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주인은 제씨 아저씨이다. 제씨 아저씨는 결혼한 지 7년이 되도록 아이를 갖지 못했다. 나를 아들 대신으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은 나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 대부분의 강아지들은 성 없이 이름만 가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주인 아저씨는 나에게 특별히 성까지 같이 물려 주었다. 그러고 보면 아들 대신하려는 마음은 조금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다.
제씨 아저씨는 조그만 교회를 관리하는 집사님이다. 내 집은 교회 주차장에서 교회 본관으로 올라가는 통로 중간 즈음에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자동차들이 다니는 2차선 도로가 있다. 교회 윗 도로에는 아파트 단지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 교회 주차장을 통과하여 아랫마을에 있는 초등학교로 아이들이 많이 다닌다. 아참, 내 이름은 대로다. 주인 아저씨가 무슨 맘으로 이런 이름을 붙여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름만 불러주면 참 좋은데, 성까지 붙여서 부를 때면, 영락없이 '제대로 해라' 하는 훈시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나는 '제대로'이다.
내가 사는 집은 제씨 아저씨 집 앞의 커다란 나무 옆이다. 커다란 나무는 잎을 하나도 매달지 않은 채 옆으로 누워 있는 커다란 통나무다. 거기다 못을 박고 내 목을 채운 개줄을 연결해 놓았다. 나에게 아침 저녁으로 밥을 주는 이 곳을 떠날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내 행동 반경이 개줄 길이 이상 넘어서지 못하도록 내 목에는 언제나 개줄이 달려 있다. 주인 아저씨는 사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를 그냥 풀어놓으면 나쁜 사람들이 잡아가거나 해코지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를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 이 생각은 목에 아무 것도 매달지 않은 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동네 개한테 주워 들은 이야기이다. 나는 사실 그 말을 들었을 때 크게 신뢰하지는 않았었다. - 이제 1년을 지내고 보니 그 말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1.
나는 소위 사람들이 똥개라고 부르는 잡종개다. 내가 싼 오줌이나 똥을 다시 먹으려고 하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한마디씩 한다.
"에그, 더러워라."
"대로야, 그만. 그건 먹는 게 아냐."
"그러니까 똥개지. 놔 둬."
뭐 대충 이런 식인데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발을 들어 내가 먹으려는 단백질이 아직 남아 있는 나의 음식들을 먹지 못하도록 방해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아직, 자기가 눈 오줌으로 자신의 질병을 치료하는 요로법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내가 싼 똥이나 오줌에는 아직도 내가 소화해야 할 많은 영양분들이 남아 있는 것인데, 주인이 준 밥이 오래 되어 쉬었거나, 맨 밥이어서 맛이 없을 때면 나는 내 흔적이 남아 있는 그 놈을 열심히 먹곤 한다.
하루는 루피가 다가왔다.
"안녕?"
나는 늘 인사성이 밝다. 루피는 - 전에 있던 집 주인이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 종종 내 집에 들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오늘도 내 밥그릇을 보며 한마디 한다.
"어떻게 맨날 이렇게 맛없는 것만 먹고 사니?"
"이게 어때서?"
"요 앞에 골목길에 가면 통닭집이 있는데, 거기에는 쓰레기통만 뒤져도 닭살이 붙어 있는 뼈다귀가 수북하다구."
나도 닭이 맛있는 건 알지만, 그건 주인이 통닭을 시켜 먹고 나에게 조금 남겨줄 때만 맛볼 수 있는 특식이었다.
"참, 대로야. 너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니?"
"글쎄. 사람들이 나보고 한 살 됐다고 그러던데?"
"그럼, 너 이제부터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잘 들어야 해. 그리고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나한테 말해."
"그게 무슨 말이야?"
"사람들이 너같은 똥개를 키우는 목적은 다른 게 없어. 나중에 너를 잡아 먹으려는 거야."
나는 두 눈이 동그래졌다. 네 발로 털을 후드득 털어내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루피의 말을 들은 뒤로는 내 앞에 서서 커피를 마시며 얘기하는 사람들 이야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야, 요 녀석. 이제 살이 피둥피둥 올랐네."
"그러게요. 제 집사님이 아직 말을 안 하네. 한 살 넘어가면 고기가 질겨져서 맛이 없는데."
"제 집사님한테 잘 말해 보세요. 이번 여름에 우리 몸보신 한번 합시다."
나는 안 듣는 척하면서 귀를 팔랑거리며 모두 들었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이렇게 노골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다. 사람들의 눈에는 이제 더 이상 내가 개로 보이지 않고 음식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점점 밥맛을 잃고 시름시름 앓는 날이 많아졌다. 루피한테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나도 이제 조심해야 돼. 곧 초복이 다가오거든."
"초복이 뭐야?"
"사람들이 우리 개들을 잡아 먹는 날이지."
"뭐? 그런 날이 있어?"
"그래. 여름에는 개 잡아 먹는 날이 세 번이나 있어. 대부분의 동네 개들은 그 때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가서 사람들 식탁에 오르게 돼."
"말도 안 돼."
나는 강하게 부인했다.
"너도 이야기 들었잖아."
"그건 주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이야기야."
"네가 안 믿는 건 상관 없지만, 사람들은 종종 주인 몰래 잡아가기도 한단 말이야."
"그럼 어떻게 해야 되지?"
"달이 뜨지 않는 밤에 내가 다른 개들을 데리고 올 테니까 그 때 같이 탈출하자."
"탈출한다고?"
"그래. 동네 개 연합모임이 있어. 다같이 사는 길을 찾아야 해. 더 이상 사람들에게 잡혀 먹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구."
"하지만 주인이 슬퍼하잖아."
"네 주인도 분명히 너를 먹으려고 준비하고 있을 거야."
"아냐. 내 주인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냐."
"그럼, 네 마음대로 해."
"알았어. 내 이름이 대로야. 제대로. 그러니 내 마음대로, 제대로 할 거야."
나는 큰소리를 땅땅 쳤다. 그렇지만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초복이 점점 가까워져 왔다. 사람들은 나를 보는 시선을 조금씩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었고 나는 더욱 초라해져갔다. 한번은 제씨 아저씨가 밥을 주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말을 걸었다.
"제 집사님. 요놈 언제 잡을 거요?"
"예? 그게 무슨?"
"곧 초복인데 그 때 먹으려고 사온 거 아니요?"
"하하. 김 집사님. 우리 대로는 내 새낍니다. 제 아들과 마찬가지란 거 아직 모르셨나요?"
"에이. 그럼 괜히 지금까지 헛물켜고 있었구만. 하하. 그럼 아들 잘 키워보쇼."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아저씨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성을 붙여 준 것이었구나. 그날 이후 나는 다시 열심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주인 아저씨는 개를 훔쳐가는 사람이 있다면서 여름철 기간 내내 나를 집 안에 들여 놓으셨다. 덥기도 했지만 잡혀 죽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어서 나는 용케 여름을 견뎌냈다. 여름 이후 루피는 내게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어른들이나 덩치가 큰 개가 아니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동네 꼬마아이들이 가장 무섭다. 내가 있는 곳이 사방팔방 뚫린 곳이고 학교로 가는 길목이다보니 하루에도 수십 명의 아이들이 나를 거쳐 자기 집으로 가거나 학교로 간다. 그러다보니 나는 무방비로 아이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셈이었다. 이들 중에는 착한 아이들도 있고 못된 아이들도 있는데, 나는 도무지 누가 착한 아이들이고 나쁜 아이들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과자를 던져주는 아이들이 참 착한 아이들인 줄 알았는데, 어떤 아이들은 자기가 던져 준 과자를 먹지 않으면 막 화를 내며 발로 나를 찼다. 그런 과자들은 너무 짜거나 심심해서 맛이 없는 것이거나 향이 너무 지독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때로는 이빨에 쩍쩍 달라붙어 나를 고생하게 만드는 엿같은 것들도 그러했다.
그래도 많은 아이들은 자기들의 소중한 간식들을 내게 나누어 주었다. 대부분 아이들은 서너 명씩 뭉쳐서 다녔는데, 유난히 혼자 오는 아이 하나가 내 관심을 끌었다. 그는 내게 과자도 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과자도 주지 않으면서 하루에 두 번 이상 내게 오는 그 꼬마아이가 싫었지만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그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종종 주위를 살펴본 다음 내 앞에 떨어진 과자를 주어 후후 불고는 자기 입에 넣었다. 나는 속으로 나보다 더 배고픈 아이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가 올 시간이 되면 일부러 과자를 먹지 않고 남겨 둘 때도 있었다.
"너는 이 과자 싫어?"
꼬마 아이가 내게 물었다. 지금까지 주인 아저씨말고는 나에게 직접 다정스럽게 말을 걸어 준 사람이 없었다. 나는 기분이 좋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꼬마 아이 주위를 맴돌았다.
"너도 늘 혼자구나. 나도 집에 가면 언제나 혼자야."
나는 꼬마 아이랑 서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하루는 주인 아저씨가 내 집 주위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데 그 꼬마 아이가 다가왔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 소망이구나. 그래, 부모님은 아직 많이 아프시니?"
"예."
"언제 퇴원하신대?"
"사실은, 병원비가 없어서 퇴원을 못하고 계셔요."
"그렇구나. 밥은 제 때 챙겨 먹고 있니?"
"할머니가 밤 되면 오셔요."
"그래. 부모님 아프다고 용기 잃지 말고 학교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예."
주인 아저씨는 소망이의 머리를 툭툭 흔들어 주었다. 소망이라는 꼬마 아이도 아저씨의 관심이 고마운지 배시시 웃었다.
"참, 아저씨. 대로는 무얼 좋아해요?"
"대로? 음. 다 좋아하지만 닭고기를 좋아한단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아직 맘 놓고 먹을 만큼 주질 못해서 늘 미안하지. 뭐. 하하. 대로랑 친하게 놀다가 가거라."
"예."
소망이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 날 악명 높은 아이들 세 명이 다가왔다. 초등학교 안에서도 악명 높기로 유명한 기환이, 응수, 철호였다. 다른 아이들은 나랑 놀다가도 이들만 다가오면 슬금슬금 꽁지를 뺐다. 이들은 틈만 나면 나를 괴롭혔다. 서로 괴롭히기 시합을 하면서 즐거워하였다. 내가 아무리 화가 나서 으르렁거려도 셋은 개줄이 나를 꽉 붙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내게 물리지 않도록 기다란 나무 꼬챙이를 가지고 나를 찔러 대었다. 회초리처럼 내 등짝을 마구 때릴 때도 있었다. 내 비명소리를 듣고 주인 아저씨가 나오면 아이들은 우루루 도망가기만 하면 되었다. 오늘 주인 아저씨가 멀리 지방으로 간 것을 아는지 아이들은 내 앞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한참을 그렇게 낑낑거리며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였다.
"괴롭히지 마!"
멀리서 소망이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아이들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 보았다. 그러나 소리치는 아이가 자기들보다 더 작고 꾀죄죄한 아이인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소망이를 둘러쌌다.
"너는 뭐야?"
셋 중에서 중간에 있던 험악하게 생긴 응수라는 아이가 눈꼬리를 치켜 들었다.
"나, 나는 대로 친구야."
소망이는 약간 주눅이 든 듯 했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간이 콩알만해져서 이들을 쳐다 보았다. 조금 전의 억울함은 다 사라지고 소망이가 다치지 않기만을 바랐다.
"니가 이 개 주인이야?"
"주인은 아니지만 친구야."
소망이는 겁도 안 나는지 아이들에게 지지 않고 맞섰다. 깡패 같은 아이들 앞에서, 나를 친구라고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다니. 나는 감동이 바람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정말 개로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한테 친구가 어디 있어. 좋은 말할 때 꺼져."
응수가 주먹을 위로 들어 올렸다. 나는 열심히 컹컹 짖어 대었지만 아무런 효력도 없었다. 그 때였다.
"야, 쟤 손 대지 마. 더러운 애야. 전에 여기서 먹을 거 주워 먹는 거 봤어. 거지 같은 애야."
왼쪽에 파란 스웨터를 입은 기환이가 응수 손을 잡아 내렸다. 응수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돌아 보았다.
"맞아. 쟤 거지야. 학교에서도 소문 났어. 맨날 땅에 떨어진 거 주워 먹는 애야."
오른쪽에 있던 철호도 맞장구를 쳤다.
"정말이야? 에퉤퉤. 더러운 자식. 그러니까 똥개하고 친구나 하지. 가자. 거지 같은 애는 때릴 필요도 없어. 우리 손만 더러워 져."
응수 따라 다른 아이들은 재수 없다며 침을 뱉었다. 그러고는 내게 관심이 시들해졌는지 이내 떠나갔다. 소망이가 나를 끌어 안았다. 나는 목이 조여 갑갑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소망이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닭다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거 먹어."
나는 차마 덥석 물어 내 입에 집어 넣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망이도 얼마나 먹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통닭 뒷다리에서는 아직도 구수한 향이 솔솔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를 뱅뱅 돌며 꼬리만 흔들 뿐 닭고기를 먹지 않았다. 소망이는 그런 내 마음을 눈치 채었는지, 흙이 묻어 있는 부분을 훅훅 털더니 한 입 먼저 베어 물었다.
"자, 이제 됐지? 나도 먹었으니까 너도 먹어. 통닭집 앞에서 어떤 아이가 땅에 떨어뜨려서 그냥 버리고 간 거야. 네 생각이 나서 주워 왔어."
나는 그제서야 소망이가 건네는 통닭을 받아 먹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맛있는 닭고기는 정말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다. 덧붙이는 글 | 단독 게재입니다. 본인의 홈페이지 작품 게시판에 올려져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시인, 아동문학가, 독서운동가>
좋은 글을 통해 이 세상을 좀더 따뜻하게 만드는 데 동참하고 싶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