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알파고에게 최저임금을 맡겨라

[최저임금위원회 방청기3]

등록 2016.07.05 17:16수정 2016.07.05 17:16
0
원고료로 응원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한창 심의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전원회의에 배석하며 최저임금에 대한 노동계와 사용계의 입장 차이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의 발언을 인용해 상황별로 연재할 계획입니다 - 기자말

최저임금위원회 6차 전원회의(6월 27일) 말미, 사무국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노동계와 사용계가 2017년 적용 최저임금 최초요구안을 제출할 시간이었다. 최초요구안은 노-사의 핵심 교섭사항이기 때문에 비밀리에 요구안을 적었고 사무국은 조심스럽게 위원장에게 전달을 했지만, 긴장감은 없었다. 이미 언론이 최초요구안 수준을 보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용계는 10년 동안 변함 없이 '최저임금을 인상할 이유가 없다'고 동결안을 내 왔기 때문이다.

박준성 위원장 : "3호 안건인 노-사 최초요구안을 접수하겠습니다. 2017년도 적용 최저임금 노-사 최초요구안, 사용계는 시급 6030원, 인상률 0%를 최초요구안으로 내주셨습니다. 노동계는 시급 1만 원, 주40시간 기준 월환산액 209만 원을 적어주셨습니다."

이렇게 6차 전원회의가 마무리됐고 바로 다음 날 노-사 최초요구안을 둘러싼 쟁점을 논의하기 위해 7차 전원회의가 개최됐다. 노-사는 각각의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한 근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발언했다.

노동자위원6 : "① 최저임금 결정 기준 중에 하나가 소득불평등에 대한 사안이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최저임금 인상률은 평균 8.5%고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은 약 7%다. 둘 사이 1.5%정도 차이가 있는데, 소득분배개선분이 최저임금에 반영돼야 한다는 최저임금법 취지를 봤을 때,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폭이 낮은 수준으로 인상됐다고 판단할 수 있다.

② 유사노동자 임금수준과 관련해서 최저임금은 5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 통상임금의 38.9%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③ 비혼단신노동자 실태생계비가 167만원인데, 최저임금은 126만원이다. 생계비의 70%수준밖에 충족하지 못하고 있고, 가구생계비로 확장했을 때 현재의 최저임금은 턱 없이 부족하다. ④ 국제적으로도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이 하위권에 속하고 있다. ⑤ ILO와 UN은 최저임금이 노동자와 그 가족의 품위 있는 생활을 위한 보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최저임금을 가구생계비 측면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현재 최저임금노동자 중 80%가 주소득원이고, 이들은 2-3인 가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최저임금이 소득분배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고 빈곤의 악순환을 방조하고 있다. 시급 1만 원, 월급 209만 원은 소득분배구조를 개선하고 빈곤 탈출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한다."


사용자위원9 : "① 노동생산성 측면에서 최저임금 인상률은 연평균 8.7%인데 반해 물가상승률은 평균 2.5%다. 최저임금이 얼마나 살인적으로 올랐는지 알 수 있다. 생산성 또한 2001년부터 매년 4.7%정도 올라서 최저임금 인상률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유사노동자 임금수준을 봐도 현재의 최저임금은 1인 이상 사업장 중위임금의 51% 수준으로 낮지 않다. ② 국제적으로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낮지 않다. 국민소득 대비 최저임금 수준에 비해 OECD 8위로 중상위권에 속한다.

③ 노동계가 가구생계비를 고려해야 한다고 하는데, 최저임금의 철학을 다시 고민해 봐야 한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최저임금으로, 18세 미혼단신근로자 고졸 정도 수준의 학력을 가진 것으로 타깃을 설정했다. 그런 측면에서 1인 가구를 충족할 수 있는 수준이면 되고 어느 정도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50만 원 정도면 부족하지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다.


④ 가장 큰 복지나 소득분배는 고용안정이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기업 경영 여건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결국 노동시간과 고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게 될 거다. ⑤ 최저임금 영향률과 미만율(=위반률)이 계속 올라가고 있고 대한민국 헌법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정해놨는데, 최저임금위원회가 시장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이들의 임금을 결정하는 건 맞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최저임금은 동결되어야 한다."

노-사의 팽팽한 평행선은 작년과 닯았다. 아마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된 1988년 이후에도 줄곧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됐을 거다. 서로에게 유리한 통계를 유리하게 해석해 최저임금 인상이나 동결의 근거로 포장하다보니 노-사의 입장 모두 그럴 듯하다. 그러니 위원회 안에서도, 밖에서도 최저임금노동자의 절실한 삶보다 각종 통계가 보여주는 건조한 숫자만 남았다. 숫자는 우리 삶을 보여주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최저임금노동자가 400만명이 넘는다. 통계에 따라 300만명에서 500만명까지 줄었다 늘었다 한다. 통계마다 숫자가 다르니 통계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수백만 노동자의 임금을 정하면서도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5월 한달 간 몇 번의 현장방문과 딱딱한 간담회를 했던 게 세상 밖으로 나온 유일한 일정이었다.

박준성 : "노사 위원들이 최초요구안을 설명해주셨고 공익위원들이 내용에 대해 일부 의견을 말씀하셨다. 최초요구안을 제출한 시기를 고려했을 때 지금쯤 되면 수정안 제출 의견을 물어볼 시간이 됐다. 그래서 정중하게 노사 위원님들에게 특히 운영위원님들에게 수정안 제출 의사를 여쭤보고 싶다."

최초요구안이 발표됐고 노-사-공 질의 응답을 한 것 같으니 수정안을 제출할 때가 됐다는 위원장의 요청이 이어졌다. 사용계는 사용자위원 내부 토론으로 수정안을 제출하겠다고 했지만 노동계는 이리 쉽게 수정안을 낼 수 없다고 했다. 시급 1만 원, 혁명같은 숫자지만 월급 209만 원은 한 사람 혹은 가족이 살아가기에 그리 넉넉한 돈은 아닐 수 있다. 몇 차례 주고받은 토론으로 최초요구이자 최소한의 요구였던 1만 원을 포기하고 수정된 요구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노동자위원1 : "공익위원께서 적극적으로 토론해주셔서 생산적인 논의구조가 만들어졌던 것 같다. 그런데 저도 끼어들기 어려운 통계나 데이터 얘기 위주였고, 생생한 얘기가 잘 안 된 측면이 있다. 임금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이해당사자들 간의 생각의 차이를 드러내야 한다. 숫자 뒤에 얼마나 많은 구체적인 당사자들의 어려움이 있는지는 당사자만 알고 있다. 제가 민주노총 백일장에서 있었던 시 한편을 소개해 드리겠다. '다르게 살자'는 제목의 시다.

'6030원으로 김치찌개도 못 사먹는데 1만원으로 한우곰탕 먹고 살자. 6030원으로 영화 한 편 못 보는데 1만원으로 영화 한 편 보고 살자. 6030원으로 책 한권 못 사는데 1만원으로 책 사보고 살자. 최저임금 1만원이면 내가 이렇게 다르게 살 수 있으니 다른 사람도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우리 함께 최저임금 1만원 쟁취!'.

최저임금 당사자들에게 1만원 요구는 생활의 요구다. 현장의 생생한 생활 요구를 담은 시급 1만원은 노동계에서 쉽게 양보할 수 없는 안이다. 그리고 중소영세사업장의 의견도 듣고 싶다. 그런 것들까지 여기서 충분히 논의되고 합리적 공론의 장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하는 법정시한도 중요하지만, 이왕 정하는 최저임금 잘 정해야 한다. 시간에 쫓겨 수정안 제출을 종용하다 공익위원이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하고, 거기에 각종 통계를 덧입히는 건 최저임금노동자 삶에 대한 고민 없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 그럴 거면 노-사-공 27명의 '사람'이 위원회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 차라리 알파고가 최저임금을 정하는 게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파고에게 없는 따뜻한 마음과 공감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 것들을 최저임금에 투영해야 한다. 알파고에 없는 '사람' 중심의 최저임금위원회가 되어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 #최저임금 #6030원 #알파고 #시급1만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게 뭔 일이래유"... 온 동네 주민들 깜짝 놀란 이유
  2. 2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3. 3 팔봉산 안전데크에 텐트 친 관광객... "제발 이러지 말자"
  4. 4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5. 5 공영주차장 캠핑 금지... 캠핑족, "단순 차박금지는 지나쳐" 반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