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에 가려면 가되, 시대정신 운운 말라

[반론] 우상호 의원의 "왜 손학규는 안 되나" 주장에 대해

등록 2007.08.10 18:44수정 2007.08.1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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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 지사가 9일 오전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연 `출마선언을 겸한 대한민국 비전선포식`에서 선진화, 사회통합, 평화체제 구축 등 3대 국가목표를 제시하면서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대표적 386정치인중 한명인 우상호 의원이 손 전지사의 대변인을 맡아 사회를 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치는 명분의 싸움이다.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한 정치는 생명도 짧을뿐더러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우상호가 손학규와 함께 하는 건 그의 자유일지 모르나 민주화와 시대정신 운운하며 손학규와 함께 하는 건 정당하지 못하다. 명분이 없다.

부끄러움과 미안함도 없이 너무도 당당하게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대 당의 대통령 후보를 꿈꾸던 사람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겠는가.

왜 그런가. 우상호를 말하기 전에 손학규를 먼저 말하자.

손학규가 한나라당에 몸담았던 시간이 자그마치 15년이다. 한나라당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가 얼마나 처절한 노력을 했는지 나는 아는 바가 없다. 단지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과 경기도지사, 그리고 국회의원을 두루 거치며 온갖 영광은 다 누려 왔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가 한나라당에서 절망한 건 한나라당이 절대 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누릴 거 다 누려 이제 남은건 대통령 후보밖에 없는데 도저히 후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 것이다. 그게 전부다. 그리고는 무슨 구국의 결단을 한 듯 눈물까지 흘리며 탈당한 뒤 전국을 다니며 열심히 '쇼'만 하고 있다. 그의 손에 화상전화는 없지만 그를 키워주지 못해 안달인 보수 언론은 그의 쇼를 열심히 중계한다. 왜? 그가 여권의 필패카드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광주'를 털자고 한다. 손학규가 털어야 할 건 광주가 아니라 '한나라당'이다. 그가 과거를 버리고 미래로 가자고 말하는 이유는 과거에 그가 한나라당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5년의 과거는 훌쩍 건너뛴 채 몇십 년 전 민주화 운동 경력 운운하는 건 너무 염치없는 짓이다. 민주화 운동 경력이 자랑스러우려면 15년간의 '반민주화 운동' 경력에 대한 참회 정도는 있어야 마땅하다. 사실 그래도 될까 말까다.

더구나 털자고 털어지는 게 광주인가. 5월 광주의 장본인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어찌 털어지겠는가. 그들을 찬양하는 자들이 세금으로 공원까지 만들어 바치는 마당에 어찌 털 수 있겠는가. 그들과 어깨 나란히 하며 지낸 지난 15년 세월을 털지 않고 어찌 광주를 먼저 털자고 하는가. 인정하고 지지할 그 최소한의 명분이나 정당성도 주지 않는 자를 어떤 이유로 지지하고 함께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정답게 손잡고 갈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에겐 반성과 봉사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여권에 합류해 백의종군 하겠다고 했다면 어느 정도 진정성을 인정할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벤치 신세' 전락할 상대편 주전, 유니폼 바꿔 우리편 주장으로?

하지만 한나라당 경선 룰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탈당한 뒤 바로 여권의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하는 건 사실 너무하지 않은가. 그런 사람을 지지한다고? 입만 열면 민주화 운동 운운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힘만으로 못 이길 것 같다고 다른 당의 후보를 꿔 와서 이기겠다는 게 더 화가 난다. 한동안 주전으로 잘 뛰더니 벤치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봉착한 선수가 씩씩거리고 있는 걸 보고 유니폼 갈아 입혀 우리 편으로 축구하자는 거 아닌가. 더구나 주장까지 시키자고?

세상에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나. 난 사실 한 번도 한나라당에 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끝까지 최선을 다해 패배한 것보다 이기기 위해 무슨 짓을 해도 좋다는 식의 정치행태가 우리 미래에 더 큰 재앙이 될 거라고 믿는다.

우상호의, 이른바 386 정치인들의 손학규 지지에 동의할 수 없는 게 바로 그런 이유다. '운동권 동창회'도 지긋지긋한 연고주의다. 털어야 할 건 바로 그런 것이다. 이젠 제발 민주화운동 경력 가지고 장사 좀 그만했으면 한다. 동지라는 건 같은 뜻을 가지고 꾸준히 함께 가야 동지지, 같은 출신이라고 동지가 아니다.

청와대 근무하던 사람이 손학규 캠프로 간다고 신문에 글 써서 광고까지 하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이나, 명색이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라며 국회의원 됐다는 사람들이 왜 손학규와 함께 하면 안 되는 지 논쟁해 보자는 뻔뻔함이 나는 참 서글픈 거다. 가는 건 자유다.

그러나 제발 민주화운동, 시대정신 운운하며 가지 말라는 얘기다. 그런 소중한 가치들에 먹칠하진 말아달란 얘기다. 아직도, 앞으로도 그런 가치의 실현을 위해 열심히 살아갈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대못 박지 말아달란 말이다.

재주복주(載舟覆舟)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어엎기도 한다고 했다. 유난히 비가 많다. 정말 물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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