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벼락 같은 아버지의 죽음... 난 깨달았다

[나의 아버지] 있을 때 잘해, 그게 자연의 이치야

등록 2013.06.02 16:20수정 2013.06.0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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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정원에서 자연의 흐름을 알다


 산딸나무 꽃
산딸나무 꽃최오균

도시를 벗어나 숲길에 다다르니 보드라운 연둣빛의 자연이 짙푸른 색으로 변해가는 게 보인다. 얼마 전까지 잔뜩 움츠리고 있던 꽃망울도 활짝 폈다. 봄을 넘어 여름으로 향하고 있음이다. 이렇게 자연은 달력을 보지 않고도 시간의 흐름을 알려준다.

그러고 보니 내 옆엔 항상 자연이 있었고 집 앞에 핀 꽃과 나뭇잎의 색상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곤 했다. 생전에 나무와 꽃가꾸기를 좋아하셨던 아버지 덕에 우리 집에는 아주 작은 정원이 있다. 집 울타리주변을 이용한 화단이라 길이는 길쭉하지만 폭이 한두 뼘 남짓으로 좁다. 그래도 아버지는 지형을 알뜰하게 활용해 내셨다. 폭이 좁은 땅을 시작으로 오죽(烏竹)을 주욱 심어 보기 싫은 담장을 가리고 그 옆으로 녹나무와 구상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들고 두 그루의 감나무로 마무리 했다.

나무를 심을 수 없는 공간에는 각종 화분들이 놓인다. 대문 앞 커다란 화분에는 철쭉을 현관 입구 계단 아래에는 장미, 백합, 동백, 천리향, 용설란 등의 화분들로 웬만한 화단 못지않게 가꿔놓았다. 그뿐인가? 방 창가며 현관입구, 마루에는 난초 화분들이 나란히 줄 맞춰있다. 집 구석구석 빈틈이라곤 찾아 볼 수 없을 지경이다. 때문에 집 둘레의 통로를 지날 때면 옆으로 게걸음을 해야 하는 탓에 식구들은 종종 투덜거렸다. 

그래도 아버지의 화분은 자꾸만 늘어난다. 꼬박꼬박 물을 주시고 음식물을 발효해 거름을 만들어 묻어주는 정성 등으로 나무며 화초들이 잘 자란 탓에 분갈이를 해서 새끼치기를 한다. 사무실에서 키우다 시들거려 가져 온 화초들은 아버지의 손길이 닿으면 어김없이 되살아나곤 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 오면 죽어가던 식물도 되살아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파되어 시들거리는 화분만 생기면 우리 집으로 직행이다. 그리곤 아예 터를 잡고 자리를 차지해갔다.  

이렇게 식물 가꾸기의 달인이 되어가던 아버지는 마당을 다 채우시고 난 어느 날부터인가 대문 위의 여백에 눈독을 들이셨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 위 두 평 남짓의 공간에 흙을 담은 스티로폼 상자를 붙여 작은 텃밭을 만들어 냈다. 아침, 저녁 그 위에 올라가서는 물 주고 잡초 뽑고 지지대를 끼워 세워주고 여름 햇살에 상하지 말라고 그늘 막까지 씌워준 덕에 상추, 부추, 고추, 피망, 방울토마토 등 가지가지 채소가 이 공간에서 탄생했다.  


그렇게 우리는 몇 십년동안 아버지의 정원과 함께했다. 스치듯 지나갔지만, 추운 겨울 눈보라를 이겨낸 목초들에서 봄의 햇살을 받으며 새싹이 움트는 걸 보았고, 따뜻한 날의 꽃과 열매를 보며 풍족해 했고 가을의 단풍에서 세월의 흘러감을 느꼈다. 아버지의 정원을 통해 자연스레 자연의 흐름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날벼락 같은 아버지의 죽음... 난 깨달았다 


 황매산 철쭉.
황매산 철쭉.최종수

그런데 두 해 전 가을, 아버지에게 뜻밖의 병이 찾아왔다.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병마와 싸우며 겨울을 보냈다. 그리고 너무도 화창한 봄날에 눈을 감으셨다. 갑자기 찾아온 날벼락 같은 일로 멍하니 정신이 없던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작년 이즈음이다. 여름의 초입에 서있었지만 우리 집 정원은 우중충했다.

그러고 보니 봄마다 대문 앞을 화사하게 수놓던 철쭉도 거의 피지 않고 화초들도 생기가 없다. 겨울을 지나며 추위를 이기지 못한 것들은 더러 죽어있었다. 꽃들도 봉우리를 펴보지 못하고 초라하니 시들어 있다. 나만 아버지를 잃은 게 아니라 하루도 빠짐없이 아버지의 손길을 받던 식물들도 아버지를 잃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참 부지런히도 이것들을 돌봤다. 물과 거름을 주는 것은 기본이고 하루에 두세 번 주변에 나뭇잎이 떨어지면 쓸어주고 잡초를 뽑고, 여름이면 강한 뙤약볕을 가려주고 겨울이면 춥지 말라고 포대를 감싸주고 난초 화분들은 보일러실이나 창고에 넣었다 뺐다하며 온도를 조절하는 등 아버지가 계실 때는 몰랐던 일들이다.

그러나 엄마도 나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생각만큼 마음 추스르는 게 쉽지 않았다. 아빠와 연상되는 모든 것들에서 울컥거리던 때다. 집을 이사할 생각까지 했다. 감정도 힘들고 그 많은 화분들도 버거워 못나게도 그동안 아버지가 애지중지 키우던 화초들은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 다시 봄이 되었다. 아버지 1주기를 보내고 비가 왔다. 무심코 화단을 보니 기다란 오죽 옆으로 죽순들이 엄청 많다. 우후죽순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이걸 뽑아내지 않으며 화단을 다 덮고 이것들이 커서 담장을 무너뜨릴 것 같았다. 팔을 걷어붙이고 죽순을 뽑아냈다. 그리고 화분이며 나무며 얼기설기 제멋대로인 가지들을 정리하고 잡초를 뽑았다. 엄마도 화단을 돌보기 시작했다. 아빠를 보내고 슬픔에 자주 잠기셨던 엄마였지만 이를 악물고 극복해내시는 듯하다. 얼마 전에는 대문 위 텃밭에 고추를 심어야겠다며 묘종을 사와 심기도 했다. 이렇게 아빠의 화단을 돌보며 슬픔을 이겨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득 어릴 적 사진들이 떠올랐다. 꽃이 예쁘게 핀 아침이면 우리 형제는 눈을 채 뜨기도 전에 마당으로 나와 꽃앞에 서서 사진을 찍곤 했다. 그렇게 계절마다 찍은 사진을 모아보니 내가 커가는 키만큼 마당의 꽃들과 나무도 커가는 게 보였다. 차렷자세로 찍은 촌스런 사진이지만 그 시절의 추억을 담아낸 아버지의 아름다운 유품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정원과 내 지난날의 추억은 그렇게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그 분이 남기신 작은 정원에서 난 가장 평범하지만 우리가 잊기 쉬운 과오를 깨달았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해라. 그리고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작은 식물도 정성을 쏟은 만큼 결과가 나온다. 부모는 물론 배우자나 연인 그리고 자연에게조차 있을 때 잘해라. 그게 자연의 이치다.
덧붙이는 글 '나의 아버지' 응모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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