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님, 분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주장] 경남교육청의 적정규모 학교 육성 계획, 안타깝습니다②

등록 2013.07.19 13:37수정 2013.07.2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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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교육지원청의 두 번째 공문. 재수립 하였다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내용
거창교육지원청의 두 번째 공문. 재수립 하였다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내용송준섭

지난 12일, 거창교육지원청은 "적정 규모 학교 육성 추진 계획 알림"이라는 새로운 공문을 내놓습니다. 6월 24일 자로 나왔던 10쪽짜리 공문을 3쪽으로 줄여 보낸 것입니다. 내용을 보면 논란이 될 만한 학교별 추진 시기에 대한 명시나 추진 방법 등을 모두 빼고 목적, 근거, 그리고 기준, 계획의 4가지만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추진 계획의 한 칸에 이런 내용을 넣었습니다.

"학교 실정 및 학부모 의견을 수렴하여 추진"

이 공문을 받아 온 면 지역 학교 선생님들은 또다시 허탈했습니다. 6월 24일 자 공문에 있었던 매우 구체적인 부분만 빠졌을 뿐이지 기준과 대상 학교가 명시되어 있다는 것은 언제라도 분교장 개편이나 폐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5일이 되자 거창교육지원청 장학사를 통해서 간접적인 연락이 왔습니다. 지난 12일자 공문에 대해서 왜 반응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좋으면 좋다,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말을 해 달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공문은 오히려 논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었지만, 뜻을 밝혀주기 위해 다음 날 전교조 거창지회장 자격으로 거창교육지원청 교육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30분에 걸친 짧지 않은 통화를 줄여서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거창교육지원청의 육성 기준. 기준이 있다는 것은 언제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창교육지원청의 육성 기준. 기준이 있다는 것은 언제든 할 수 있다는 것이다.송준섭

교육장은 "공문을 다시 보냈고, 그만큼 했으면 교육청이 양보한 것이니 어서 펼침막을 내려달라"는 것이고. 저는 "그 공문은 앞으로도 분교장 개편 등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 1면 1학교를 보장하는 공문을 보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교육장님과 저의 대화는 그렇게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교육장님은 1면 1학교를 보장하실 수 있는 자리에 있는 분이 아니니까요. 참 놀라운 사실은, 이 전화 통화에서 교육장님의 본 모습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교육지원청 행정지원과장이 지난 11일 면담 전에 남하초등학교를 방문하여 분교장 개편을 위한 학부모 설문 지시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날 이에 관한 확인을 요구했습니다. 교육장은 "사실 까놓고 말해서 남하는 하려고 했지만 이번에 일이 이렇게 되어서 안 하기로 다했다"면서 "교장 선생님께서도 반대하시고 해서 안 하기로 다 이야기되었다"


놀랄 일이지요. 지난 11일의 면담 자리에서는 부인했던 이야기입니다. 더 재밌는 것은 "다 이야기되었다"고 말한 부분입니다. 남하초등학교에 안 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는 주장이지만, 전화를 끊고 남하초등학교에 확인해 보니 전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17일이 되어서야 남하초등학교에 추진 안 한다는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급하면 대충 둘러대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 모습이 하나 둘씩 보이는데 어찌 펼침막을 거둘 수 있겠습니까?

지난 15일. 분교장 개편 대상 지역 학교 관계자들과 지역의 부모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가북, 주상, 남하와 같은 대상 지역은 물론이고 남상, 북상과 같은 다른 면 지역 학교에서도 오셨습니다. 6월 24 일자 공문 이후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1면 1학교 살리기 거창군 대책위원회'와 지역별 대책위원회를 꾸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18일에 거창에 오는 경상남도교육청 고영진 교육감에게 이 문제를 묻기로 하였습니다.


 도교육감 방문에 맞춰 1면 1교 정책을 보장하라며 시위 중인 부모님
도교육감 방문에 맞춰 1면 1교 정책을 보장하라며 시위 중인 부모님최성식

농사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분들이지만 아이들의 학교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늦은 밤에도 읍에까지 모여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가북초등학교 부모님은 가북중학교가 폐교된 것에 대한 아픔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는 꼭 지키겠다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18일에 도교육감을 만나기 위해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지역 교육지원청은 계속해서 '이제 다 해결되었다'는 말을 퍼뜨리고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교장 선생님들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같은 말만을 전달했습니다. 지역의 학교를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할 교장 선생님들은 그렇게 책임을 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많은 교장 선생님들이 면 지역 학교 교장은 잠시 거쳐 가는 곳으로 생각하고 늘 읍내에 있는 큰 학교로 옮겨서 거기서 퇴임을 바라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니 이번 일에 왜 침묵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누구 말처럼 한 학교의 교장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신 나고 교사들이 잘 가르칠 수 있고 학부모와 지역 주민이 좋아하는 곳으로 만드는 일은 교장 선생님께서 해야 할 일이지요. 심지어 어느 학교에서는 학교를 지키겠다는 부모님과 교사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있습니다.

 "적정 규모 학교 정책을 폐지하라" 도교육감을 향한 시위
"적정 규모 학교 정책을 폐지하라" 도교육감을 향한 시위최성식

18일. '공감 토크'라는 이름으로 거창, 산청, 함양, 합천 지역 교원, 학부모, 행정직을 모아놓고 고영진 도교육감이 즉문즉답을 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왜 이런 행사가 갑자기 잡혔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책위 입장에서는 참 좋은 기회입니다. 멀리 창원까지 가지 않고도 도교육감을 만날 기회이니까요.

1시 40분경. 날마다 이어지는 불볕더위는 이날도 같습니다. 10여 명의 부모님께서 '도교육청은 1면 1학교를 보장하라' 는 내용의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서 있는 자리에 도교육감이 나타났습니다. 마침 그 앞에 서 있던 가북초등학교 학부모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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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와 대화하는 교육감 가북초 학부모와 1면 1학교 논쟁 중인 고영진 교육감 ⓒ 최성식


"여기 왜 있는 거죠."
"1면 1학교를 지키기 위해 왔습니다."
"누가 없앤답니까?'
"거창교육지원청에서 그런 공문을 내렸습니다."
"1면 1학교 지킵니다."
"분교장은 안 됩니다. 본교입니다."
"분교장은 해야지."

도교육감은 공감 토크 중의 질문 답변 시간에도 역시 같은 말을 했습니다. 주민이 원하면 1면 1학교는 하지만 분교장도 1학교다. 그리고 주민이 원하면 폐교도 해준다. 분교장이 1학교가 된다는 것은 처음 듣는 말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본교'가 있고 거기에 딸려서 있는 분교는 '하나의 학교'로 대우하지 않습니다. 분교장이 되면 행정, 재정권이 모두 본교에 있고, 분교장에서는 오로지 수업만 이루어질 뿐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폐교가 가능한 곳입니다. 그런 분교장을 1면 1학교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고영진 도교육감은 공감 토크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서도 여전히 같은 말을 합니다. 1면 1학교는 하겠지만 분교장은 해야 한다. 그렇게 도교육감 방문에 따른 시위는 마감되었습니다. 크게 얻은 것은 없었지만, 도교육감의 분명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 언론사가 취재해 준 것도 고마운 일입니다.

도교육감 덕분에 대책위원회의 이름이 고쳐졌습니다. 1면 1학교가 아니라 1면 1본교! 세상에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니. 1면 1학교라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는 도교육감의 입장 앞에서 대책위원회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다시 우리가 갈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내년의 지방 선거를 앞두고 쉽게 분교장 개편 등을 추진하지는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다시 추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적정 규모 학교 육성'이라는 계획이 폐지되고, 추진단이 해체되어야만 이 문제가 끝날 것입니다.

그리고 단지 학교를 지키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도교육청 등의 그런 분교장 개편, 폐교 운운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학교를 잘 키워서 가꿔가는 일에 힘을 쏟기로 하였습니다.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 반대에만 힘을 모으고 평상시에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반성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존재만으로도 존재할 이유가 있다. 농산어촌 소규모 학교"

전주교대 이경한 교수님께서 위의 말을 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면에 있는 작은 학교에 가 보십시오. 말처럼 건물도 작고, 운동장도 작지만, 그 어느 곳보다 큰 아름드리나무와 넓은 하늘을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선생님께서 전교생의 이름은 물론이고 집안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아서 늘 관심 있게 봐주는 곳입니다. 큰 학교에서는 엄두도 못 내는 가정 방문을 통해 부모님과 소통할 수 있는 학교입니다.

도교육감은 학생 수가 줄면 분교장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한 명이 있더라도 배우겠다는 아이가 있다면 그곳에는 제대로 된 학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학교가 있다면 그 학교에는 계속 아이들이 들어갑니다. 1면 1본교 살리고, 지키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일이 진행되는 대로 내용을 이어서 올려보겠습니다.
#거창 #작은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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