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뒤마을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성뒤마을 주민들의 고통

등록 2010.01.27 14:55수정 2010.01.2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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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화재가 난 김씨의 집 ⓒ 정혜미


서울 서초구 방배동 우면산 기슭. 그곳에 판자촌 마을인 성뒤마을이 있다. 남산순환로를 따라가면 보이는 마을이지만 성뒤마을을 아는 시민들은 드물다. 남산순환로를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아 성뒤마을을 물었다. 그러자 "성뒤마을이 아직도 있나요, 거기 사람이 사나요?"라고 대답했다.

방배동 주민들에게도 성뒤마을은 가깝지만 '먼' 마을이었다. 현재 성뒤마을 주민들 대개가 빈곤층으로 '무허가 건축물'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지난해 8월에야 서초구청에서 전입신고 허가를 내렸지만 주민 대부분이 일용직 근로를 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화재 후 뒤처리는 또 다른 피해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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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뒤마을 뒤에 솟아있는 강남 마천루들 ⓒ 정혜미


지난 19일 새벽 2시경 아랫성뒤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고물과 폐지를 모아 생활하던 김아무개(64)씨가 숨졌다. 김씨는 불이 난 판잣집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마을 주민들은 "김씨는 집에 전기가 없어 주로 촛불을 사용하며 지냈다"고 입을 모았다.

사고 후 일주일이 지난 26일. 화재현장의 모습은 그 당시의 참혹하고 아찔했던 순간을 '적나라게' 드러내고 있었다. 김씨의 집은 모든 것이 암흑으로 변해 있었다. 노란색 수사용 띠가 화재현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김씨 집 옆에서 30년째 살고 있다는 선아무개(64·여)씨는 분통을 터트렸다. 과학수사대가 화재현장을 수사하고 뒤처리를 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선씨는 "우리도 화재 피해자인데, 뒷수습는 모두 우리 몫이 되었다"고 말했다.

선씨 집도 지난 19일 화재로 인해 전기가 끊기고 보일러가 고장났다. 선씨 집의 벽도 갈라져서 선씨 내외는 안절부절이다. 순식간에 집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전기와 보일러는 일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복구가 됐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건 보상금이나 지원금이 아닌, 화재현장을 치우는 일. 선씨의 걱정을 들어주는 사람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서초 글로벌 타운'? 성뒤마을 주민들에겐 '아닌 밤중에 홍두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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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성뒤마을의 풍경 ⓒ 정혜미


지난 23일 서울시 서초구는 방배동 565-3일대 성뒤마을과 국회단지에 외국인 전용 거주단지가 들어선다고 밝혔다. 이 일대에서 16만3000㎥ 규모의 면적으로 외국인 전용 아파트, 외국인 학교, 소형 컨벤션 센터, 병원 등이 들어서는 '서초 글로벌타운 건립계획'이 추진될 것이라고 한다.


서울시는 글로벌 시대에 유수한 외국 인력을 유치하고, 서울이 제대로 된 국제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외국인전용 주택공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서초구는 LH공사에 용역을 주어 다음달 용역 결과가 나오는 대로 서울시와 도시기본계획 변경 등을 협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정작 개발사업 대상지에 살고 있는 성뒤마을 주민들은 이 소식을 모른단다. 성뒤마을에는 인터넷이 설치된 가구가 단 한 곳도 없으며, 텔레비전이 있는 가구도 몇 안 되기 때문이다. 뉴스가 방송되는 시간에는 항상 일을 나가있다는 게 성뒤마을 주민들의 '당연한' 변명이었다.

성뒤마을에 11년째 살고 있다는 김수영(55·여)씨는 "서초 글로벌 타운 건립계획을 얼마 전 외부인을 통해 접했다"며 "성뒤마을의 주민 80% 이상은 이 개발사업 자체를 모르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이곳에서 무허가로 살고 있지만 세금을 내는 서초구의 엄연한 주민"이라고 말했다.

'코스모스'라고 적힌 판잣집에 살고 있는 채명희(60·여)씨는 "개발사업을 추진하기에 앞서 우리와 상의하고, 의사를 물어봐야하는 것 아니냐"며 "성뒤마을에 있는 집들은 모두 우리가 직접 지었다, 생존권마저 서초구에 빼앗길까 겁이 난다"고 우려했다.

서초구 "성뒤마을 주민 거주권 문제 논의된 게 없다"

서초 글로벌타운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오승목(서로구청 도시계획과 주임)씨는 "현재 개발사업이 용역단계에 있기 때문에 성뒤마을 주민의 거주권 문제에 대해 논의된 게 없다"며 "사업에 대한 타당성 검토가 다음달 완료되면 구체적인 사안들이 토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뒤마을 주민 김수영씨는 "(우리가 원하는 건)단지 '서초구 주민'으로 대우해 달라는 것, 개발사업 추진단계에서 우리의 의사를 반영해 달라는 것"이라고 서울시와 서초구청에 호소했다. 이어 김씨는 "우리의 의사가 배제된 채 사업이 진행된다면 성뒤마을 주민들도 그에 맞서는 대응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뒤마을 #서초 글로벌타운 #성뒤마을 화재 #판자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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