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가 흘릴 또 한번의 피를 역사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소설-2011 한일합방 13] 1. 작전명 '노란토끼'... 학살 상편

등록 2008.12.31 10:26수정 2008.12.3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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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오전 6시.

 

TV 채널을 돌리는 곳마다 광주, 전남 지역에 0시를 기준으로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이른 새벽부터 이를 알리는 호외가 뿌려지고 있었고, 관공서 마이크에서는 계엄 선포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집회가 금지된다는 안내방송이 계속해서 되풀이 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제 경찰이 다른 때와는 달리 시위를 저지하지 않고 갑자기 시위 현장에서 철수해버린 것이 이제서야 이해가 됐다. 하지만 계엄이 선포된 이유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파출소 몇 곳이 습격을 당했다는 정부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어 준다 해도 그랬다. 군부대도 경찰 본청도 아닌 파출소에서 탈취한 무기로 무장 폭동을 일으킨다는 것은 도대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파출소라는 곳에 기껏 있을 만한 무기란 게 법에 따라 민간인들이 보관하게 되어 있는 공기총, 엽총 같은 것에 불과했다. 설사 그곳에 근무하던 경찰들이 소지하고 있던 권총을 몇 정 뺏겼다 해도 계엄을 선포해 군부대까지 동원할 이유는 안됐다. 요즘 세상에서야 권총 정도야 변두리 삼류 조직 폭력배들조차 소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 정도는 정상적인 경찰의 공권력으로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광주지역의 시위가 빠른 속도로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정부측의 발표는 코미디 중 코미디였다. 이틀 동안의 집회 동안 정부가 우려할 만한 폭력은 없었다. 첫째날 경찰들의 무자비한 폭력진압에도 과거 군부 독재시절처럼 화염병을 투척하지도, 쇠파이프를 들고 이에 맞서는 일도 없었다. 더더구나 경찰이 시위 현장에서 철수해버린 어제의 시위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충장로를 비롯한 광주 거리에는 십만여 개의 촛불만이 있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계엄선포가 정부의 음모라고 여겼다. 계엄령 선포를 정당화한 파출소 습격이나 폭력시위 등 모든 것이 잘 짜인 계략이라고 생각했다. 30년 전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광주를 희생양 삼아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쟁취해내려는 친일매국정권의 간교한 계략.

 

광주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깊숙한 곳에는 공포 또한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나이든 사람들은 30여 년 전 자신들이 직접 겪었던, 그리고 이보다 어린 이들은 자신들의 부모로부터, 친지들로부터 들었던 군인들에 의한 무자비한 학살이 재연될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미 전방 예비사단 2개 연대가 광주외곽에 배치되고 있는 중이었다. 30여 년 전 광주학살의 주범이었던 7공수여단도 이동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어찌 행동해야 할지 몰랐다. 공포에 굴복해 이대로 주저 앉아 버릴 것인가, 아니면 천인공노할 친일 독재 매국 세력에 대한 분노에 죽을 각오로 맞서 나갈 것인가. 주저 앉아 버릴 것이 아니라면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4월 21일 오전 8시.

 

김경수는 조일신문 편집국의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었다. 광주전남 지역의 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광주쪽 현지 소식을 인터넷이나마 통해 알아보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전남일보, 광주일보, 무등신문 등 현지 언론사는 물론 각 대학들의 웹사이트에조차 접속이 되지 않고 있었다. 인터넷 접속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광주전남지역의 웹사이트들에만 접속이 되지 않고 있었다.

 

김경수는 수화기를 집어 들고 전산실로 전화를 걸었다.

 

“정치부 김경수 기자입니다. 인터넷에 문제가 있나요? 일부 웹사이트에 접속이 안되는데.”

“혹시 광주,전남 쪽 사이트 접속하신 건가요?”

“네.”

“안 그래도 이 문제 때문에 기자님들께서 전화들을 많이 하시네요. 차단됐습니다. 계엄 때문입니다. 계엄하에서는 보도통제도 가능하니까. 이런 건 기자님께서 더 잘아시겠네요.”

“보도 통제요?”

“네. 그뿐 아니라 그쪽에서 올라오는 글들을 모두 삭제해달라는 협조 공문까지 받았습니다. 협조 공문이 아니라 사실상 명령입니다. 아이피를 우회해서 올라오는 글들이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보이는 족족 삭제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참고삼아 말씀드리면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고 전화, 휴대폰까지 그쪽 지역 통신망 자체를 막을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빠르면 오늘 오후부터 그렇게 될 것입니다.”

 

“개 자식들!”

전화를 끊은 김경수의 입에서 자연스레 욕이 튀어 나왔다. 김경수는 이근삼 정권의 하는 짓이 그들이 그렇게 적대시하는 북한 공산당보다 더 악랄하다고 생각했다.

 

이건 광주를 고립무원화 시켜놓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자신들의 뜻대로 여론을 짓누르겠다는 음모임이 분명했다. 광주를 본보기로 보여 한창 물이 오르고 있는 반정부 시위 분위기를 사전에 차단해버리려는 계획. 가능성이 낮은 북한의 도발을 핑계 삼아, 가속화되고 있는 일본으로의 자본종속화나 한일방위조약에 대한 반대 여론을 무마시키겠다는 간계였다.

 

아니 더 지독한 것을 계획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를테면 개헌 같은 것 말이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의 중임을 제한하고 있지만, 이근삼이 대통령직을 물러나서도 정권을 유지하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사실 이근삼이 권력을 계속 유지하느냐 아니냐는 핵심이 아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줄 그 누군가든 이근삼의 뒤를 이어 권력을 쥐어 지면 될 뿐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김경수는 이런 생각을 하자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광주에 직접 내려가봐야겠어.’

김경수는 취재수첩과 노트북, 사진기를 가방에 주섬주섬 챙겼다. 사실 정치부 기자인 자신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일이었지만 광주에서 무슨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선배, 청와대 들어가려고?”

김경수가 가방을 챙겨 나가려는 순간 후배 여기자인 사회부 김은수가 그에게 다가왔다.

 

“나 선배한테 할 말 있어. 잠깐이면 돼. 시간 좀 내줘.”

김은수는 김경수의 팔을 끌고 편집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편집실 복도 중앙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회사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나, 오늘 광주 내려가.”

옥상 끝 난간에서 서울시내를 내려다보며 김은수가 말을 내뱉었다.

 

“광주? 취재 떨어진 거야?”

“아니. 취재가 떨어질 리가 있나. 나 혼자 단독으로 가는 거야. 뭔가 돌아가는 게 냄새가 나. 직접 확인해봐야겠어. 여기 앉아서 불러주는 대로 쓰라는 대로 소설을 쓸 수는 없잖아  .”

 

김경수는 김은수가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여자인 김은수를 광주에 내려가게 할 수는 없었다.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제 정신이야! 지금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아?”

“그럼 어쩌라고, 앉아서 또다시 소설이나 쓰라고. 4년 넘게 소설을 써댔어. 이제 다시는 그렇게 안 해. 지난번에 그 불쌍한 젊은 애. 내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내 기사로 간첩으로 만들었어. 이제 그런 짓은 도저히 못 하겠어. 신문에 나든 안 나든 난 사실을 쓸거야. 소설이 아닌 기사를 쓸 거라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군인들이 출입을 막고 있을거야. 광주에 들어갈 수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선배를 보자고 한 거야.”

“무슨 이야기야?”

“AP 애들이 오늘밤 광주로 내려간다는 소리를 들었어. 로버트 홉킨스 기자. 선배하고 컬럼비아에서 같이 연수받지 않았어? 친분 있을 테니, 나 좀 빨리 소개해줘. AP기자로 위장해서 따라 갈 생각이야. 외신까지 막지는 못할 것 아니야."

 

김경수는 무턱대고 노트북만 달랑 챙겨서 광주로 내려가겠다고 맘 먹은 자신보다 김은수가 훨씬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AP기자로 신분을 위장한다면 광주로 들어가는 것도 취재하는 것도 비교적 안전하게 할 수 있었다. 또 컬럼비아 시절 자신과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던 로버트라면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확률이 높았다.

 

“그래. 좋다. 그렇다면 나도 같이 간다. 아니 솔직히 지금 나 역시 광주로 가려던 참이었다. 너 같이 로버트를 이용할 생각은 못 했지만, 어떻게든 광주로 들어갈 계획이었어.”

“선배가? 왜? 정치부, 그것도 청와대 출입기자가 뭐하러?”

“네 말마따나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 이제 나도 지겹거든. 소설 쓰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 널…아니다. 이건 나중에 이야기 하자”

김경수는 말끝을 흐렸다. 김은수는 이런 김경수를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김경수가 하지 못한 말. 김경수는 지금은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언제인가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그런 때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아니 어쩌면 계속 꺼내지 못할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넌 일단 회사에 있어. 내가 로버트를 만나보고 전화할 테니까.”

김경수는 김은수를 옥상에 남겨두고 회사를 빠져나갔다.

 

4월 21일 오후 1시.

 

21일 오전 10시에 전남 장성 삼서면 상무대에 도착 대기 중이던 백마부대 2개 연대는 광주로 들어오는 주요 도로 경계 임무를 맡은 2개 대대만을 남겨 놓은 채 조선대로 이동을 시작했다. 비슷한 시각 비교적 광주와 가까운 전북 익산에서 이동해 광주 외곽에서 대기 중이던 7공수 여단 소속 2개 대대는 이미 전남대 교문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었다.

 

“군인들이다!”

 

공수부대원들을 태운 트럭이 교정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학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계엄령 선포와 동시에 광주와 전남의 각 대학들에는 휴교령이 내려졌지만 이 소식을 미처 듣지 못하고 학교에 나와있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학생들은 군인들과 마주쳤다가 혹시나 봉변이라도 당할까를 두려워 하며 건물 안으로 황급히 몸을 피하기 시작했다.

 

7공수 여단 33대대 마상일 대위는 소속 팀원들을 데리고 학생회관 건물로 이동을 시작했다.학생회 지도부가 학교 내에 남아있을 경우 체포하라는 대대장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마상일은 학생회 간부들이 학교에 남아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계엄령이 선포됐다는 소식에 이미 어딘가에 몸을 숨겼을 터였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틀렸다. 학생회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을 때 그 곳에는 전남대 학생회장인 김찬정을 비롯해 학생회 간부 몇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군인들의 급작스런 출현에 처음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금세 평정을 찾았다.

 

“전남대 학생회 놈들인가?”

“그렇습니다”

깡마른 체구에 날카로운 눈빛을 한 학생 한 명이 마상일의 질문에 앞으로 나서며 대답을 했다. 학생회장인 김찬정이었다.

 

“모조리 체포해!”

마상일이 부하들을 돌아보며 명령을 내렸다.

 

“잠깐만. 우리를 체포하려는 이유나 압시다.”

김찬정이 다시 앞으로 나서며 마상일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이런, 개새끼가. 우리가 누군지 몰라?”

마상일의 팀원 중 한 명이 진압용 곤봉을 치켜 들며 김찬정을 위협했다. 하지만 김찬정은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줘야 하는 군인들 아닙니까”

“이 새끼가 정말!”

곤봉이 김찬정의 무릎에 내리 찍혔다. 김찬정은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김중사, 그냥 놔둬!”

마상일이 김찬정을 향해 또다시 곤봉을 내려치려는 부하를 제지했다.

 

“국가 내란 주동 혐의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 없겠지?”

“국가 내란 주동이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소리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30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 선배들한테 당신들이 했던 소리군요. 집회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인데 당신들 눈에는 이것이 내란으로 보이는 모양이네요.”

 

“이 빨갱이 새끼가!”

 

마상일의 부하 한 명이 이번에는 소총 개머리판으로 김찬정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주저 앉아있던 김찬정의 머리가 찢겨 지면서 피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김찬정의 온몸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김찬정은 고개를 꼿꼿이 든 채 말을 이어나갔다.

 

“이것 하나만 더 물읍시다. 왜 또 광주입니까? 왜 광주가 매국노들의 야욕에 또다시 피를 흘려야 합니까? “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우린 군인이다. 명령을 받았으면 그대로 이행할 뿐인 군인. 광주의 일부 불순 세력이 주적인 북한 놈들과 부화뇌동하여 국가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어 명령에 따라 우리가 나섰을 뿐이다. ”

 

“불순세력? 그래 또다시 광주가 불순세력이 되는군요. 정말 어이가 없군요.”

“이 새끼가, 정말! 중대장님, 이 빨갱이 새끼 말하는 걸 그냥 놔둘 겁니까? 고분 고분 안 따라 나서면 그냥 반쯤 죽여서 끌고 가죠.”

 

“그래.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한마디만 더해라. 어차피 앞으로는 말할 기운도 없게 될 테니까.”

 

마상일이 다시 부하를 제지하며 말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차라리 잘됐습니다. 또 광주인 게 다행이란 말입니다. 또 광주여야지. 역사가 또렷하게 기억하지 않겠습니까? 역사청산을 제대로 못한 민족들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치욕의 역사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것, 일본놈들 밑에서 나라 팔아먹은 친일 매국노들을 제대로 처단 못한 것, 수많은 민중들의 피를 담보 삼아 자신들의 야욕만 채운 군사독재 양아치들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한 것, 이 뼈에 사무칠 실수 때문에 비극의 역사가 아주 똑같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

 

그래. 또다시 광주인 것이 다행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역사는 다시는 잊어 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외려 당신들이 고맙습니다. 그래 또 광주가 피로 물들겠지만, 그 정도는 희생해 주지요. 내 조국, 내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 정도 희생이야 못해주겠습니까? 광주 사람들 모두들 또 한번의 희생을 자랑스러워 할겁니다. 다시는 이 땅에 이와 같은 악순환이 되풀이되지 않을 피의 교훈이 되어 줄 테니 말입니다.”

 

김찬정은 토해내듯이 말을 마치고 억지로 몸을 추슬러 일으켜 세웠다.

 

공수부대원들은 그런 김찬정을 비롯해 남아있던 학생회 간부들을 굴비 엮듯이 묶어 학생회 사무실을 나섰다.

 

학생회관 복도에서는 미처 학교를 빠져나가지 못한 학생 몇몇이 공수부대원들에 의해 끌려나가는 학생회 간부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은 완전무장한 공수부대원들의 위압적인 태도에 겁에 질려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공수부대원들을 제지하거나 뭐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김찬정은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아 정신이 없는 가운데에도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이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학우들이여, 겁내지 마시오! 우리가 믿는 것이 정의이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기 마련입니다. 투쟁을 멈추지 마십시오. 총칼이 앞을 가로 막는다고 싸움을 그만 두는 것은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의 자식들이 할 도리가 아닙니다. 학우들이여…”

 

김찬정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공수부대원들의 곤봉과 개머리판이 자신의 온 몸에 내리 떨어지고 있었다. 김찬정은 이미 머리의 상처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져 가고 있는 상태였다. 얼마 못 가 그는 차가운 복도 바닥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2008.12.31 10:26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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