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차림으로 감 따주던 친구 아버지

유년의 추억

등록 2010.01.03 15:35수정 2010.01.0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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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네 아버지가 팬티바람으로 병철이네 단감을 따던 밤


어린 시절 고향 전라도 진도에서 나와 동네 아이들은 친구 엄마나 동네 아줌마들을 다 통일해서 '아짐'이라 불렀고 또 친구네 아빠나 동네 아저씨들은 다 '삼촌'이라 불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짐'이란 말은 그냥 전라도 사투리라서 이해가 가지만 '삼촌'이라는 말은 너무 정감이 가긴 한데 동네 아저씨들을 다 그렇게 부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그냥 입에 밴 단어라서 어색하지 않았고 지금도 시골에 가면 동네 아저씨들은 다 삼촌이라 부른다.

나랑 단짝이었던 현주네 아버지도 당연히 내겐 '삼촌'이었고 우리 아버지도 현주에겐 '삼촌'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여름 날 밤이었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던 나는 현주네 집에 텔레비전을 보러갔다. 내가 갔을 때 현주네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며 소주를 드시고 계셨고, 현주네 엄마는 술 마신다고 잔소리를 하시면서도 술잔이 비면 술을 따라주곤 하셨다.

현주와 나는 텔레비전에 열중하느라 현주네 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신지도 몰랐는데 어느 샌가 현주네 아버지가 술에 취하셔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현주야! 너는 학교만 가기 싫으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진짜 아픈 거 맞냐?"
"영애야! 너는 현주 좀 잘 데리고 학교에 다녀라잉."

술에 취하셔서 발음도 잘 안되는데 계속 현주네 아버지는 우리에게 말을 시키셨고 인상을 찌푸리는 현주와 달리 나는 그런 현주네 아버지가 무섭기도 했지만 우스워서 키득댔다. 현주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짜증을 내고 울상이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말을 시키며 계속 술을 마시던 현주네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영애야, 단감 먹을래? 삼촌이 단감 따줄까?"

먹을 것이 늘 부족했던 내게 단감이란 말은 귀를 번쩍 뜨이게 했지만 정작 현주네는 단감나무가 없질 않은가? 아무 대답도 않고 눈만 말똥거리고 있자 현주네 아버지는 팬티바람(그 때도 사각팬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각팬티랑 비슷했다)으로 마당에 나섰다.

영문도 모르고 마당에 따라 나온 우리들에게 현주네 아버지는 앞 집 병철이네 단감나무를 가리키며 얼른 단감을 따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보라 했다.

현주네 집과 병철이네 집은 앞, 뒷집인데 병철이네 감나무 가지가 현주네 담장 너머로 많이 넘어와 있었고 우리들도 가끔 넘어 온 감나무에서 장대를 이용하여 감을 몰래 따 먹기도 했다.

하지만 낮은 곳의 감은 이미 다 따 먹은지 오래인데 높은 곳의 감을 캄캄한 밤에 어떻게 딴단 말인가. 현주네 아버지는 담을 올라타고 감을 따주겠노라 큰 소리를 치셨고 현주네 엄마는 "이 양반이 미쳤는갑소. 올라가다 떨어지면 어짤라고 그래싸요!"라 소리쳤다.

하지만 현주네 아버지는 팬티바람에 사다리를 놓고 담에 올라서서 아슬아슬하게 단감을 따서 밑으로 던지며 속삭이셨다. 캄캄패서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데 밝은 색 팬티만 보여서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고, 현주는 그런 아버지가 창피하다며 내게 투덜댔다.

"땅에 안 떨어지게 잘 받어..."

밑에 있는 우리야 충분히 잘 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술에 취한 현주네 아버지가 오히려 잘 못 던져서 땅에 떨어지는 단감이 대부분이었다.

현주네 엄마는 내려오라고 속삭이셨고 현주네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감을 던지셨다.
현주와 나는 단감 먹을 생각에 신이 났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현주네 엄마의 애가 얼마나 탔을까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그 후로도 감나무가지를 꼭 잡고 감을 몇 개 더 따고, 담벼락에서 돌덩이 몇 개 떨어지고 나서야 현주네 아버지는 감나무에서 내려오셨다.

현주네 아버지 다리와 팔에는 온통 감나무 가지에 긁힌 상처가 있었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방에 들어오셔서는 "영애야! 삼촌이 따 준 감 맛있제? 그란데 내일 병철이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어라잉"라고 신신당부를 시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우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단감을 맛있게 먹었고 다음 날, 절친한 병철이가 자기네 감을 간밤에 누가 다 땄다고 엄마가 화를 내고 난리라고 말할 적에도 현주와 나는 눈을 마주치면서도 우린 입을 꾹 다물었다.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 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현주와 나는 현주네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그렇게 밝고 긍정적이던 현주네 아버지가 많이 아프시기 때문이다. 이젠 나이가 많이 드셔서 아픈 건 당연하지만 우리네 유년의 추억 한 귀퉁이를 장식해 준 현주네 아버지가 오래오래 사시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란다.

마음속으로 현주네 아버지께 말해 보련다.

'삼촌, 올 휴가 때가면 감나무에 올라가진 못하시겠지만 장대로라도 병철이네 단감 따주세요. 그리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덧붙이는 글 | <그들만의 특별한 술버릇에 응모합니다>


덧붙이는 글 <그들만의 특별한 술버릇에 응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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