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대운하 포기 선언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논란들

등록 2009.06.30 14:05수정 2009.06.3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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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되어 국론을 분열시킬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한 대운하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사실 대운하의 핵심은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에서는 그걸 연결할 계획도 갖고 있지 않고 제 임기 내에는 추진하지 않겠습니다." -  李대통령 18차 라디오연설 중

이른 아침, 대운하를 포기한다는 속보에 귀를 의심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말은 끝까지 안 들으면 뒤통수 맞는다.

"4대강 살리기도 바로 그런 목적입니다. 지난 5년간 평균으로 보면, 연간 홍수 피해가 2조 7000억원이고, 복구비가 4조 3000억원이나 들었습니다.물도 풍부하게 확보하고 수질도 개선하고 생태 환경과 문화도 살리면서, 국토의 젖줄인 강의 부가가치도 높이면, 투입되는 예산의 몇 십 배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 李대통령 18차 라디오연설 중

봐라. 끝까지 안 듣고 넋 놓고 있었다간 틀림없이 뒤통수 맞았다. 결국 MB가 하고 싶었던 말의 핵심은 다른 게 아니라 '4대강 살리기는 대운하 아니다. 4대강 살리기는 계속할 건데, 대운하는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라.' 이거다. 여기에 덧붙는 청와대 대변인실의 발언이 예술이다.

"라디오 연설에서 언급하신 대운하 문제는 작년 대국민담화 발표할 때 국민이 반대한다면 하지 않겠다고 한 바 있는데 이번에 입장을 명확히 밝히신 것 입니다. 일부 언론에서 '백지화'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적절치 않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대운하는 지금도 필요하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대운하 반대여론이 적지 않고 더 중요한 것은 꼭 우리가 추진해야 하는 4대강 살리기마저 대운하와 연계해 의구심을 갖거나 정쟁 도구화 하는 양상이기 때문에 입장을 명확히 밝혀 두는게 좋다고 판단해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 18차 라디오 연설 관련 브리핑 중(청와대 대변인실)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백지화'는 적절치 않단다. 오! 이 놀라운 '역설' 화법의 극치! 아마도 청와대 대변인실의 누군가가 학창시절 시집 꽤나 읽었던 문학 소년이었던 모양이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 중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졸지 않고 열심히 수업을 들은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이러한 역설의 기법은 일상 언어의 문법으로는 그 의미 설명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로 인하여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꺼내 놓은 '대운하 포기 선언' 카드가 오히려 논란을 더욱더 가속화시키고 있는 양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늘 18차 라디오연설을 통해 '대운하의 핵심은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것인데 '연결할 계획도 갖고 있지 않고 임기 내에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 임기 내에는 추진하지 않지만 임기 후에는 추진되도록 하겠다는 것인가? -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 2009년 6월 29일자 논평 중


"이 대통령은 역시나 대운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위 4대강 사업은 곳곳에서 대운하 사업으로 의심받고 있다. 보의 높이, 개수, 준설 깊이 등이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 말대로 임기 내에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더라도 기초 작업을 마련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 민주당 송두영 부대변인 2009년 6월 29일자 논평 중

"대통령은 대운하와 4대강사업이 관련이 없다고 얘기하고 싶은 모양이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대운하와 4대강의 연관성에 우리 국민들은 관심없다. 지금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4대강 사업'이다. 이미 여론심판이 끝난 사업을 뒤늦게 거론하며 '4대강사업'을 엄호하려는 술책에 불과한 라디오 연설이었다. 대통령의 술책에 넘어갈 국민들이 아니다." - 민노당 우위영 대변인 2009년 6월 29일자 논평 중

"이명박 대통령이 오늘 대운하 사업을 임기 내에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은 계속해서 추진하겠다고 하였다. 이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우리 당 노회찬 대표는, '4대강 사업은 80% 대운하 사업이며, 대통령의 발언은 100%대운하는 안 하지만, 80% 대운하는 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라고 하였다." -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 2009년 6월 29일자 논평 중

야당들은 대체로 역설 화법이 불러 일으키는 해석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반면, 대운하를 포기한다는 발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순진한(?) 반응도 있으니...

"李明博 대통령은 오늘 라디오 방송에서 大運河 건설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대운하가 필요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李 대통령은 대운하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표를 많이 얻어 당선되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된 뒤 한 번도 직접 대운하 계획의 타당성을 국민들에게 설명한 적이 없다. 설득하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해버린 것이다. 지지자들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 조갑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한 대통령 중

자, 그러면 여기서 퀴즈,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은 그 주제가 뭘까? 모르겠다고? 잘 생각해 봐라. 그래도 모르겠으면 검색이라도 해 보도록. 찾으셨나? 그렇다. 그 주제는 바로 '임을 향한 영원한 사랑'이다.

대운하를 하지 않겠지만 백지화 하지는 않았다는 청와대 대변인실의 역설 화법은 MB의 '대운하를 향한 영원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가 아니었나 싶다.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높은 교육 수준의 대한민국 국민들인만큼, 그 역설 화법에 담겨 있는 진정한 의미를 대부분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MB는 아직도 모를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은 '대운하' 그 자체가 아니라, 대운하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이라는 점을 말이다. MB는 언제쯤 알까? 4대강 사업이 그러한 여러 문제들을 여전히 안고 있다면 아무리 대운하를 포기한다고 선언해도, 4대강 사업이 대운하가 아니라고 오해하지 말라 해도, 반대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모 일간지는 MB의 대운하 포기 선언이 소통 정치의 1탄이라고 했다. 그렇다 치자. 제발 2탄, 3탄은 국민이 반대하는 그 '무엇'이 뭔지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시작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http://www.cyworld.com/neopenta9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http://www.cyworld.com/neopenta9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운하 #4대강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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