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축제, 술 때문에 '악몽'의 시간이 된다

축제기간 음주 의한 사건·사고 곳곳서 '되풀이'

등록 2014.09.19 15:30수정 2014.09.1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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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사람도 때론 '주폭' 으로 ... 예방대책 시급

청명한 하늘 아래 가을 바람이 솔솔 부는 요즘, 대학가는 들떠 있다. 바야흐로 대학 축제 시즌이다. 축제 기간 각종 공연이나 전시, 체험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학내 구성원들이 함께 어울려 낭만과 젊음을 불사른다. 유명 연예인들을 초청, 공연할 때는 특히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한다. 축제는 개강의 우울함을 달래고, 중간고사를 앞두고 학업 열의를 다질 즐거운 기회라고 학생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축제의 화려함 뒤로 어두운 그림자가 자리 잡곤 한다. 기물 파손, 폭력, 성추행 등 각종 사고로 얼룩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축제의 악몽과 상처의 시발점은 대부분 무리한 음주다. 혈기왕성한 학생들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학업 스트레스를 잊으려 술을 마시게 되면 점점 주체하기가 어려워진다. 이윽고 술이 사람을 마시는 지경에 이르고, 그들은 '걸어 다니는(기어 다니는) 시한폭탄'이 된다.

대전의 K대 여대생 이아무개씨는 지난해 축제 때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학내 여기저기 축제 준비에 한창인 광경만 봐도 괴로울 정도다. 이미 학회장에게 이번 축제 불참 의사를 밝혔다. 이씨의 '축제 혐오증'은 지난해 이맘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느 신입생과 마찬가지로 이씨도 첫 대학 축제를 설렘 속에 즐겼다. 신나는 공연과 놀 거리, 먹거리 모두 그에게는 '신세계'였다. 특유의 왁자지껄한 축제 분위기에 학업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최근 모 대학의 축제 도중 시비가 붙어 대치 중인 학생들. '주폭' 대학생들의 횡포를 막는 예방 대책이 요구된다.
최근 모 대학의 축제 도중 시비가 붙어 대치 중인 학생들. '주폭' 대학생들의 횡포를 막는 예방 대책이 요구된다.남궁영진

축제의 즐거움을 만끽하던 이씨의 기분이 곤두박질친 건 둘째 날 학과 주점에서였다. 친구들과 가진 술자리는 즐거운 담소와 게임으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하지만 별안간 나타난 한 괴짜 선배의 등장으로 이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선배는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눈은 풀려있었고, 매스꺼운 술 냄새를 풍기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댔다.

더욱 가관이었던 것은 이씨와 친구들에게 성희롱을 넘나드는 질문을 해댔고, 일그러지는 친구의 표정을 보고는 욕설까지 퍼부었다. 냉랭해진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그의 음담패설은 그칠 줄 몰랐다. 심지어 은근한 스킨십까지 시도하며 급기야 이씨의 허리에 손을 둘렀고, 참지 못한 이씨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한참을 울었다. 다음날 그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는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며 둘러댔다.


축제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은 교수도 갖고 있다. 대전의 B대 정아무개 교수는 평소 아끼던 애제자가 있었다. 제자는 학업 성적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매사 솔선수범하며 후배들을 챙기는 모습이 나무랄 데 없었다. 교수들에게도 싹싹했던 그는 칭찬을 한몸에 받았다. 정 교수는 제자를 대학원에 진학시켜 열심히 지도할 생각이었다. 축제 전날만 해도 학과에서 마련한 주점에 들러 달라는 그의 공손한 태도에 흐뭇한 미소를 짓던 정 교수였다.

하지만, 축제 당일 저녁, 학생들을 격려하고자 주점을 찾은 정 교수는 믿지 못할 광경을 보게 된다. 그토록 보기 좋았던 제자가 고주망태가 돼 후배들을 위협하고 있었던 것.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기물을 파손하는 제자의 모습은 TV에서나 보던 '주폭'(酒暴)의 모습이었다. 주변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경찰이 도착해서야 소동은 일단락됐다. 정 교수는 학생들을 20년 가까이 지도했지만 그 때 느낀 배신감은 처음이었다고 몸서리친다.


이처럼 축제 때면 으레 등장하는 '주폭' 때문에 많은 이들은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K대 07학번 최아무개씨는 "입학 이래 여러 번 학교 축제에 참여했지만 7년 전이나 지금이나 술에 의한 사고는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면서 "마지막 축제를 앞두고 기대되지만, 한편으로는 '술주정뱅이'가 어디서 얼마나 나타날지 걱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B대 14학번 오아무개씨도 "학기 중에도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학생들을 종종 봤는데 축제 기간에는 오죽하겠느냐"면서 "술이 문제"라고 말했다.

대학 축제 때의 무분별한 음주는 캠퍼스 밖 사고로 비화될 공산마저 크다. 음주 후 긴장하지 않으면 일반인에게 피해가 가기 십상이다.

지난해 수도권의 모 대학은 연구원과 학생도 모자라 교수까지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돼 빈축을 산 바 있다. 적발 당시 이들은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가 나타나, 단속이 실시되지 않았다면 큰 인명사고로 이어질 뻔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 학교는 몇 해 전 음주사망사고가 일어나 학생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까지 충격을 받은 바 있다.

지난 6월 보건당국이 대학 등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거나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민건강증진법'을 재추진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조심하며 술 마시는 선량한 음주자까지 막아야겠느냐"는 항의와 "성숙한 대학 문화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등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학내 음주 제한 여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음주로 인한 사건·사고의 예방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술을 마셔야만 날개를 펴는 '주폭'은 학업에 정진하는 사람, 평소엔 멀쩡한 사람 등 예상치 못한 이들도 될 수 있다"면서 "나 자신이 조폭 뺨치는 무시무시한 주폭이 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 축제 #사건·사고 #음주 #주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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