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그 씀씀이를 추억하며

우리 가끔은 어르신들의 지혜로움에 귀 기울여 봅시다

등록 2017.07.11 17:28수정 2017.07.12 09:1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금 같은 날씨라면 할머니께서 살아계실 적 시골집 앞마당에는 옥색 치마저고리 한 벌, 하얀 버섯 두 컬례가 오뉴월 바람을 타고 빨랫줄 위에서 너울 너울 춤추듯 걸려 있겠고, 댓돌 한켠에는 할머니께서 닦으신 뽀오얀 고무신이 물기를 머금은채 세워져 있을 때다.


여인의 속옷은 앞마당에 너는 법이 아니라며 뒤뜰에 따로 널어두셨다.

a 할머니 보고싶어요 할머니 기일을 앞두고 문득 살아생전의 할머니를
한번더 뵐수만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할머니 보고싶어요 할머니 기일을 앞두고 문득 살아생전의 할머니를 한번더 뵐수만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 이지영


내 생각에는 늘 푸른빛이 살짝 감도는 옥색 치마저고리만 생각이 날 뿐, 색이 고운 저고리는 한번도 입으신적이 없다. 집에서도 항상 잘 손질된 한복만 입으셧고 겨울철에는 저고리 위에 하얀 실로 짠 스웨터를 입으시곤 하셨다. 신발은 한여름에도 그 흔한 슬리퍼 한 번 안 신으시고 하얀 고무신만 고집하셨다.

한여름에는 할아버지께 통풍이 좋고 가벼운 삼베옷을 지어주셨지만 할머니는 한여름에도 베옷을 입지 않으셨다. 속이 잘 비치고 주름이 많은 것이 싫으셨으리라 생각한다.

그옛날 시골동네의 논과 밭을 계속 사들이셨고 대도시에 부동산을 마련하셨던 큰손이셨지만 할머니의 개인 소지품 중 사치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으셨다.

참빗으로 곱게 빗고 꼽으시던 금비녀와 손가락이 벌어질 정도로 고급지게 끼여진 순금 쌍가락지 그리고 늘 할머니 목을 감싸고 있던 금목걸이 그리고 겨울에 장저고리 위에 두르시던 밍크목도리가 전부였다. 그냥 보기엔 과할 것 같지만 할머니의 단정하신 모습에 금붙이는 위엄을 내지는 못했다. 수십 년동안 그것 이외에는 단 한 번도 새로운 장신구를 산 적이 없으셨다.


수건도 하얀 면수건만 쓰셨다.

동네의 유 선생댁 교장선생댁 등 날아갈 듯한 기와집에 사시는 분들은 다 할머니의 계원들이셨다. 돌아가면서 계를 하셨겠지만 한번도 할머니댁에서 하신 적도 없고 다른 댁에 가신적도 없다. 매달 곗날이 돌아오면 할머니는 우리들에게 돈봉투를 주시면서 유 선생댁에 갔다드리라고만 하셨다. 어렸을 때라 그게 돈일 줄 모르고 그 집 마당에 들어서서 '할머니께서 갔다드리래요'라고 말씀드리면 그쪽에선 항상 과자며 사탕이 가득 들은 뭉치를 건네셨다. 나중 크고 보니 그게 곗돈이었던 걸 알게 되었고 참석을 안하시는 할머니께 따로 과자며 사탕을 준비해 드렸던 것 같다. 물론 그것은 심부름 값으로 받을 우리 몫이었다.


제철과일이 무르익을 때면 손도 크다 싶을 정도로 과일을 짝으로 사주시고 우리들을 위해서는 고기며 고급 생선 등을 아끼지 않고 사주셨다.

하지만 할머니의 식습관은 너무도 소탈했다. 사실 궁상맞을 지경이었지만 궁상맞다는 생각보다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일단 물을 참 아껴쓰셨다. 그러면서 늘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님이 생전에 버렸던 물을 다 마시게 한단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늘 물을 아껴 쓰라고 하셨다.

쉽게 음식이 상하는 여름이면 밥이 쉬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럴 때 할머니는 밥을 수돗물에 씻어서 드셨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고기 상한 것을 먹으면 탈이 나지만 밥은 괜찮다고 하셨다.

긴 겨울이 끝나고 삼사월이 되면 지난해 겨울 김장김치가 쉬어 입에 넣기 거북스러워질 때는 김치를 물에 깨끗이 씻어 고춧가루를 다 털어내고 말갛게 앃어서 반찬으로 드셨다.

그런 할머님께서 팔순을 넘기시니 병원에 가시는 일이 잦아시셨다.

그렇게 병원을 오가시다가 팔십여섯 해에 돌아가셨고 올해로 할머니께서 돌아가신지 스물세 해째이다.

보통 사람들은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 한다고 하는데 우리 할머니께서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를 누리셨으면서도 본인 스스로는 시집 와서 어려웠을 때의 습관을 그대로 간직하신 채 평생을 사셨다.

물질이 사람의 인품이 되고 물질이 사람의 가치를 대변하는 시대에서, 할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울 할머니의 일상으로의 여행을 마칠까 한다.

"양지가 음지되고 음지가 양지된다. 사람의 형편은 늘 바뀌는 것이니 사람 사귈 때 가진것을 먼저 보지 말고 사람을 먼저 봐라."
#할머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4. 4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5. 5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