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단에 공정여행, 찻집까지...다른 시골과 달랐다

귀농인으로부터 배우는 삶, 부산 귀농학교 '실전귀농'팀과 함께 가다(2)

등록 2017.03.02 10:42수정 2017.03.0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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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사는 작년 10월부터 11월까지, 두 달간 '부산 귀농학교' 실전귀농 팀과 함께 한 답사를 바탕으로 기록한 내용이다. '부산 귀농학교'는 생태적 가치와 자립하는 삶을 함께 고민하고 준비하고 실천하는 2017년 상반기 교육프로그램 참가자를 모집 중이다. -기자말


부산 귀농학교 '실전귀농' 팀과 함께 가다, 부산 기장 편
2016. 10. 22. 토

나락베기 부산귀농학교 텃밭 만화리 벼베기, 기계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노동력으로 벼 수확한다. ⓒ 이정인


맨손으로 일하는 기쁨, 벼베기

부산에서 차로 20-30분 거리인 철마의 귀농학교 농장에 모였다. 좁은 지역이면 으레 볼 수 있는 다단식 논과 밭이었는데, 실전귀농 팀에서는 500평정도 되는 논을 담당했다. 마침 같은 날 자립하는 소농 팀도 인근에서 추수를 했는데 토종벼 수확이라고 했다.

귀농운동본부에서 얻은 토종벼라고 하는데, 여러 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토종종자 지키기' 운동의 일환인 듯 싶다. 실전귀농 팀이 모이자 설명과 주의사항을 들은 후 바로 벼 수확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물이 덜 빠진 논바닥에 장화가 빠지지 않아 허우적대다 물이 마른 논바닥 쪽으로 이동해서 벼를 벴다. 순서는 이러하다. 왼손으로 올곧게 벼를 바로 잡은 다음 낫 안쪽 힘을 이용해 밑동을 자른다. 벼는 최대 길게 자를수록 좋다.


나락을 털고 난 짚단은 축가와 농가에 여러모로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벼를 거꾸로 세워 보기 좋게 정리한 후 가지런히 바닥에 쌓는다. 지푸라기로 볏단이 풀리지 않게 꼼꼼히 묶은 후 햇볕과 바람에 서너일 말려둔다. 각 공정마다 사람들이 흩어져 일을 진행했다.

고라니가 잠깐 쉬었다 갔는지 염소 배설물같은 것도 보였다. 속이 보이도록 푸른 여치와 여기저기 튀어 오르는 메뚜기, 샛노란 줄무늬가 눈부신 거대 거미와 아직 동면에 들지 않은 참개구리. 자신의 삶을 다해 살아있는 곤충들을 본 지가 얼마만이었던가. 어릴 적 고구마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 곁에서 방아깨비와 여치를 잡아 놀던 시절이 기억나 문득 그리워졌다.


일을 하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몸이 고되니 얼마만큼 했나 보고 싶은 것이다. 지나간 자리에는 가지런히 정리된 볏짚과 잘린 밑동의 일렬들이 보인다. 오롯이 노동으로만 부여된 질서이다. 등 뒤의 정렬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고추밭 잡초를 멘다는 어느 시인 농부의 말이 떠오른다.

낫질이 익숙해지니 잡아 세우는 왼손이 뻐근해지고,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는 허벅지 근육이 뻣뻣해진다. 허리 좀 쉴 겸 돌아보니 각자 위치에서 벼를 베고, 묶고, 세우는 이들이 보인다. 바닷가에서 자란 나에게는 추수하는 농촌 풍경은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어느새 이마와 등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아침까지만 해도 날이 선선하니 흐려 땀 흘릴 걱정은 없겠다며 말을 주고받은 게 몇 시간 전 었는데..., 이렇게 일하면서 땀 흘린 적이 언제였더라. 땀방울에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니 헛살고 있지는 않구나, 일하고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차를 탔다. 이동 중 인근 논에서 추수하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현대화된 농기구 없이 손수 낫으로 벼를 베고, 볏단을 정리하고 있었다. 삶 전체를 관통하는 고된 노동과 겹겹의 시간들이 위를 훑고 지나갔다.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한 일을 오로지 당신네의 속도로 살아가는 모습은 오랫동안 바라보게 하는 고요한 풍경이었다.

산 속의 쇠고기, 표고버섯

표고버섯 배지에서 자라는 표고버섯 ⓒ 이정인


점심시간을 이용해 인근에서 일을 본 후, 오후 일정에 합류하였다. 안내 종이에 적힌 주소로 도착하니 철마 한우식당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예전에 점심도 먹고 바람도 쐴 겸해서 가족과 온 적 있는 곳이다. 부산 근교라 주말을 이용해 인근 식당에서 밥먹고 건너편으로 넘어와 버섯을 사가는 이들이 제법 많을 듯 싶다.

하우스 안쪽 창고로 들어가니 설명 중인 귀농선배를 만날 수 있었다. 일반 비닐하우스와 다르게 버섯 재배는 습도와 온도에 민감하므로 하우스를 4겹으로 짓는다. 마지막으로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검은 비닐로 덧씌운다. 그래서 초기 시설투자비가 꽤 들어간단다.

오전 일이 고되 학생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안주인께서 생버섯이 담긴 바구니를 앞으로 건네주었다. 바구니를 서로 돌리면서 버섯을 꺼내 맛보았다. 가장자리는 곰팡이 특유의 흙맛이 나지만 안쪽의 희고 질긴 부분은 쇠고기 맛과 질감이 났다.

전남 장흥에는 한우와 표고버섯, 키조개 관자를 함께 먹는 '삼합'이라는 음식이 있는데, 위 세 가지 식재료가 한우의 맛과 질감이 비슷해 같이 먹지 않았을까. 한우로 유명한 철마에 표고버섯을 키우는 농가가 6-7곳 더 있다고 한다.

재배 하우스를 보여주겠다며 귀농선배가 자리를 옮겼다. 배양균을 키우는 곳, 이틀 동안 물을 뿌려 배지 앞뒤로 흠뻑 물을 주는 곳, 이미 버섯 수확을 마친 곳, 수확을 기다리는 하우스로 나뉘어져 있었다. 하우스 안에는 곰팡이 특유의 냄새와 눅눅한 습도가 느껴졌다.

버섯이 자라는 배지는 보통 톱밥에 열과 압력을 가해 만든다. 안으로 들어가 버섯이 자라고 있는 검은 배지를 들어보았다. 위아래로 압축시켜 톱밥의 형태가 보이지 않고 수분이 빠져 말라버린 나무처럼 가볍고 딱딱했다. 한 배지에서 수확할 수 있는 버섯의 양은 250~300g 정도이다.

버섯은 화구가 곱게 피고 모양이 뭉개지는 곳이 없어야 상품가치가 있다. 하우스 안은 비닐 속에서 자라 뭉개지고 겹쳐진 버섯들이 대부분이었다. 시중에서 보는 꼬들하고 우산모양의 버섯은 절반이 채 못 된다.

예쁘고 고른 것만 찾는 소비 태세로 생산량 중 반절은 시장에도 나가지도 못한다니 안타깝다. 창고 안 한쪽에는 말린 버섯과 가루를 팔고 있었는데, 이처럼 다양한 형태로 농산물을 가공해 농가의 소득이 증대되기를 바란다. 또 생산자-소비자 간의 교류교육이 많아져 많은 이들의 인식이 변하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한다.

아래 기사는 작년 10월부터 11월까지, 두 달간 '부산 귀농학교' 실전귀농 팀과 함께 한 답사를 바탕으로 기록한 내용이다. '부산 귀농학교'는 생태적 가치와 자립하는 삶을 함께 고민하고 준비하고 실천하는 2017년 상반기 교육프로그램 참가자를 모집 중이다.

# 부산 귀농학교 '실전귀농' 팀과 함께 가다, 남원 편
2016. 10. 29. 토

고시리학교 가을 냉기를 맡고 낙엽든 고사리밭 ⓒ 이정인


남원 고사리학교 이야기

관용어 '고사리 같은 손'이나 산나물 고사리 이미지가 강해 '고사리학교' 이름이 소박하면서도 정겹다. 어느 이가 '고사리'에 '학교'를 붙였을까 궁금해진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남원의 한적한 도로 변에 고사리학교 간판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까무잡잡한 피부와 양복에 신은 장화가 인상적인 귀농선배다. 강의실 한쪽에는 난로가 있었는데, 벌써부터 왠 난로일까 생각하면서도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난로로 모여 온기에 몸을 녹였다. 가을이 깊어간다고 생각했다.

고사리 종근은 한 번 심으면 70년을 가니 따로 씨를 뿌리거나 심을 필요도 없다. 봄에 수확을 마친 고사리는 따로 베지 않아도 여름과 가을에 자연 멀칭(또는 피복) 효과를 주고, 고사리 특유의 독성 때문에 고라니나 멧돼지의 피해도 없다.

수확한 고사리는 볕 좋은 날에 하루 바짝 말리면 다음 날 바로 포장해 판매도 가능하다. 유통기한이 2년이라 저장과 이동이 용이하여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는 이만한 장점과 수익이 높은 농산품은 없다고 귀농선배는 설명한다.

고사리학교에서 차로 10여분 떨어진 고사리 밭으로 이동했다. 2천 평 되는 규모이다. 날이 추워지면서 언덕을 타고 내려온 찬 기운이 고사리를 온통 갈색 낙엽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고사리는 이끼처럼 습하고 음지에서 자라는 줄 알았는데, 그늘 하나 없는 언덕에서 고사리가 자라고 있었다. 그날 고사리가 양지식물임을 새로 알았다. 교육생들은 저마다의 궁금증을 물어보고 갈색 고사리 밭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학교를 떠나기 전, 건고사리 한 팩을 사왔다. 포장지에 '지리산 부부의 지리산을 담은 소중한 선물'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누가 생산한지 알면 물건이 귀하게 보인다. 그동안 방문한 귀농농가의 생산물을 많은 이들이 살피고 구매했다. 생산과정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신뢰가 생기기 때문이다. 생산자들이 일 한 만큼의 대가를 받고, 소비자들은 믿고 살 수 있는 직거래가서 농어촌의 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녁에 봉지를 트고, 고사리를 반 쯤 덜어내 하루 동안 물려놓았다. 삶은 고사리로 앞으로 고등어조림도 해먹고, 찌개도 만들어 먹을 예정이다. 그리고 그날 느꼈던 가을의 선선한 날씨와 난로의 등유 냄새를 떠올릴 것이다.

마을이 살아있다, 산내마을

카페 '토닥' 남원 산내마을 아지트 카페 '토닥' ⓒ 이정인


지리산으로 둘려 쌓여 산 내 쪽에 있다고 해서 '산내'라고 불린다. 날이 좋으면 지리산 능선 따라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고 하니 깊은 산골임에도 불구하고 산내마을에는 드넓은 평야가 보여 예부터 풍요로운 마을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마을에 도착하니 주요 모임 장소인 '한생명'과 '느티나무' 친환경 매장, 건너편 아담한 찻집, 옆으로는 실상사에 들어가는 매표소가 있다. 곳곳에 지역 임농산물을 판매하는 지역주민도 보였다.

자신도 부산에서 왔다는 안내자가 소개한 산내마을은 이러하다. 마을 할매들의 유익한 오락(?)을 위해 지역 청년들이 두 팔 걷어 유랑단을 만들고, 지역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착한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서로 관심사가 같은 이들이 모여 글을 쓰거나 바느질모임을 만들고, '토탁'이라는 카페에서 공연과 문화행사를 열고, 두부를 만들어 두고 가면 각자가 편한 시간에 찾아가는 마을 위탁소가 되는 공간이 있기도 하다. 지역에서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일들을 청년들과 지역민이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재미난 상상력을 자극하는 내용들이라 '농촌에서 이런 일을 해도 되는구나' 하고 혼자 신나하며 들었다.

평지에 있는 오래된 고택 같았던 사찰 '실상사'를 둘러보고 마을 사이를 가로지르는 뚝방을 따라 이동했다. 바람의 흐름을 느끼고, 돌과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천천히 주변의 풀과 작물을 살펴보았다. 걷는 여행이야 말로 지역을 잘 이해하고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20여분을 걸어 카페 '토닥'에 도착했다. 동네 문화공간이다. '등을 토닥토닥 거린다'라는 뜻에서 '토닥'이라 붙였을까. 이곳에서는 음악회가 열리고 다양한 주제의 강좌도 열린다. 많은 이의 애정이 묻어나 주변은 깨끗했고 내외부가 정갈하다. 안에는 난로와 다양한 만화책, 예술가들의 출판물, 앨범,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산내마을은 전형적인 시골마을과 달랐다. 농사를 짓지만 농사만 짓지 않고, 도로가 깨끗했다. 재미난 이름을 가진 독립출판물과 시민단체 간행물이 곳곳에 비치되어 읽을거리가 넘쳐났고, 사람들로 붐볐다. 마을은 살아있었다.

많은 이들이 국제적인 마인드를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지역을 잘 알고 지역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이끌 지역 인재가 지역에는 필요하다. '실상사 귀농학교'를 시작으로 산내마을에 젊은 귀농인들이 모였다. 귀농인들이 낯선 곳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지역민들과 오늘의 산내마을을 만들었듯이, 전국에도 다양한 공존과 자립 방식을 가진 건강한 공동체들이 지속적으로 생겼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교육 문의 : 부산귀농학교 사무국 051-462-7333
※ 홈페이지 : www.busanrefarm.org / 검색창에 "부산귀농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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