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이상한 문서가 날아왔다"

외국인 전용 주거단지 예정지, 서울 방배동 판자촌 '성뒤마을' 주민의 한숨

등록 2010.01.30 20:55수정 2010.01.30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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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으로부터 온 '반갑지 않은' 통지서
법원으로부터 온 '반갑지 않은' 통지서 정혜미

지난 28일 성뒤마을 채명희(50)씨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이상한' 통지서가 왔다는 것. 그는 "법적 용어가 하두 많아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겄네…"라며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는디, 우리 집이 빼앗긴다는 소리 같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성뒤마을 30여 가구 중 의문의 '통지서'를 받은 곳은 채씨 집뿐이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판자촌인 성뒤마을은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우면산 기슭에 있다. 남산순환로를 따라 채명희씨 집을 방문한 것은 29일 오후. 채씨가 건넨 통지서에는 법률조항과 부동산 관련 용어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채씨의 집이 '부동산 강제 경매' 절차에 들어갔다는 것. 임차인이라면 2010년 1월 29일까지 법원에 배당요구를 해야만 매각대금으로부터 보증금 중 일정액을 우선 변제받을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채씨의 경우 현재 '무허가' 주민이기 때문에 임차인에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채씨가 살고 있는 판잣집은 채씨 가족이 직접 지었고, 일정 기간 동안 거주했기 때문에 '주거 권리'는 인정받을 수 있다. 만약 채씨가 법원에 배당요구를 할 경우 배당금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돈 몇 푼 받으면 뭐혀…이 집 나가면 어디 가서 살라꼬? 결국 우리 집 뺏으려는 수작 아니여?"

배당 요구를 하지 않을 거냐는 물음에 채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의 남편 김영창씨는 분노에 차 있었다. 김씨는 "이번에 개발사업한다 카는 거 그거 때문은 아닌가 모르겄수, 이제 슬슬 토지정리를 시작하겠다는 것 같은디…"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들의 시선은 허공을 향해 있었고 한숨 소리가 들렸다. 

서초구는 지난 23일 외국인 전용 주거단지인 '서초 글로벌 타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성뒤마을과 국회단지는 '서초 글로벌 타운'의 주요 대상지이다. 이번 개발 사업 추진으로 바깥세상은 떠들썩하지만 여전히 성뒤마을엔 '깜깜'한 소식이다.


구청과 법원, 이구동성으로 "우리는 모르는 일"

 성뒤마을에 있는 대부분의 집은 주민들이 '직접' 지었다.
성뒤마을에 있는 대부분의 집은 주민들이 '직접' 지었다.정혜미

지난 26일, 서초구청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서초 글로벌타운과 관련해 거주자 문제에 대해 논의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29일 같은 부처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 아직 성뒤마을 거주자 문제에 대한 논의가 되지 않고 있나.
"현재 구역지정 및 정리와 사업 타당성을 검토 중이고 거주자 문제는 논의될 단계가 아니다."

- 서초 글로벌타운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단계에서 거주 주민들과 논의하고 그들의 의사를 반영해야 되지 않나.
"거주자 문제는 개발 사업을 맡게 되는 민간사업자들과 논의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사업을 주관할 뿐이다."

- 성뒤마을의 한 주민이 '부동산 강제 경매'에 관한 통지서를 받았다, 서초구청에서는 알고 있나.
"우리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그는 전화통화에서 거주자 문제는 사업계획안이 발표된 후에 논의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때는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고 난 후다. 거주자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쫓겨날 것이라고 성뒤마을 주민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연락한 결과, 똑같은 대답이 나왔다. 이번 '서초 글로벌 타운' 개발사업 시행 때문에 최씨 집에 '부동산 강제 경매' 통지서가 나왔냐고 질문했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그런 거 잘 모른다"고 답변을 일축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부분 판잣집으로 이뤄진 성뒤마을
대부분 판잣집으로 이뤄진 성뒤마을정혜미

"작년 8월에야 겨우 전입신고 허가가 떨어져서, 이제 겨우 살 만한디…."

성뒤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대부분 일용직을 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지만, 그들은 '살 곳'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근 들려오는 '서로 글로벌 타운'은 그들에게 어두운 그림자로 성큼 다가왔다.

전국철거민연합 관계자 정선매씨는 "무허가 주택 문제의 경우, 개인이 대처하기 힘들다"며 "서초구청에서 개발 사업을 실행할 시 주민들에게 '강제집행권'을 발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제집행권이 발휘될 경우, 그들은 아무런 보상이나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살 곳'에서 쫓겨나올 수밖에 없다.

그는 성뒤마을 주민들에게 방법은 하나뿐이라고 했다. '뭉쳐서 투쟁하라!' 주민 모두 힘을 합쳐 서초구에 '거주권'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채명희씨는 '좌불안석'이다. 채명희씨는 "주민들 대부분 종일 일터에 나가 있어 얼굴 마주치기 힘들다"며 "주민 대부분이 여전히 개발 사업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들에겐 '뭉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계속 '통지서' 3장을 만지작거렸다. 얼마나 그 통지서를 조물거렸을까. 어느새 종이에는 자글자글한 주름들이 생겼다. 그는 "끝까지 싸울 것, '살 곳'을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의 시선은 통지서에서 떠날 줄 몰랐다.
#성뒤마을 #부동산강제경매 #서초 글로벌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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