오고 끝내 자네가 보이지 않았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터져 나오는 분노로 외치고 말았지.

“하나님, 어찌하여 박흥식을 버리십니까?” 예수님도 죄에 빠져 죽어 가는 우리를 보며 애가 타는 마음으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외치셨던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는데(요 15:13) 자네는 친구도 아니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이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다니, 도대체 자네 정말로 이 말씀을 믿었단 말인가?


예수께서 그러했듯이 자네도 그러했고 그렇다면 나는? 나는 지금까지 외국인노동자나 중국동포들과 함께 하면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을 했지. 그런데 그것은 완전히 착각이었음을 자네는 깨우쳐 주었네.

그렇다면 이제 어쩔 수 없네. 나도, 그리고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도 더 큰 사랑을 위해 나설 수밖에.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큰 사랑을 위해…. (1999년 8월 2일 입관예배 당시, 고(故) 박흥식 전도사에게 바친 조사(弔詞) 일부)



하늘나라 박흥식 전도사에게 보내는 편지

a 묘소에서 추모예배

묘소에서 추모예배 ⓒ 김해성


고(故) 박흥식 전도사는?

지난 1999년 7월 31일 충남 서산군 연포해수욕장에서 열린 '외국인노동자와 함께 하는 여름수련회'.

'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박흥식(28·한신대 신학과 3년) 전도사는 이날도 외국인노동자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던 도중, 물에 빠져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고등학생(18) 2명을 구조한 후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다음 날 숨진 채 발견됐다.

정부는 박흥식 전도사의 의로운 행동을 인정해 의사자로 선정했으며 한신대는 지난 2001년 2월 23일 졸업식에서 의로운 행동을 보여준 박 전도사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한신대는 아울러 2000년부터 고인의 살신성인 정신을 기리기 위한 '박흥식기념장학회'를 만들어 불우한 한신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 김해성
박흥식 전도사!
그날처럼 또 다시 자네를 부르네. 그 해 여름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그날은 살아 있는 게 죄스럽고 부끄러워 자네 이름을 부르는 게 그렇게도 목메었지만 어느덧 세월이 지나 슬픔이 걷히고 나니 영원한 스물여덟 젊은 전도사인 자네가 너무 자랑스럽네. 그렇게 부르고 불러보니 하늘로 떠난 지 8년이 되었지만 잊혀지기는커녕 더욱 더 그립기만 하네.

'외국인노동자의 집/중국동포의 집' 자원봉사자였던 자네는 외국인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노동부로, 법무부로 뛰어다니며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지. 그 해 여름방학에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좀 더 깊이 있는 이해와 만남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진정한 사도로 일하고 싶다"면서 외국인노동자의 집 쉼터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먹고 잠자며 생활했지.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의 설움을 겪고, 고국에 찾아와서는 같은 민족에 차별받던 중국동포들, 불법체류자의 처지로 마음 졸이며 살아야 했던 그들의 한(恨)과 시름을 달래기 위해 '중국동포 여름수련회'를 어렵게 마련했지.

동행했던 자네는 어김없이 설거지와 청소 등의 궂은 일을 도맡으면서 중국 동포들을 편히 쉬게 하려고 애썼네. 그런데 그만, 눈감고 지나쳐도 아무런 책임도, 죄책감도 없는데 자네는 물에 빠진 청소년을 구하다가 목숨을 잃었네.

자네는 진정 예수의 제자였네. 서른 세 살의 목수였던 예수는 세상 부와 권력을 쥔 자를, 지식을 자랑으로 아는 자를 제자로 삼지 않았지.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은 더 가지려고 안달할 뿐, 사랑으로 나누거나 혹은 낮은 자로 겸손하거나 아니면 자기를 희생하지 않지.

그래서 예수는 가난하고 못 배워서 남루하기만 했던 이들을 제자로 삼았지. 그 낮은 땅에서 노동과 눈물, 설움과 가난으로 살아온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삶의 영원함을 깨우치게 했네. 그래 자네는 예수의 제자들처럼 가난했으며, 살아온 생활 또한 땀과 고된 나날이었지.

자네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 노동자로, 공사판 인부로 막노동을 하면서도 이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뒤늦게 한신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지. 학업에 임하면서도 중국집 배달부, 공사판 막노동자 등의 일을 하며 독학을 하였고, 그 와중에도 줄곧 수석을 놓치지 않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젊은이였네.

예수와 전태일의 길을 따라간 사람

a 2005년 6주기 추모예배를 마친 뒤

2005년 6주기 추모예배를 마친 뒤 ⓒ 김해성


a 2005년 6주기 추모예배를 마친 뒤

2005년 6주기 추모예배를 마친 뒤 ⓒ 김해성


어이 박흥식 전도사!
어떤 사람은 자네를 의인(義人)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네를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사람이라고 하지만 나는 자네를 한 알의 밀알이라고 생각하네. 자신은 땅에 떨어져 썩으므로 해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하는 그 밀알 말이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밀알이 되겠다고 하지만 자신을 죽이는 일, 썩고 썩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자가 되어 가슴 치며 기도하곤 하지.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만을 위해, 자신의 욕망과 행복만을 위해 악다구니를 하고 권모술수를 부리며 살지. 하지만 자네는 그렇게 사는 것은 사람의 길이 아니라고 목숨으로 깨우쳐 주었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그러했고, 화염에 휩싸인 전태일 열사가 그러했듯이…. 그래서 후배들은 자네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네.

"오늘 흥식이 형 추모비 앞에서 5주기 추모예배를 드렸다. 자신과도 관련이 없는 물에 빠진 학생들을 구하다 학생만 구하고 그만 물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 신학과 97학번 선배님으로 나로서는 그를 직접 만나본 경우는 없지만 이제는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되어버렸다.

흥식이형 추모비 앞에서 늘 느끼는 거지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고민을 한다. 이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남을 위해 죽은 이들 앞에서는 항상 느끼는 거지만 그들이 못 이룬 꿈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짊어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고민을 한다. 특히 흥식이 형은 같은 신학의 길을 걷는 동지로서 더욱더 그가 이루지 못한 삶의 무게는 나에게 절실하게 느껴진다."(2004년 8월 2일 고(故) 박흥식 학우 5주기 추모예배에 참석했던 후배가 블로그에 올린 글)


박흥식 전도사!
자네가 떠난 뒤 어떤 슬픔과 고통, 어려움과 힘겨움이 닥친다 해도 '결코 울지 않겠노라, 포기하지 않겠노라' 마음을 다잡았네. 자네가 맡기고 간 그 사명, 외국인노동자와 중국동포를 섬기고 돕는 일을 잊지 않고 있네.

자네가 떠난 뒤에 병들어 죽어가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과 외국인노동자 자녀를 위한 '지구촌 어린이집'을 만들었네. 아직도 할 일은 너무 많네. 새벽부터 자정까지 닥쳐오고 밀려오는 일을 처리하느라 몸이 지쳐 쓰러질 정도이지만 자네를 생각하면 난 쓰러질 수가 없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외국인노동자의 대부라고 부르기도 하고, 외국인노동자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산다고 치켜세우기도 하지만 자네를 생각하면 부끄러울 뿐이네. 가난하고 버려진 이들의 목사로서, 가시밭을 걸어가신 예수의 제자로서 아직도 부족할 뿐이고 한계를 많이 느끼네.

나의 동역자여!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외국인노동자를 위해 기도해주게나. 이 길을 가면서 게으르지 않도록 걷고 걷겠네. 그리하여 영원한 안식의 나라에서 자네를 만날 때 부끄러운 자가 되지 않도록 눈뜨고 깨어 있는 목사로 살겠네. 서덕석 목사(시인, 민족문학작가회 회원)가 자네에게 바친 조시(弔詩)를 읽으며 편지의 끝을 맺겠네. 영원한 나라에서 안식 하게나!

예수를 품고 살았던 사람아!

코리안 드림에 젖어 이 땅에 들어 와
힘들고 더럽고 임금 적은 (3D)업종을 떠맡아
갖은 수모와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는
외국인 노동자, 중국동포들이 안스러워
그들의 친구가 된 그대,

예수께서 이방인(외국인)과 고아와 과부, 장애인들의
친구가 되었듯이
그들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동부에서 법무부로, 회사에서 상담소로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다가
모처럼 여름수련회를 맞아 해수욕장으로 갔던 그대,

평생 바닷가 구경 한번 못했다는 중국동포들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서 기꺼이 해변지킴이(안전요원)가
되어 준 그대,
모두들 물놀이에 정신이 팔려있는 순간에도
두 눈 부릅뜨고 중국동포들이 위험에 빠질까 봐
긴장했던 그대,

파도에 휩쓸렸던 그 고교생들은
그대가 책임져야 할 대상도 아닌데,
웬만하면 눈 딱 감고 모른 척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누가 떠밀기라도 하듯
자리를 박차고 거친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나?

아니지, 아니야
그대 속에 살아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어가는 생명을 그냥 두고 있을 분이 아니시지,
그대가 예수를 품고 살았기에
예수가 물에 빠진 이를 건지기 위해 손을 내밀 듯
당연히 그들에게 다가갔지.

두 고교생들은 뭍으로 밀어 보낼 수 있었지만
그대와 동료는 그만 파도에 떠밀려나고 말았겠지.

잘했네 잘했어, 미련한 사람아
근데 남을 구한 그 용기로 자신은 왜 살아남지 못했나!
끝까지 튜브에 매달려 있기만 했어도 되는데
왜 허망하게 놓쳐버렸나?

그대 같은 신학생이 살아남아야
한국교회에 희망이라도 있을 것 아닌가?
제 배만 채우기 바쁜 사이비 목자가 들끓는 세기말에
자네같이 예수를 품고서
소외된 이웃과 민족을 위해 자기를 버릴 줄 아는
참 목자가 한 사람이라도 더 있어야지.

바보 같은 사람아,
예수를 품고 살았던 사람아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죽음으로 가르쳐준 사람아!


a 박흥식, 한 알의 밀알이 된 예수의 제자

박흥식, 한 알의 밀알이 된 예수의 제자 ⓒ 김해성

#박흥식 #외국인노동자의집 #한신대학교 #의사자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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