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살던 집 앞에 있던 학교에 눈이 내린 풍경도서관과 붙어 있던 학교는 나의 단골 산책로이자 아지트였다. 올 초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려 눈구경을 실컷 했었다.
최형원
나는 올해로 서른이었다(아, 이제 그 서른도 얼마 남지 않았다). 결혼과 함께 남편의 직장을 따라 산골 벽지 생활을 시작했으니 만 4년째 지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처음 신혼살림을 차린 곳은 강원도로 하루 4번 시외버스가 지나는 산골 마을이었다. 다음은 전라도, 또 그다음은 충청도.
단조로운 시골 생활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시골은 공기도 좋고 확실히 마음을 여유롭게 하는 면은 있었지만 흔히들 도시 사람들이 품는 시골에 대한 환상만큼이나 불편한 점들이 많았다. 연고가 없으니 외출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 외출도 거의 못했고(시골집들 대부분이 차를 가지고 있어 걸어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버스를 이용하는 것은 주로 노인과 학생들이다), 외출을 한들 번화한 곳이라야 대형마트가 전부였다.
결혼 전 25년 이상을 서울에서 살아 온 내게 교육·문화·예술을 접할 수 없다는 것은 적잖은 충격과 어려움이었다. 살아보니 셀러던트나 자기계발 열풍, 문화생활이라는 말은 도시, 그 중에서도 거대 도시 서울에 국한된 면이 없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집순이가 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살았다. 충청도로 이사갔을 때 집 앞에 아주 작은 도서관을 하나 발견하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처음으로 책을 빌려온 날 흥분해서는 밤늦게 귀가한 남편을 붙들고 "책이 생각보다 많아!" 하며 흥분해서는 밤잠을 설쳤었다.
그 후로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보며 지냈다. 그러는 동안 나의 친구는 자연이 전부였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를 구경하고 계절이 변해가는 모습을 느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산책을 나가서 책을 읽거나 시골길을 걷는 것은 내게 있어 가장 큰 하루의 일과이자 즐거움이었다.
자꾸만 읽다 보니 점점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다. 쑥스러워 남에게 밝힌 적은 없지만 학창시절 나의 꿈은 작가였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순수했던 꿈과 멀어지다보니 글을 쓰는 일과는 하늘과 땅처럼 멀게만 느껴졌었다. 그런데다 거의 매일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내다보니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다. 나는 어느새 우울증을 앓는 20대 주부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울렁증이 주특기인 아줌마의 무모한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