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나무 꽃
최오균
도시를 벗어나 숲길에 다다르니 보드라운 연둣빛의 자연이 짙푸른 색으로 변해가는 게 보인다. 얼마 전까지 잔뜩 움츠리고 있던 꽃망울도 활짝 폈다. 봄을 넘어 여름으로 향하고 있음이다. 이렇게 자연은 달력을 보지 않고도 시간의 흐름을 알려준다.
그러고 보니 내 옆엔 항상 자연이 있었고 집 앞에 핀 꽃과 나뭇잎의 색상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곤 했다. 생전에 나무와 꽃가꾸기를 좋아하셨던 아버지 덕에 우리 집에는 아주 작은 정원이 있다. 집 울타리주변을 이용한 화단이라 길이는 길쭉하지만 폭이 한두 뼘 남짓으로 좁다. 그래도 아버지는 지형을 알뜰하게 활용해 내셨다. 폭이 좁은 땅을 시작으로 오죽(烏竹)을 주욱 심어 보기 싫은 담장을 가리고 그 옆으로 녹나무와 구상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들고 두 그루의 감나무로 마무리 했다.
나무를 심을 수 없는 공간에는 각종 화분들이 놓인다. 대문 앞 커다란 화분에는 철쭉을 현관 입구 계단 아래에는 장미, 백합, 동백, 천리향, 용설란 등의 화분들로 웬만한 화단 못지않게 가꿔놓았다. 그뿐인가? 방 창가며 현관입구, 마루에는 난초 화분들이 나란히 줄 맞춰있다. 집 구석구석 빈틈이라곤 찾아 볼 수 없을 지경이다. 때문에 집 둘레의 통로를 지날 때면 옆으로 게걸음을 해야 하는 탓에 식구들은 종종 투덜거렸다.
그래도 아버지의 화분은 자꾸만 늘어난다. 꼬박꼬박 물을 주시고 음식물을 발효해 거름을 만들어 묻어주는 정성 등으로 나무며 화초들이 잘 자란 탓에 분갈이를 해서 새끼치기를 한다. 사무실에서 키우다 시들거려 가져 온 화초들은 아버지의 손길이 닿으면 어김없이 되살아나곤 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 오면 죽어가던 식물도 되살아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파되어 시들거리는 화분만 생기면 우리 집으로 직행이다. 그리곤 아예 터를 잡고 자리를 차지해갔다.
이렇게 식물 가꾸기의 달인이 되어가던 아버지는 마당을 다 채우시고 난 어느 날부터인가 대문 위의 여백에 눈독을 들이셨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 위 두 평 남짓의 공간에 흙을 담은 스티로폼 상자를 붙여 작은 텃밭을 만들어 냈다. 아침, 저녁 그 위에 올라가서는 물 주고 잡초 뽑고 지지대를 끼워 세워주고 여름 햇살에 상하지 말라고 그늘 막까지 씌워준 덕에 상추, 부추, 고추, 피망, 방울토마토 등 가지가지 채소가 이 공간에서 탄생했다.
그렇게 우리는 몇 십년동안 아버지의 정원과 함께했다. 스치듯 지나갔지만, 추운 겨울 눈보라를 이겨낸 목초들에서 봄의 햇살을 받으며 새싹이 움트는 걸 보았고, 따뜻한 날의 꽃과 열매를 보며 풍족해 했고 가을의 단풍에서 세월의 흘러감을 느꼈다. 아버지의 정원을 통해 자연스레 자연의 흐름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날벼락 같은 아버지의 죽음... 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