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년만의 첫 외출, 삽질하다 홈런 치다

[사고쳤어요] 울렁증이 주특기인 내가 글쓰기로 취재까지 나선 사연

등록 2009.12.18 11:50수정 2009.12.1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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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주말 글쓰기 교실에 모인 신발들 주인들만큼이나 각양각색의 신발들이 모여 있다.

지난 주말 글쓰기 교실에 모인 신발들 주인들만큼이나 각양각색의 신발들이 모여 있다. ⓒ 최형원

"설마 여기서 밤 샜어요?"


일 년 남짓 들락거린 대문을 열고 들어가다 나도 모르게 인사 대신 튀어 나온 말이다. 질문의 당사자인 바구니가 어색해하며 나에게 되묻는다.

"어머, 그렇게 보여? 안 되는데~ 나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어떡하지? 손님들도 올 텐데…… 많이 부스스한가?"

안으로 들어가니 눈에 보이는 사람마다 분주한 모습들이다. 나도 얼른 거들기 시작한다. 마음은 급한데 손이 따라주지 않아 조급하다. 옛말이 틀린 게 없다지만 '급할수록 천천히' 라는 말은 이럴 땐 도무지 해당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지난 주말 토요일을 떠올리면 꼭 꿈만 같다. 평소에 공상과 상상을 즐기는 나이기에 이게 혹시 간밤에 꾼 꿈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거기에 또 하나 더해지는 생각은 '과연 내가 이 일을 해냈나?' 하는 대견함과 감격스러움이다. 자 이쯤되면 궁금해질 만도 할 것이다. "당신은 누구요?" 나? 대한민국 아줌마! 덧붙이면 이제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이기도 하다. 그 이름하여 자유기고가. 히히히.


책과 길이 유일한 친구였던 내가

a 지난 2월, 살던 집 앞에 있던 학교에 눈이 내린 풍경 도서관과 붙어 있던 학교는 나의 단골 산책로이자 아지트였다. 올 초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려 눈구경을 실컷 했었다.

지난 2월, 살던 집 앞에 있던 학교에 눈이 내린 풍경 도서관과 붙어 있던 학교는 나의 단골 산책로이자 아지트였다. 올 초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려 눈구경을 실컷 했었다. ⓒ 최형원


나는 올해로 서른이었다(아, 이제 그 서른도 얼마 남지 않았다). 결혼과 함께 남편의 직장을 따라 산골 벽지 생활을 시작했으니 만 4년째 지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처음 신혼살림을 차린 곳은 강원도로 하루 4번 시외버스가 지나는 산골 마을이었다. 다음은 전라도, 또 그다음은 충청도.


단조로운 시골 생활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시골은 공기도 좋고 확실히 마음을 여유롭게 하는 면은 있었지만 흔히들 도시 사람들이 품는 시골에 대한 환상만큼이나 불편한 점들이 많았다. 연고가 없으니 외출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 외출도 거의 못했고(시골집들 대부분이 차를 가지고 있어 걸어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버스를 이용하는 것은 주로 노인과 학생들이다), 외출을 한들 번화한 곳이라야 대형마트가 전부였다.

결혼 전 25년 이상을 서울에서 살아 온 내게 교육·문화·예술을 접할 수 없다는 것은 적잖은 충격과 어려움이었다. 살아보니 셀러던트나 자기계발 열풍, 문화생활이라는 말은 도시, 그 중에서도 거대 도시 서울에 국한된 면이 없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집순이가 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살았다. 충청도로 이사갔을 때 집 앞에 아주 작은 도서관을 하나 발견하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처음으로 책을 빌려온 날 흥분해서는 밤늦게 귀가한 남편을 붙들고 "책이 생각보다 많아!" 하며 흥분해서는 밤잠을 설쳤었다.

그 후로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보며 지냈다. 그러는 동안 나의 친구는 자연이 전부였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를 구경하고 계절이 변해가는 모습을 느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산책을 나가서 책을 읽거나 시골길을 걷는 것은 내게 있어 가장 큰 하루의 일과이자 즐거움이었다.

자꾸만 읽다 보니 점점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다. 쑥스러워 남에게 밝힌 적은 없지만 학창시절 나의 꿈은 작가였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순수했던 꿈과 멀어지다보니 글을 쓰는 일과는 하늘과 땅처럼 멀게만 느껴졌었다. 그런데다 거의 매일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내다보니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다. 나는 어느새 우울증을 앓는 20대 주부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울렁증이 주특기인 아줌마의 무모한 도전

a 나만의 핸드메이드 책 일일이 손으로 만드느라 밤을 꼬박 새웠었다. 내가 써보고 싶었던 단편들을 모아 엮은 책.

나만의 핸드메이드 책 일일이 손으로 만드느라 밤을 꼬박 새웠었다. 내가 써보고 싶었던 단편들을 모아 엮은 책. ⓒ 최형원


그러던 중 남편이 경기도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지방의 소도시였지만 전철이 오가는 곳이었다. "그게 뭐 별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하늘이 준 기회였다. 늘 사람들을 어딘가로 실어 나르는 전철이 나를 인생의 다른 역으로 나를 데려다 줄 것만 같았다.

해보고 싶었던 글쓰기 강의도 들으러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본래 성격이 조용한 편이라 잦은 이사로 환경이 바뀔 때마다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고는 했었는데 이번만큼은 이사가 너무 기다려졌다.

그리고 2009년 3월 나는 드디어 경기도로 이사를 왔다. 이사와 맞물려 글쓰기 강의도 시작되었다. 강의료는 결혼 후 내가 썼던 돈 중에 제일 큰 돈일 만큼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삼십대를 맞아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기로 큰 맘 먹은 마당에 돈이 대수랴(사실은 대수였지만 그동안 제법 알뜰했던 나에게 포상을 주기로 남편과 협의했다).

시청 교통과로 버스회사로 인터넷으로 물어물어 알아낸 버스와 전철 시간표를 수첩에 적어 드디어 첫 등교에(?) 나섰다. 결혼 후 3년만의 외출이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한편으론 겁이 나기도 했다. 집 밖으로 나선다는 것. 그 자체가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나에게는 큰 사건이었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인생이 조금씩 재미있어졌다. 결혼 전 교통사고를 포함해 인생의 긴 휴식기를 가졌던 나는 소극적이고 자신감 없는 성격으로 변해있었다. 그랬던 내가 현직 소설가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성공하고 내가 쓴 글의 첨삭까지 받아냈다. 또 평소 쓰고 싶었던 단편소설들을 모아 책을 만들기도 했다.

거기다 고사하는 극장 사장님을 설득해 옛날 극장을 찾아가 인터뷰를 성공시켰다. 낯가림이 심한 내가 인터뷰를 하기까지는 얼마나 마음이 떨렸는지 모른다. 무려 3시간을 기다려 간신히 인터뷰를 마치고는 참았던 긴장이 풀어져 눈물이 다 났었다. 그렇게 고생이 묻어난 기사는 <오마이뉴스>에 기고 후 생애 첫 기사로 첫 톱을 달성하는 성과를 안겨주기도 했다.

조금 자신감이 생긴 나는 급기야 자유기고가로의 변신을 꾀하는 대형사고를 치기로 마음먹었다. 세상물정 어둡고 남편 표현대로는 얼빵한 시골 아줌마의 무모한 도전이 본격화 된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서울을 오가는 시간은 왕복으로 5~6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었다. 처음 강의를 듣고 와서는 3~4일씩 앓아눕곤 했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다리가 붓고 아팠기 때문이다.

그랬던 터라 내가 자유기고가 과정에 도전하겠다고 하니 남편은 "하는 건 좋은데 끝까지 할 수 있겠어?"라며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할 수 있겠어?'라는 말은 나를 자극했다. 지난 몇 년 간 나는 무언가를 이뤄본 적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배우자를 만났지만 그것으로 여자의 인생이 끝난 건 아니지 않은가? 나는 나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싶었다. 그리하여 "할 수 있어!"라는 비장한 말 한마디를 외치고는 서울을 드나들었다. 잡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삽질하다 날린 홈런, 사진기자 대동하고 취재가다

a 속초의 상징 해오미 해오미는 오징어와 일출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11월에 취재를 다녀오면서 기념으로 찍은 사진.

속초의 상징 해오미 해오미는 오징어와 일출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11월에 취재를 다녀오면서 기념으로 찍은 사진. ⓒ 최형원

잡지를 만드는 과정은 기획부터 취재 편집디자인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특히나 편집디자인은 전공자가 아니어서 툭하면 막다른 길에 부딪혔다. 함께 작업한 동기들과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했었다.

"아이고, 어떻게 하는 일마다 맨 땅에 헤딩이니?"
"우리가 하는 일이 그거라니까? 삽질, 몸개그."

그러던 중 나에게 취재 청탁이 들어왔다. 글쓰기를 가르치던 곳으로 의뢰가 들어와 추천을 받았는데 뽑힌 것이다. 여성부 소식지의 한 코너를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작가님이라는 호칭에 사진기자까지 대동하고 속초까지 날아가 취재를 하고 왔다. 이제 막 글쓰기를 배운 지 고작 몇 달인 나에겐 제법 큰 홈런이었다.

자~ 여기까지가 대략 올 한 해 나를 거쳐 간 사건, 사고다. 혹자는 이 모든 걸 일상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내겐 평생의 추억이 될 큰 변화요 사건들이었다. 조용한 시골 아줌마이던 내가 세상으로 나가 말도 걸어보고 신기한 것들을 만져도 보고 배워도 보고.

그 과정이 어찌 순탄하기만 했으랴. 평균적으로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동기들과의 관계 유지도 쉽지만은 않았다(내 나이 서른, 그곳에선 늘 막내다). 남편과의 트러블도 있었고 장염에 걸린 적도 있었으며 잡지를 만드는 과정 막판엔 자격증 시험과 맞물려 위염과 식도염이 한꺼번에 찾아와 병원을 수시로 들락 거렸다.

하지만 나는 집밖으로 나가는 결심을 한 덕분에 많은 것을 얻었다. 인생을 다시금 꾸려 나갈 수 있는 용기와 어려움을 이겨내고 단단해진 마음을 말이다. 이쯤에서 뻔한 얘길 한마디 하자면 바로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다.

바쁜 와중에 틈틈이 늦은 시간 전철역으로 마중을 와주고 밤새워 공부한 후 시험을 보고 와선 뻗어버린 아내를 위해 어수선해진 냉장고 안을 조용히 청소해 준 남편의 이해와 양보가 있었기에 나의 무모한 도전은 성공할 수 있었다.

일 년 남짓한 시간동안 남편은 때론 든든한 지지자로 때론 냉정한 독자가 되어 내 글을 평가해 주었다(남편, 고마워. 당신 얘기 나왔어~ 나 잘했지?).

잠자는 시골의 글쓰는 아줌마

a 2009년 마무리 사고 얼굴 공개야 말로 올 한 해 내가 저지른 사고 중 가장 대박 사고가 될 듯하다. 평소 쌩얼과 너무 달라 낯설다.여름 캠프때 아이돌이 대세라는 동기의 주장대로 분장을 했던 모습이니 태클은 미리 사절이다.

2009년 마무리 사고 얼굴 공개야 말로 올 한 해 내가 저지른 사고 중 가장 대박 사고가 될 듯하다. 평소 쌩얼과 너무 달라 낯설다.여름 캠프때 아이돌이 대세라는 동기의 주장대로 분장을 했던 모습이니 태클은 미리 사절이다. ⓒ 최형원

생고생과 난리 블루스를 친 덕분에 지난 주말 잡지는 드디어 내 품에 들어왔다. 나의 첫 잡지가 탄생한 것이다. 하늘이 도운 덕분인지 자격증 시험도 합격한 듯하다.

그런데 찾아드는 이 허전함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더 사고를 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잠재고 있던 아줌마의 깨어난 정열, 아니 열정을!

내년의 첫 번째 사고로 나는 다시 학생이 되는 것을 꿈꾸고 있다. 몇 년 만에 다시 마주한 세상이 말처럼 싶진 않지만 나는 앞으로도 소심증과 울렁증을 극복해가며 세상을 만나는 어리버리한 아줌마이고 싶다.

하나씩 하나씩 내게 있어 소소하거나 또는 제법 큰 사고를 치면서 말이다. 또 하나 새해의 소망이 있다면 자유기고가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엣지있는 시골 작가 아줌마. 불가능하지만 한편으론 가능한 꿈이 아닐까 싶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잠에서 깨어나 왕자를 만났다. '잠자는 시골의 아줌마'는 깨어나 집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툴게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내게 있어 이제 사고는 골치가 아닌 즐거운 고생길이다. 놀이동산 팬시숍에서 넋을 잃는 모지란 아줌마의 꿈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자유기고가 #글쓰기 #시골 #아줌마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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