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맛 저도 알고 싶어요"

등록 2008.01.24 17:02수정 2008.01.2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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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려고 옷을 입던 남편이 묻습니다.

 

 "안 울었어? "

 "아아~뇨오."

 

어제는 딸의 49재가 지난 지 꼭 한달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딸 친구들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작년 12월 22일, 딸의 49재에 참석했던 고등학교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왔었습니다. 친구들은 저희들끼리 앨범을 꺼내 보면서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라도 하듯 깔깔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더군요. 싫지 않았습니다.

 

떡이랑 음료수를 먹으며 딸의 방에서 친구들은 저마다 딸을 추억할 수 있는 유품들을 하나 씩 골랐습니다. 얼마 후 그만 가보겠다는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하려고 보니 어떤 녀석은 딸의 장갑을 손에 들고 있고, 가장 가까이 지내던 친구는 딸의 오래된 핸드백을 목에 걸고 있었습니다. 보기 좋았습니다. 현관까지 배웅하며 서운한 마음에  "얘들아, 다음 달 22일에 아줌마 보러 올래?"했더니 모두 "네에"하고 입을 모아 대답했습니다.

 

막상 한 달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자 걱정이 되었습니다. 내 몸 상태로 아이들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직장 일로 바쁜 아이들이 한 달 전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6명이나 들이닥쳐 저녁을 먹고 잘 놀다 갔습니다. 남편은 내가 딸 친구들을 만나 눈물을 흘렸을 거라 생각했는지 그렇게 물었던 겁니다.

 

50여 일 긴장했던 몸은 49재를 끝낸 후에 계속 가라앉았습니다. 문밖 출입을 못 할 정도로 기력이 떨어지고 숨만 가빠졌습니다. 하루 밤낮을 자면 다음 날 약간 식욕이 돌고 그 다음 날은 온몸 구석구석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통증과 2-3일 씨름을 하면 몸이 잠시 가벼워졌다가 피가 넘어오기도 했습니다. 가래와 함께 뱉어진 새빨간 핏덩이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 지. 한동안 손톱만한 핏덩이를 텅 빈 머리로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한의사가 괜찮다고 했지만 계속해서 2-3일 피를 보니 겁도 났습니다.

 

숨차고 쑤시고 못 먹고 혼자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고요하고 행복했습니다. 낫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겠지요? 그리고 또 한가지는 명상입니다. 대체로 컨디션이 안 좋을 때 근육을 이완시키는 운동에 천천히 몰입하다 보면 임시변통이 되곤 했는 데 이번엔 그것도 통하지 않기에 방법을 달리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 지도 모릅니다.  

 

 조용히 앉아서 아픈 곳에 의식을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의식과 통증이 하나가 되고 몸이 움찔거립니다. 그리고 통증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통증과 의식이 합쳐질 때마다 몸이 움찔거리며 편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재미도 나고 아픔을 잊을 수 있어서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고 수시로 방바닥에 주저 앉아 명상으로 제 몸을 살폈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경험, 거기서 맛보는 충만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득입니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나 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창밖에 예쁘게 내리는 눈을 감상하며 맛있는 아침을 먹을 생각에 기분은 상쾌한 데 어찌 몸이 신통치 않습니다. 가슴이 쪼이고 답답한 걸 넘어 뭔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감마저 느껴졌습니다. 10시가 넘어도 배가 고프기는커녕 어떻게 이 고비를 넘기지에 몰두하다가 너무 가슴이 답답한 나머지 집을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등산복을 챙겨입었습니다. 찬바람을 마시며 천천히 걸으면 좋아질 것 같았습니다.

 

 운전대를 잡으니 우선 기분이 홀가분했습니다. 며칠을 문밖 출입도 못했던터라 어디론가 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하지만  실내복 바지를 먼저 사기로 했습니다. 갈아입을 옷이 없어도 시장엘 못가던 터라 언제부터 벼르고 있었거든요. 재래 시장으로 가려다가 친정 어머니께 사다 드릴 멸치와 김 생각이 나서 동네 코스트코엘 갔습니다. 매장에 들어서며 다짐, 다짐을 했지요.

 

 '다른 물건에 한 눈 팔지 말고 멸치, 김, 실내복 딱 3가지만 달랑 들고 얼른 나오자.'

 약간 긴장이 되고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식품 코너에 오자 실내가 아주 시원해서 숨쉬기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마음에 약간 여유가 생기자 뭐 먹을 만한 게 있을까 싶어 매대를 기웃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먹지 않던 소시지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소시지를 고르는 사이에 3가지만 사겠다던 다짐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발길은 어느새 야채 코너 앞에 멈춰있었습니다.

 

역시나 평소엔 비싸서 쳐다보지도 않던 샐러드 모듬 야채를 샀습니다. 씻은 야채를 썰어놓기까지 해서 그냥 먹기만 하도록 되어 있었죠. 소시지에 샐러드, 집에 가면 바로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식욕이 돌았습니다.

 

김을 사러 가다가 눈에 띄기에 파인애플도 사고 내일 집에 올 아들 녀석 생각해서 도너츠와 소갈비도 좀 샀습니다. 갈비도 데워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죠. 김과 멸치가 한 코너에 있을 줄 알았는데 멸치는 이미 한참 지나 온 곳에 있어서 되돌아 가야했습니다. 멸치 찾으러 가다가 어머니 드릴 간식도 샀습니다. 그러다보니 장바구니는 평소와 비슷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물건 구경하는 재미에 숨이 가쁜 것도 잠시 잊을 수 있었습니다.

 

 무거운 물건은 차에 그대로 두고 야채와 소시지만 들고 올라와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 때.

 

 "아줌마, 내일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회사 일이 생겨서 오늘 가도 되요?"

 

내일 오겠다는 연락을 받고 여유있게 외출을 했는데 갑자기 온다는 말에 잠시 망설여졌습니다. 하지만 시간 내기 어려운 아이들인데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시간 후에 다시 문자가 왔습니다.

 

 "아줌마, 둘이 가려고 했는데 여섯명이 갈 것 같아요."

 

다행히 야채와 소갈비 빵도 있으니까 밥만 하면 되겠다 싶어 일단 한 시간을 잤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꾸물꾸물 몸을 움직여 아이들이 오면 챙겨먹을 수 있을 정도로 준비를 하고 나니 2시간이 후딱 가버렸습니다. 20분이면 할 일을 2시간 동안 한 거죠. 오전에 집을 탈출하던 상황으로는 도저히 해 낼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쁨보다 조석으로 변하는 몸의 상태에 머리가 머멍~ 했습니다.

 

 아이들이 재잘대며 밥을 먹는 동안 나는 곁에 누워서 쉬어야 했습니다. 숨이 가빠 함께 저녁을 먹지도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저녁을 먹고 나니 어느새 9시. 많이 힘들었지만  호흡을 조절하며 아이들 이야기에 같이 웃을 수 있는 이 순간이 행복할 뿐이었습니다.

 

 "야, 입사 시험 보려면 꼭 정장 입어야 해? 한 50만원 정도 한다며? 구두도 꼭 신어야 되고?"

 아직 공부가 덜 끝난 친구가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를 부러워하며 묻습니다.

 

 "화장, 외모 그런 거 안 봤어. 그리고 비전을 묻더라.  아~ 비전은 무조건 CEO라고 하는건데 생각 못했어."

 

 아이들은 직장 얘기, 남자 친구 얘기, 해외 여행 이야기로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녀석들을 바라보니 대견했습니다. 어느새 자라 어엿한 사회인이 되다니...

 

 대기업에 취직해서 비교적 여유로운 연수원에 근무하는 혜민이는 어느새 신입 사원을 연수시키고 있습니다.

 

 "꼬박꼬박 나한테 인사하는 신입사원들 보면 되게 귀엽다.호 호 호 "

 "야, 인마 아직 신입사원 티나는 니가 더 귀엽다. 꺄 르 르 "

 

 아이들 이야기가 끊어진 사이에 내가 잠깐 얘기했습니다.

 

 "아줌마는 너희들이 오늘을 기억하고 이렇게 찾아 와 줘서 너무 기뻐. 지난 한 달 동안 많이 힘들었어. 그래서 오늘 못 보는 줄 알았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내게 찾아 온 암을 축복이라 생각해. 많이 아프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비로소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게 됐거든. 사랑과 행복의 맛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 그래서 순간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어. 우리 경미 생각해서 행복하게 살자." 

 

 10시가 돼서야 아이들은 현관 벽에 방명록을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한결같이 다시 오겠다는 글을 남겨서 가슴이 찌잉 했습니다. 한 녀석은 이렇게 썼습니다.

 

 "또 오고 싶어요. 아줌마 이야기 또 듣고 싶어요. 인생의 맛, 저도 알고 싶어요."

 

 딸은 갔지만 더 많은 딸이 생겼습니다. 아직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아이들과 만나 어린이 집 봉사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내 아이디어에 딸이 무척 기뻐했었는 데 한 번도 가지 못해서 늘 아쉬웠거든요. 친구들도 딸처럼 좋아하겠지요?

 

 좁은 방에 둥근 상을 펼치고 무릎을 맞대고 앉아 저녁을 먹던 따듯한 밤을 나도 아이들도 오래오래 기억할 겁니다.

2008.01.24 17:02 ⓒ 2008 OhmyNews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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