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푼 마음을 안고 탄 비행기, 하지만 '호갱' 여행의 시작이었다.
픽사베이
여행은 준비가 반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부모님과 떠나는 패키지여행은 준비가 반을 넘어 90%다. 검색에만 며칠을 투자했는지 모른다. 여행사별로 그리고 상품별로 비교·분석했다. 지역 커뮤니티 카페 정보를 찾고, 친구에게 물어보며 불확실한 정보들도 마구 끌어모았다. 친구와 해외여행을 갔을 때, 인천공항 탑승동에 들어서서야 여행지 정보를 깔짝거리며 검색했던 지난날의 여유가 스쳐 지나갔다.
패키지여행을 가면 온갖 옵션과 팁, 쇼핑 압박에 파김치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차라 자연스럽게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노옵션, 노팁' 상품 쪽으로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노옵션이라 함은 여행 옵션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옵션이 가격에 포함된 상품이라는 뜻이다. 여행지와 코스가 비슷한 특가 패키지 옵션 상품과 비교했을 때(가이드팁과 옵션을 모두 선택했을 때를 기준으로), 노옵션 상품이 몇 만 원 가량 비싼 편이다. 몇 만 원을 내고 불편함과 바가지요금을 피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최종적으로 특가 패키지보다 두 배가량 비싼 노옵션 패키지를 온라인으로 구매했다. 단체 비자를 받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여권을 찍어 팩스 발송 애플리케이션으로 사본을 송부했다. 다음날, 여권이 접수됐다는 문자가 왔다. 속전속결. 출국 며칠 전 해당 여행사 담당자로부터 여행지 정보 제공을 위한 전화를 받았다. 그전까지 단 한 번도 여행사와 통화할 만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여행사 측 확인 전화는 매우 형식적이었다. '여행사들도 절차를 간소화하고 인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하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담당자는 미리 써 놓은 듯한 몇 줄의 정보를 읽기 시작했다. 여행사 담당자가 알려준 날씨에 맞게 옷을 챙겼다. 혹시 쌀쌀할지 몰라 라이트 패딩도 준비했다. 막상 여행지에 도착해 보니 꽤 두툼한 가을 코트와 패딩을 입었는데도 정말 추웠다.
몇 가지 유의사항을 들은 후, 전화를 끊으려는 담당자에게 여비는 어느 정도 챙겨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간식용'으로 3만 원 정도만 준비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과적으로 간식비는커녕 팁으로만 3만 원을 지불해야 했다.
해외여행의 시작, 인터넷 면세점 쇼핑으로 진을 빼다개인적으로 해외여행과 출장을 목적으로 총 5번 외국에 나간 일이 있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 봤을 때, 나란 인간은 선물이든 내 쓸 요량이든 면세점 쇼핑은커녕 현지에서도 뭔가를 잘 사지 않는다. 부득이 살 수밖에 없는 선물용이라 해도 한 여행 당 총 10만 원 넘는 돈을 써 본 일이 없다. 그랬던 내가 이번 여행을 떠날 때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엄마의 첫 해외여행'이라는 타이틀을 스스로 매우 강조하며 출발 전부터 인터넷 면세점을 뒤지기 시작했다. 고삐는 이때 이미 풀렸다.
나보다 엄마랑 더 친한, 엄마의 영원한 '베프' 이모들을 위한 선물을 사야 했다. 인터넷 면세점의 꽃, 적립금과 쿠폰을 끌어모았다. 가장 유용한 선물인 화장품을 사기로 했다. 면세점 사이트에서 선물용 아이템을 모아 놓은 것을 보면 상당수가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구입 가능한 화장품들이다. 해외여행 중 선물을 사 오는 것은 본디 현지 아이템을 지인들에게 경험하게 해주기 위함일 텐데, 요즘은 그런 분위기도 없어진 모양이다. 화장품의 경우 대부분 시중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것과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적립금을 사용하니 할인율이 꽤 쏠쏠했다.
공항에 도착해 여유롭게 수속을 마치고 커피를 한 잔 하며 여행 분위기를 고조시켜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패키지 여행객들을 싣고 떠나는 비행편의 줄이 어마어마했다. 발권하고 짐을 부치고 검색대를 통과하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소요됐다.
이미 지쳤지만 이제 탑승동으로 이동해 온라인으로 주문한 선물들을 픽업하면 된다. 그런데 이 온라인 쇼핑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한 사람당 족히 100만 원어치가 넘는 쇼핑을 한 것 같은 '대륙의 쇼퍼', 중국인 관광객 수십 명이 대기 중이었다. 결국 또 한 시간가량을 기다려 주문한 물건을 받을 수 있었다. 커피는커녕 물건을 받자마자 비행기에 탑승해야 했다.
3박 5일 중국여행, 패키지여행 최대 '호갱'되다현지에서 우리 팀을 이끈 가이드는 조선족이었다. 아마 중국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가이드들 상당수가 조선족인 모양이다. 우리 가이드의 경우 인간적으로 정이 가는 면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거친' 사람이었다. 인상이나 말투, 본인이 직접 들려준 인생 이야기들을 통해 충분히 유추 가능했다. 거칠게 살아온 사람의 전형 같은 인물이었다.
가이드는 버스에 타서 마이크를 잡자마자 노옵션 패키지 상품을 맡으면 가이드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여행객들이 현지에서 옵션 비용과 가이드팁을 지불해야 가이드에게 '남는 돈'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노옵션 패키지에 대한 끊임없는 볼멘소리와 함께 가이드의 쇼핑 압박이 시작됐다. 우리가 쇼핑하는 금액 중 3~5%가 가이드의 손에 떨어지기 때문에 팁과 옵션비 일부를 챙기지 못한 그 가이드는 쇼핑 수수료라도 챙겨야 했다.
문제는 그 가이드가 아무리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도, 그게 나에게 '농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어렸을 적 사람을 많이 때리고 다녔다는 농을 하면서, 다른 옵션 팀은 20명이 적어도 400만 원은 쓴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흘렸다. 아무리 합당한 이유라 할지라도 최근 사람을 '폭행'했던 에피소드가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올 때는 정말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 하나 쇼핑의 폭죽을 터트리지 않으면 가이드의 폭력성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우리 팀 20명 중 이런 패키지여행이 처음인 사람은 엄마와 나뿐인 듯했다. 그들은 가이드가 무슨 말을 하든 상당히 초연해 보였고, 부처 같은 인내심과 유머로 모든 일정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정말로 엄마의 첫 해외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출발 전부터 '쇼핑 고삐'가 풀린 나는 '엄마 생애 첫 해외여행'이라는 타이틀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몇 달 전부터 사고 싶어 했던 아이템을 판매하는 곳에 도착했다. 1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상품이었다. 악마의 속삭임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 속삭임이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흘러나오고 만다. "사고 싶으면 사" 그렇게 우리는 국내에서 샀더라면 40%는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을 제품을, 그것도 이름 없는 중국산 브랜드로 구매했다.
이후 여행이 끝날 때까지 가이드의 볼멘소리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고, 필자와 엄마를 대하는 태도는 심지어 '친숙'해지기까지 했다. 그 가이드는 우리가 안전하게 귀국했는지 확인하겠다며 내 번호를 받아 갔는데, 귀국 후 필자와 '카톡'을 하다 내가 쇼핑한 상품이 비싸긴 비쌌다고 이야기하자마자 답변을 끊었다. 이미 벌어진 일, 환불을 하거나 불평을 할 요량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면을 바꾸는 그를 보고 있자니 정말로 마음이 헛헛했다.
뒤늦게 깨달은 '스마트'한 패키지 해외여행 선택법그렇다고 패키지여행을 떠날 때 '나는 절대 이 옵션은 하지 않아야지, 쇼핑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먹지는 말자. 그런 사람이라면 패키지여행 자체를 다시 고려해보는 게 좋다. 패키지여행은 그야말로 '단체 여행'이기 때문에 단 한 명의 결정이 모두의 기분과 일정을 망칠 수도 있다.
특히 부모님을 해외여행 패키지로 보내 드릴 경우에는 20만~30만 원 상당의 전체 옵션 비용과,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쇼핑 비용을 함께 챙겨 드리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 고가의 품목일 경우 국내에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양성화된 제품이면서 동시에 합리적인 가격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면 주의해야 한다. 내가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심정으로, 보다 정직한 해외여행 패키지 상품을 찾기 위한 몇 가지 팁을 제시한다.
첫 번째로, 쇼핑 정보를 비교적 자세하게 제공하는 여행사 상품을 선택하기 바란다. 해당 점포 이름을 기재해 놓은 곳은 미리 브랜드나 제품에 대해 검색해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이미 인터넷에 점포 정보를 기재해 놓은 경우 현지에서 가이드들이 자의적으로 쇼핑 장소를 바꾸기 힘들다.
두 번째로는 본인이 선택한 패키지여행 상품의 내용과 옵션 비용을 직접 인쇄해서 소지해 갈 것을 추천한다. 막상 현지에 가면 그 내용을 다 기억할 수도 없고 가이드가 옵션비를 더 받는지 옵션을 더 하는지 알 방법이 없다.
만약, 여행객의 편의를 위해 옵션을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적으로 옵션을 강요하는 가이드를 만났다면 최악의 경우 국내 여행사에 항의할 수 있다. 세 번째 팁이다. 가이드에게 들어가면 개인별로 벌점이 쌓여 가이드 개인이나 현지 여행사에 금전적 불이익이 돌아가기 때문에 '컴플레인'은 강력한 수단이다. 한 사람의 인생, 한 회사의 당락을 쥐고 있는 만큼 여행객들도 컴플레인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넷째, 이것저것 미리 다 알아보고 출발하면 좋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현지 이동 차량 내에서 와이파이(Wi-Fi)를 사용할 수 있는 패키지를 선택하도록 하자. 공항에서 며칠간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 프리 유심칩을 구매하는 방법을 여행사에 미리 문의하는 것도 좋다. 그때그때 검색을 하거나 자녀들과 자유롭게 카톡을 하는 것만으로 바가지 쇼핑을 피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쇼핑을 절대 하고 싶지 않지만 자유여행을 할 용기나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노쇼핑 패키지'를 검색하자. 다만, 노쇼핑 패키지는 옵션 패키지에 비해 일정을 찾기 힘들거나 비용이 급격하게 상승한다는 점을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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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상적인 사회를 꿈 꾼다.
사회가 변화하길 꿈 꾼다.
사람들이 변화하길 꿈 꾼다.
나이를 먹을수록,
꿈 꾸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이제는 점점 희미해져 내가 어떤 이상을 바라왔던가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미래를 꿈 꾸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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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첫 해외여행, '호갱' 인증 제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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