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8시간 영어로 말해야 하는 시간이 지나면, 뒷골이 땡기면서 피로감이 확 밀려 든다. 수업은 그렇다 치고, 혹시 영어로 회식해 봤는가? 사진은 영화 <날아라 펭귄> 중 회식 장면.
국가인권위
교육 기간은 8월 한 달. 업무, 집안일 등으로 시간 부족의 핑계를 대던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영어공부만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공식적인 교육시간인 하루 8시간 동안은 '오로지' 영어만 써야 한다. 쉬는 시간도 예외는 아니다. 평소에도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나이기에 말 꺼내기가 더욱 쉽지 않았다. 영어에 신통치 않은 귀를 가진 나로서는 더 잘 듣기 위해 애를 썼으나, 원어민 강사의 질문을 받으면 엉뚱한 대답을 내놓기 일쑤였다.
이렇게 하루 8시간이 지나면, 뒷골이 땡기면서 피로감이 확 밀려 든다. 수업은 그렇다 치고, 혹시 영어로 회식해 봤는가? 회식 자리 정도는 편안하게 즐겨도 될 법한데, 이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물론 취한 상태에서 영어가 더 잘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영어 듣고 있으면 말도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암튼, 남들은 업무에서 해방되어 스트레스 받을 일도 적을 것 같다지만, 전혀 아니올시다다. 한 달 동안 짱 박혀 공부한다고 영어 실력이 얼마나 늘겠는가마는, 성적으로 그걸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회사 동료들 보기에도, 가족들 보기에도 덜 민망할 테니. 어쨌거나 한 달 합숙을 무사히 마치고 통과의례인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그립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겨우겨우 승진 조건 갖췄는데 내년에 또 바뀌면 어쩌지회사에서는 몇 해 전부터 인건비 절감 차원으로 신입사원을 뽑는 대신 베트남 인력을 뽑아 일을 시키고 있다. 같이 해야 할 일도 많고, 가르칠 일도 많다. 영어 실력도 짧은데, 벵글리시(베트남인들이 쓰는 영어)까지 알아들어야 한다.
일을 시켜야 하니 영어로 문서를 써야 하고, 가르치려고 하니 영어로 얘기를 해야 하고, 베트남 현지에 있으니 영어로 채팅이나 메일을 써야 한다. 우리나라 신입사원이었으면, 바로 코치하고, 문서 보고, 바로 투입하면 되었는데, 이것은 하나 하나 설명을 해주어야 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영어로.
상황이 이렇다보니 회사도 국제화를 외치면서, 영어 점수뿐만 아니라 업무 전반에 걸쳐 영어 사용을 강요하는 추세이다. 필요가 아닌, 필수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가정 생활, 사회생활 하면서, 영어 공부를 위해 장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쉽지 않고, 영어 부담 없는 잘 하는 동료들에 대한 부러움, 열등감이 때때로 힘들 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번 <도전골든벨>-베트남 특집에서 한국말 잘 하는 사람 많던데, 그런 사람을 뽑으면 안 되나. 더 효율적이고 능률적일 텐데. 그래도 얼마 전 받은 시험 성적표가 큰 위안이 되었다. 한 달 간의 '불꽃' 공부로 값진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이제 승진 조건은 갖췄다. 근데, 내년에 승진에 필요한 영어 시험이 또 바뀌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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