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궁' 판사님, 전두환을 지지하십니까?

'5·18은 공산주의 혁명' 주장 책 배포한 박홍우 법원장의 어이없는 처신

등록 2012.09.25 14:16수정 2012.09.2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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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겨레> 신문을 읽다가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박홍우 서울행정법원장. 최근 소식을 들을 수 있어서 반갑기조차 했다. 그는 한때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하였던 김명호 교수의 이른바 '석궁 사건'의 피해자였고, 그 재판 과정이 영화 <부러진 화살>로 2012년 1월 18일 개봉되어 342만명이나 지켜봤다. 

바로 그 분이 의정부지방법원장 재직 시절 판사들에게 '5·18 민주화운동은 공산주의 혁명'이라고 주장하는 조문숙씨의 <헌법파괴 세력> 등을 배포하여 말썽이 일어난 모양이다.

전두환 복권을 주장하는 조문숙의 저서들

조문숙씨는 그 동안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복권을 위해 여러 가지 책을 썼던 사람이다. <전두환 재심 프로젝트><5·18과 헌재 사망론><전두환 VS 광주혁명><전두환 특별법에 국회는 고민한다> 등의 책을 저술하면서 전두환을 영웅으로 묘사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조문숙씨의 책 중 박홍우 판사는 2가지 책을 판사들에게 배포했다. 작년 10월에는 <5·18과 헌재사망론>을, 그리고 올해 3월엔 <헌법파괴세력>이라는 책을 돌렸다. 두 책의 핵심적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5·18 광주민중항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헌법파괴 세력이었고, 이를 진압한 전두환은 헌법수호 세력이었는데, 헌법 수호세력을 처벌하도록 한 악법인 5·18특별법은 폐지되어야 하고, 전두환은 복권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조문숙씨가 특히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은 1995년에 제정된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다. 이 법은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파괴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정지 등"을 주되게 담고 있다. 12·12쿠데타와 5·18 광주민중 항쟁 진압에 대해 공소시효를 정지시킴으로써 전두환, 노태우 등을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조문숙씨는 집요하게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전두환의 복권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문숙씨는 가히 혁명적인 주장을 한다. "5·18 민주화운동은 공산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혁명"이라고 한 것이다.

중학교 때 경험한 5·18


a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모습.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모습. ⓒ 5.18기념재단


필자는 광주민중항쟁을 직접 경험했다. 그리고 박홍우 판사의 이른바 '석궁사건'의 피고인 김명호를 변호한 사람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 비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필자는 1980년 5월 18일 당시 광주 인접 고을인 전라남도 화순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아주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 해 5월 21일은 석가탄신일이었다. 이날 학교에서 야구 시합을 하고 있는데 동네아저씨들이 "난리가 났으니 빨리 집에 가라"고 했다. 학교에서 보이는 도로로 군용트럭들이 질주하고 있었는데, 그 트럭에는 군인들이 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젊은 청년들이 가득타고 있었다. 공포감에 사로 잡혀 집에 왔다가 너무 궁금해 시내로 나갔다.


화순경찰서는 모두 파괴되어 있었고 무기고는 열려 있었으나, 경찰들은 아무도 없었다. 군용 지프차와 군용트럭들이 끊임없이 굉음을 내면서 화순탄광으로 가고 있었다. 트럭 옆에는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라고 구호가 적혀 있었다.

내 아버지는 화순탄광에서 십장 노릇을 하고 계셨다. 그날 아버지가 밤늦게 들어오셨다. 탄광에서 집까지 걸어오셨다고 했다. 청년들이 와서 다이너마이트와 소총을 가져갔다고 했다. 읍내에 선 군용트럭은 청년들에게 항쟁에 참여할 것을 선동했고, 청년들은 트럭에 올라탔다. 올라타는 청년들에게 그 어미와 아비들은 울부짖으면서 타지 말라고 했다.

필자는 그 청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광주는 봉쇄됐다. 광주로 통하는 화순 너릿재는 계엄군에 의해 봉쇄되고, 광주로 올라가는 딸기와 우유 등 온갖 농산물과 축산물들은 봉쇄를 넘지 못해 길거리에 넘쳐났다. 학교는 쉬었고, 헬기들이 연일 뜨면서 삐라를 뿌려댔다. "광주는 북한 간첩들이 점령, 폭동, 집에서 나오지 마라"는 내용이 주된 것이었다.

소문은 흉흉했다. '계엄군이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 시민들이 총과 대검으로 무차별적으로 살해되고 있다'는 등등의 이야기가 돌았다. 믿고 싶지 않았다. 북한 간첩들의 소행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한달 뒤 학교가 다시 열리고 우리는 숨겨진 총과 무기류를 찾기 위해 연일 화순 너릿재 근방의 산을 수색하는데 동원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우리는 그 일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해서도 선생님도 우리도 그 누구도 그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 광주민중항쟁의 참상과 진실을 알고서는 전두환 정권과 맞서지 않을 수 없었다. 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 정권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광주민중항쟁은 내 삶의 원동력이다.

결국 대법원은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5·18 진압은 내란 목적 살인행위였다"고 최종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전두환은 아직도 잘 살고 있다. 29만원 가지고 말이다.

박홍우 법원장의 황당한 해명

a  <부러진화살> 포스터.

<부러진화살> 포스터. ⓒ 아우라픽쳐스

그런 전두환을 복권시키기 위한 책을 현직 법원장이 판사들에게 배포를 해놓고는 "무슨 책인지 잘 모른 채 배포했다"고 발뺌을 한다. 도대체 이 말을 믿으라는 것인가. 일반 평범한 사람들도 책 선물할 때는 고르고 골라서 선물한다.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책을 선물하기도 하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책을 골라서 선물하기도 한다. 사회통념상 법원장이 그런 책을 배포하였다면 그것은 자신이 그 책 내용에 동의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판사들이 이를 참조할 것을 주문한 행위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박홍우 판사는 이른바 '석궁사건' 당시에도 자신이 피해를 당한 상황을 수시로 말을 바꾸어 크게 문제가 되었다. 그는 최초의 진술에서는 "계단에서 1.5m 지점에서 조준해서 발사된 화살에 맞았다"고 하다가 "언제 어디에서 쏘았는지 전혀 기억이 없지만 하여간 맞았다"라고 진술을 번복한 바 있다.

진술번복 동기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이 이런 저런 말을 해서 그렇게 하였다고 하였으나 그 사람들을 모두 불러들여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지 물어 보았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증언들이 나왔다. 그래서 대질 신문을 요청하였으나 법원은 이러한 증거 신청을 모두 기각한 채 김명호 교수에게 유죄를 인정했다.

필자는 지금까지도 박홍우 판사는 화살을 맞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다. 5·18 관련단체들은 이 사건 이후 성명서를 내어 박홍우 판사의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그분의 이러한 행위는 법관의 독립성을 정하고 있는 헌법규정을 위반한 행위이기 때문에 퇴진 주장은 너무나 정당한 것이다.

신영철 판사는 대법관이 되기 전에 2008년 촛불집회 사건과 관련해서 담당 판사들의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여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고서도 대법관이 되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사법사상 사법살인 다음가는 치욕스러운 사건이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행위가 사법부 내부에서 끊이지 않는 것은 사법부에 대해 국민들의 감시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통제받을 수 있는 장치가 무엇인지를 심도있게 고민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5.18 민주화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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