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잃은 해녀들이 만든 조개구이촌, "나가라"니

"밤에 잠도 안 와요 마" 태풍에 철거 예고까지, 울상짓는 암남 조개구이촌 상인들

등록 2017.01.21 18:38수정 2017.11.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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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오마이뉴스 <2016 청춘! 르포하다> 공모작입니다. 아쉽게 수상작에 선정되지 못한 취재물이지만, 독자와 마주하기 위해 강다현 기자가 직접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왔습니다. 강 기자는 강제 철거(행정대집행)를 둘러싼 구청과 구민의 갈등이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회이지만, '왜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될까'라는 물음에 나름대로 답을 찾고 싶었다고 합니다. 2016년 12월 9일, 12월 15일, 12월 24일 세 번의 현장(암남공원) 취재와 2016년 12월 28일 부산 서구청과의 통화를 거쳐 12월 29일 기사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해당 시점을 고려하여 기사를 읽어주세요. [편집자말]
"일 마치고 집 가서 우편물 보고 처음 알았다니까요. 느닷없이 왔어요. 스물 아홉 명 집으로 일일이."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공원 공영 주차장 한쪽에 위치한 조개구이 포장마차촌(아래 조개구이촌). 40년 이상 대를 이어 이곳을 지켜온 스물 아홉 명의 상인들은 지난해 9월 19일 서구청으로부터 우편물을 받았다. 영업 중인 포장촌을 10월 31일까지 비우라는 공문이었다. 상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구청의 임시 영업허가를 받은 2000년부터 지금까지 철거에 대한 언질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급작스러운 통보였다.

조개구이촌 자진 철거 요구에 대해 당시 서구청이 밝힌 이유는 주차장 20면 추가 확보였다. 암남공원에는 이미 341면의 공영 주차장이 있지만 내년 5월 완공 예정인 해상케이블카로 관광객들이 늘어나면 주차 공간이 부족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구청은 2013년 송도해수욕장 개장 100주년을 기념해 송도 송림공원과 암남공원을 잇는 1.62km의 해상케이블카 복원 사업을 알렸다. 송도 해상케이블카는 1964년 운행을 시작해 시설 노후화와 관광객 감소로 1988년에 운행 중단, 철거된 바 있다.

부산 서구 암남공원 공영 주차장 전경 조개구이촌은 주차장 한켠에 위치해있다.
부산 서구 암남공원 공영 주차장 전경조개구이촌은 주차장 한켠에 위치해있다.강다현

설상가상으로 지난 10월 5일에는 올해 18호 태풍 '차바'가 조개구이촌을 덮쳤다. 태풍은 천막은 물론 조리 기구까지 싹 쓸어갔다. 처음 암남공원을 찾은 지난해 12월 8일, 할머니와 어머니를 이어 3대째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김아무개(48)씨는 격앙된 목소리로 당시를 회상했다.

"진짜 밤에 잠도 안 와요 마. 그날 이후로. 내같은 경우는 진짜 나무젓가락 하나 없이 다 떠내려 갔어요. 안 그래도 속이 상하는데 여기까지 뜯으려고 하니까 너무 속상한 기라. 내가 장사해서 생활비도 해야 되고 어머니 아버지 병원비도 해야 되는데 이것도 못 벌게 하면 나가 앉으라는 건지... 내일모레 오십인데 어디서 취직을 하고 어디서 돈을 벌겠어요. 여기 사람들 전부 여기 터 잡은 지가 40년 다 되어가는데."

태풍으로 망가진 조개구이촌은 한동안 휴업 상태였다. 상인들이 사비를 모아 장사를 재개하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그마저 29개 가게 전체를 복원하기엔 어려움이 커 기존 가게의 절반에 못 미치는 13개 공간에서 자리를 나눠 쓰는 형편이다. 구청은 첫 공문에 명시한 자진 철거 시한(10월 31일)이 지나자 상인들로 이루어진 암남해변조합의 대표에게 강제 철거(행정대집행) 계고장을 전했다. 그로부터 두 달여가 지난 12월까지 구청은 "불법 영업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상인들은 마음 편히 한해를 정리하지 못했다.

"목구멍이 포도청", 살기 위해 미끼를 물었다


70년대부터 송도에서 물질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해녀들은 90년대에 바다를 잃었다. 시와 구청이 어폐류 냉동창고 부지를 마련하고자 송도 바다 일부를 매립한 것이다. 그러나 창고를 짓기로 한 회사가 부도나면서 매립지는 공터로 남게 되었다. 해녀들은 허망했다. 매립 과정에서 뻘물이 넘쳐나 그 많던 해산물이 죽어버렸다. 이에 구청은 해녀들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매립지 한쪽의 장사를 묵인했고, 상인들이 구청으로부터 임시 영업허가를 받아 사업자등록을 마친 게 2000년이었다.

그때 구청은 업체를 통해서 가게 도면을 정해주기까지 했다. 디귿(ㄷ)자 모양으로 포장촌을 세워 모든 가게가 한정된 부지에 들어설 수 있도록 했다. 상인들이 마음대로 터를 잡은 것이 아니었다. 상인들은 구청이 선정한 업체에 구청이 제시한 도안 그대로 공사를 맡겼을 뿐이다. 현재 공영 주차장 부지는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고 조개구이촌 부지는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는데, 이 역시 구청이 해녀들에게 영업을 허가하면서 그곳에만 시멘트를 깔았기 때문이다.


 구청의 조치에 따라 조개구이촌 자리에는 시멘트가, 그 외 공영 주차장 부지에는 아스팔트가 깔려있다.
구청의 조치에 따라 조개구이촌 자리에는 시멘트가, 그 외 공영 주차장 부지에는 아스팔트가 깔려있다.강다현

하지만 영업허가에는 조건이 있었다. 구청은 상인들에게 각서를 요구했다. 구청이 공공사업 목적으로 철거를 요구하면 상인들이 30일 이내에 자진 철거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선택지는 영업 종료뿐인 상황에서 생계를 포기할 수 없었던 상인들은 구청의 제안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 각서는 구청이 상인들에게 자진 철거를 요구한 근거 가운데 하나다. 김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예전에 어머님들이 장사하실 때, 젊은 사람들이 없을 때 구청에서 '필요할 땐 비켜달라'는 각서를 안 쓰면 장사를 못 하게끔 한 거예요. 그때는 각서를 적어야만 장사를 할 수 있다니까, 장사를 못 하는 것보다야 일단 할라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반강제적인 각서를 받아놓고 그 각서 타령을 하는 거예요."

각서 작성의 문제, 그에 따른 애매한 법적 구속력에도 불구하고 구청은 선심 쓰듯 시간을 더 주겠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부산 서구청 담당 직원은 기자와 통화 중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음 날짜를 지정해서 2차 계고장을 보내는 방법이 있고, 그렇게 하지 않고 바로 철거를 할 것 같으면 철거 날짜를 정해서 행정대집행 영장을 보내는 방법이 있는데요. 지금은 조금 더 시간을 주고 있는 중입니다." (부산 서구청 안전총괄과 도로관리 업무 담당 직원)

관광지 개발과 구민의 생계, 무엇이 중요할까

상인들은 현재 암남공원 부지에서 오랜 기간 상권을 조성해온 만큼 터를 지키고 싶다. 이들의 단호함에 구청이 암남동 송남시장으로의 이전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상인들은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반쪽짜리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빈 점포가 몇 없는 탓에 구청은 상인들 가운데 생계가 어려운 소수만 이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영업지에서 약 2.65km(버스 정류장 6개, 도보 30분 거리)나 떨어져 있는 것도 문제였다. 이후 상인들은 자동차 20대가 매일 24시간 주차하는 비용을 달마다 지불할테니 지금의 장소를 지켜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오히려 구청은 가능한 법적 근거를 모두 들어 강제 철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현재 조개구이촌 부지의 약 20%는 상인들이 합법적 계약을 맺은 땅이지만 구청은 그곳에서조차 영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상인들은 해당 부지의 소유주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국유재산 사용·수익허가 계약을 맺어 2020년까지 자유롭게 땅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를 막는 구청은 "(캠코로부터) 대부를 받은 것과 별개로 공원 지역에는 어떤 건축물을 설치하는 행위가 불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일각에서는 구청의 행정이 '일단 없애고 보자'는 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구청은 지난 10월 "주차장 20면 만들고자 조개구이촌을 없애냐"는 온라인 민원에 "철거 후 그 부지에 어떤 시설이 들어서기 전까지 주차장으로 활용할 것을 검토하고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 답변에 따르면 구청은 정확한 계획도 없이 상인들의 철거를 요청한 셈이다.

그렇다면 구청이 조개구이촌의 영업을 막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의 의문에 구청은 "제일 큰 목적은 환경 개선"이라며 "관광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조개구이촌이) 환경적으로 미관이 안 좋기 때문에 철거를 하려는 것"이라고 단호히 답했다.

그러나 서구의 관광지 개발에 난색을 표하는 이들도 많다. 그 이유로는 사업성을 면밀히 따지지 않는 개발, 그로 인한 환경파괴 등이 언급된다. 실제로 송도 해상케이블카 복원 사업은 시행사가 선정된 뒤에도 1년 반 동안 표류했는데, 초기 예상보다 200억 원 늘어난 사업비에 시행사가 사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구청이 사업 면면을 처음부터 꼼꼼히 살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하여 송도 해상케이블카는 2013년 사업 발표 이후 무려 3년이 지난 2016년 3월에서야 착공했다.

다른 관광 개발 사업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2014년 3월 구청이 발표한 '송도 해양관광벨트 사업'은 아직도 첫 삽을 뜨지 못했다. 그중 '부산 공동어시장 현대화 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11월 예산이 확정되었고, '천마산 모노레일 사업'은 사업성 논란에 휘말리다 현재 감감 무소식이다. 이렇듯 송도 일대의 개발이 지지부진한 상황임에도 구청은 환경 개선을 이유로 대책 없이 조개구이촌을 철거하겠다는 입장이다.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살고 싶은 행복도시' 부산 서구, 슬로건에 떳떳할 수 있을까

 (좌) 조개구이촌 바로 위 산책로에 설치되는 해상케이블카 상부 정류장 (우) 산책로 입구에 걸린 현수막
(좌) 조개구이촌 바로 위 산책로에 설치되는 해상케이블카 상부 정류장 (우) 산책로 입구에 걸린 현수막강다현

"구청이 우리를 불러서 말하는 건 전혀 없고,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파는 식으로 우리가 구청장이랑 직원 면담을 요청했어요. 근데 구청장은 이미 올라간 사안이라고 담당 직원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말하고, 아래 직원들은 구청장이 지시했다고 하고.. 서로가 '니미락내미락'하는 거지요. 특히 구청장은 3선 했으니 이제 구민들 생각은 별로 안 합니다. 옛날에는요, 선거철마다 여기 와서 '어르신 고생하십니다, 활성화해서 잘 해드리겠습니다' 했는데... 화장실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하고 틀린 기라. 만나주지도 않아요 지금은. 이래가 되겠습니까."

김씨를 비롯한 상인들은 구청과의 대화를 바란다. 구청이 첫 철거 요청 공문을 보낸 지난 9월부터 2016년의 마지막 날까지 상인들과 구청이 소통하는 자리는 단 한 번도 마련되지 않았다. 민선4·5·6기로 3선인 박극제 서구청장은 2006년부터 11년째 서구를 지키고 있기에 상인들의 속상함은 더하다.

갈등 해결에 물꼬를 틔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구청의 유연한 태도이다. 상인이기 이전에 구민인 이들과 공존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관계자는 "이 문제는 구민의 생계가 결부되는 문제인 만큼 법만 적용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라며 "(조개구이촌은) 이미 서구에서 명물화가 되었기 때문에 정식으로 허가받게 만들고 세금 내게 만들고 구에서도 그걸 홍보해주면 구와 상인들이 '윈윈'하지 않을까"라고 조언했다.

얼마 전 부산 영도구에 좋은 선례가 있었다. 태종대 조개구이촌 상인들은 지난 11월 영도구청의 결정에 따라 내년 2월부터 합법적 영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암남공원 조개구이촌과 마찬가지로 시유지에서 무허가 영업을 해오다 지난 10월 태풍 차바에 휩쓸렸다. 보상을 요구하던 상인들을 외면했던 영도구청은 이내 공존을 택했다. 기존의 영업지에서 약 20m 떨어진 부지에서의 합법적 영업을 허가하고 장비 복구와 이전 비용까지 일부 지원키로 한 것이다. 구민들의 생계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웃 지역의 원만한 갈등 해결 사례에도 서구청은 여전히 꼿꼿하다. 암남공원 조개구이촌의 합법화를 생각할 수는 없느냐고 물었더니 곧장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담당 직원은 이어서 "생각을 안 하는 게 아니고 생각을 많이 했는데 없습니다. 어쨌든 거긴 불법이고 우리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 취재 차 암남공원 조개구이촌을 찾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소통에 진척이 없는 상황에 불안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상인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린 떳떳하니까.. (구청의) 좋은 답을 기다려야죠"

언제 철거당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상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철거 반대 서명을 모으고, 지금까지와 같이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할 뿐이다.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구청은 구민들이 고군분투하는 동안에도 여유롭다.

'살고 싶은 행복도시 부산 서구', 부산광역시 서구의 슬로건이다. 암남공원 조개구이촌 상인들을 포함한 모든 구민이 이 문구에 공감할 수 있는 2017년이 될 수 있을까.
#강제철거 #암남공원 #부산서구청 #조개구이촌 #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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